"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갈아"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갈아"
  • 김철 기자
  • 승인 2020.09.13 2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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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박사가 들려주는 우리차 이야기 3]

 

다산선생 이시헌에게 쓴 편지에 기록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곱게 갈아 반드시 돌샘물로 진흙처럼 반죽하여 작은 떡으로 만들어 보내다오.'

18년간(1801~1818)의 강진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 다산 정약용은 초당 제자 중 가장 나이가 어렸던 이시헌에게 편지를 보낸다. 곡우가 되었으니 차를 만들어 보내달라는 당부의 편지였다. 지난 해 만들어 보내온 차는 좀 거칠었다며 이번엔 좀 더 잘 만들어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산은 어떤 차를 마셨을까? 제자들과 헤어지면서 맺은 다신계의 내용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곡우에는 어린차를 따서 낮은 불에 덖어 잎차 한 근을 만들고, 입하가 되면 늦은 차를 따서 떡차 두 근을 만들어 보내다오.'라고 하였으니 이른 봄 어린잎으로는 잎차를, 봄이 완연해지면 성숙한 잎으로 떡차를 만들어 마셨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유배 초기에는 아암 혜장스님에게 차를 얻어 마셨다. 위트 넘치는 글로 차를 구걸하는 '걸명시(乞茗詩)'가 남아있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차츰 직접 차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나중엔 스님들을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오늘날 흔히들 말하는 구증구포 제다법은 다산이 처음 사용한 제다법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제다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증구포'라는 단어의 의미는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다는 의미로 한약재의 법제 방식이다. 인삼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면 홍삼이 되고, 생지황을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리면 숙지황이 되는 이치다. 찌고 말리기의 반복을 통해 본래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왜 차를 아홉 번 찌고 말려서 만들었을까. 유배인 신분이었던 다산은 기력이 몹시 쇠하였던 상태였다. 본인의 상태를 잘 알았기에 한약재의 법제 방식을 차에 응용하여 지난 친 약성을 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시헌에게 쓴 편지에는 세 번 찌고 세 번 말리라고 하였다. 구증구포에서 삼증삼쇄로 그 공정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과학적 실험에 따르면 찌고 말리기 공정의 초기에는 차의 성분 변화가 크지만, 반복될수록 변화 폭이 매우 작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세 번 까지는 차의 성미가 크게 변하지만 더 이상의 반복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다산은 경험으로 알았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 구증구포로 차를 만드는 사람들은 찌고 말리기가 아니라 덖고 말려 차를 만든다. 찌고 말리기가 덖고 말리기로 변한 것이다. 그것도 매우 고온의 온도에서 덖어 차를 만든다.

 


조선 후기 농서에 덖고 말리기를 반복하여 차를 만드는 법이 소개된 바 있고, 응송 스님이 쓴 글에서도 구증구포를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손바닥으로 댔을 때 따끈한 정도라고 하였으니 오늘날과는 그 온도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있다.

한편 초의스님은 높은 온도에서 차를 덖어내라고 하였다. 초의 스님의 높은 온도와 다산의 아홉 번 반복이 만나 새로운 해석이 나온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전통의 새로운 해석인 셈이다.
강진에서는 아직도 다산의 제다법 대로 차가 만들어지고 있다.

봄이 되면 사의재 한켠에서 야생 찻잎을 찌고 말려 떡차를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진의 차 명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아 다산선생이 즐겨 마셨던 떡차를 만든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차향은 그윽하고 맛은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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