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코로나 -여름날 아침의 단상-
[다산로] 코로나 -여름날 아침의 단상-
  • 강진신문
  • 승인 2020.08.3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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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친구의 딱한 사정을 듣고 안토니오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그 차용계약서의 내용이 고약하다. 기한내 돈을 갚지 않으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1 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약속한 기한내 돈을 갚을 수 가 없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선박사업을 하던 안토니오의 배들이 풍랑으로 모두 난파 돼버렸던 것이다. 재판장이 샤일록에게 사정이 그러하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샤일록은 듣지 않았다. 드디어 재판장이 판결을 했다. "…그렇다면 계약대로 살을 도려내시오. 그러나 그 증서에는 살을 베어내겠다고 했지 피를 흘리게 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없소. 그러므로 한 방울의 피도 흘리게 해서는 안 되오." 쉐익스피어의 유명한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다.

판결과 관련한 또 하나의 얘기다. 황 희 정승이 지방관직에 있을 때다. 농부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가 관청의 판단을 구하려고 관아에 왔다. 한 농부가 말 했다. "저 사람은 어찌어찌 해서 나쁘며 그래서 엄벌이 요구되옵니다" 황 희 정승이 말했다. "그래, 듣고 보니 네 말이 맞구나." 그런데 이젠 다른 농부가 말했다. "아닙니다. 이 자는 이렇고 저렇고 해서 고약함이 이루 다 말 할 수 없는 자입니다" 황 희 정승이 또 말했다. "그래, 네 말 또한 맞다." 곁에 있던 관속이 말했다.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또 다시 황 희 정승이 말했다. "그래, 네 말도 맞구나" (* 참고로 이 일화는, 어떤 곳에서는 농민간의 다툼이었다고 하고, 어떤 곳에서는 집안 시녀들의 싸움 즉 언쟁이었다 고 되어있다.)

위 두 판결은 한낱 이야기 거리로 그냥 웃고 넘길 그런 것만은 아니다.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전자는 솔로몬의 그것처럼 지혜로운 그리고 인간적인 것이었고, 후자는 이현령 비현령 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재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참고해야 할 얘기이며 사법철학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원인이나 과정을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을 중시한다. 보는 각도 즉 시각의 차이이다. 그런데 황 희 정승은 과정과 결과를 둘 다 용인한 것이다.

8.15.광화문 집회의 해괴한 허가 판결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집회를 허가해준 서울행정법원에 온 국민의 비난이 쏟아지고 담당판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다. 사법부의 판단은 양날의 칼과 같다. 그 칼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 만큼은 천부당 만부당하다. 지혜도, 휴먼도, 원인도, 결과중시도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만든 로봇도 할 수 있는 기계적인 판단이었던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서 그토록 경고를 했고, 그 중심에 교회들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을 터임에도, 그리고 확진자가 속출하는 사랑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을 천하가 다 아는 일임에도 재판부는 허가를 해주었다.

그것도 여러건의 고발장이 접수되어 형을 기다리는 사람을 병보석으로 풀어준 뒤에-. 그 결과 그들의 이번 집회로 인해 현재 몇 백명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숫자가 늘어날지 모른다. 법원은 100명의 시위라고 해서 허가를 해 주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하지만 말이 안 된다.

그들이 다른 시위들과 합쳐질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주야불철 피 말리는 사투를 벌이는 현시국과 관계자들 그리고 국민은 그들의 안중에 없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사법부가 시위참여자인 일반 시민과 그리고 경찰 등 공무원을 위험에 빠지게 한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코로나 환자 1인당 치료비가 331만원에서 7.000만원까지라고 한다. 그냥 주먹구구로 계산해도 수억대의 치료비다. 이 또한 어떻게 할 것인가?

역대 가장 긴 장마가 끝나고 이젠 매일 폭염특보가 내린다. 덥다. 코로나라는 해괴한 바이러스까지 창궐 하여 더 덥다. 그런데 이젠 하늘을 무서워하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단체들과 샤일록 같은 앞뒤 꽉 막힌 이 나라의 법관들이 열을 더 받게 하고 있다.

일터가 논밭이고 온 종일 접하는 것이 작물이어서 어떻려니 하고 있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닌가 싶다. 방송도 방송이려니와 매 시간마다 울리는 휴대폰 메시지가 점점 옥죄어 오는 느낌이다. 05시. 아직은 미명이다. 들녘을 건너 불어오는 약간은 선선해진 논둑길을 아침운동 겸 걸으며 해보는 여름날 아침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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