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결한 한국전쟁(6.25)
[다산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결한 한국전쟁(6.25)
  • 강진신문
  • 승인 2020.08.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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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만 _ 전 의정동우회장

자본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피비린내 나는 결투를 치르게 되는 곳이 바로 한반도. 한반도는 극동아시아에 있는 작은 반도로 땅으로는 중국에 닿아있고 바다 건너편으로는 일본을 마주하고 있으며 1945년 일본은 연합군에 항복 하면서 한반도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 시킨답시고 38선 남쪽은 미국군이 그 북쪽은 소련군이 들어와 남북으로 절반씩 갈라놓았다.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끝냈으면 물러날 일이고 38선도 없어져야 마땅한데 미국과 소련은 무슨 꿍꿍이 속인지 1948년 까지도 한반도에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38선 남쪽과 북쪽 지역에 정부가 들어섰다.

1948년 8월 15일 38선 남쪽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9월 9일 38선 북쪽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부가 들어섰다. 남한에서 이승만이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권력을 잡았다.

통일 독립 국가를 바라던 많은 한반도 사람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과도 같았다. 분단된 남한과 북한은 순탄할 수가 없었다. 우선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서 뽑힌 인물이 아니었다.

김구라는 지도자를 비롯한 정적들이 암살당할 때 마치 자기는 아무 관계가 없는 양 딴청을 부렸으며 친일파 무리들을 높은 자리에 앉혀 독립운동가와 국민들에 많은 타격을 주기도 했다.

북한의 김일성 남한은 이승만 그러던 중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9만 명이 소련제 최신무기로 무장하고 삼팔선 남쪽으로 진격해 왔다.

남한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날은 일요일 이어서 휴가나 외출로 부대를 비운 남한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또 삼팔선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한테는 이 우람한 소련제 탱크를 막을 무기가 없었다.

북한군은 삽시간에 서울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계속 진격했으며 남한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군도 북한군에게 상대가 되지 않아 미국은 유엔(국제연합)을 움직여 유엔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섰다.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에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하여 모두 16개 나라가 참가했다.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쟁의 흐름이 바뀌었다.

유엔군은 북한군을 삼팔선 북쪽으로 밀어내고 계속 북쪽으로 진격했다. 마침내 중국과 북한의 경계인 압록강 근처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중국이 유엔군이 자기나라까지 침략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위협을 느끼고 반격해 나섰다. 중공군 26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남쪽으로 진격해서 유엔군을 밀어냈다.

밀물같이 올라갔던 유엔군은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썰물처럼 내려왔다. 전세가 다시 뒤집힌 것이다. 같은 국민끼리의 전쟁을 국제적인 전쟁으로 바꿔 놓았고 그것도 영토를 둘러싼 이웃 나라들 끼리의 싸움이 아닌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하는 이념전쟁으로 바꾸어 놓았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졸지에 이념을 앞세운 국제 공룡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 영국, 런던, 중국 등은 한반도 사람의 생사고락과 고통은 뒷전이었다. 그보다는 자신들이 가진 이념의 승리를 한사코 전쟁을 계속했다. 전쟁은 3년 남짓 계속 되었으며 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무려 450만 명을 넘었으며 그럴만한 무기도 없는 민간인들 이었으며! 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끝이 났다.

전 세계에서 전쟁을 멈추라는 여론이 들끓은 가운데 소련의 스탈린이 죽은 뒤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마침내 휴전 협정을 맺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의문! 북한이 낙동강을 넘지 못한 이면과 맥아더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다시 후퇴한 이유! 6.25 그날 전쟁은 일시적으로 중단 되었을 뿐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휴전과 협정 사이에서 혹은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아무도 패배 하지 않으려 했던 이기기 위한 협상이 남긴 상처가 70년간 한반도를 배회하고 있다.

인천 상륙작전의 명장 늙은 군인 맥아더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군가 가사를 인용해 자신을 변호했다. 한반도는 둘로 나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되었으며 남한과 북한은 평화 협정도 아닌 휴전 협정에 기대어 불안한 미래를 맞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경계선으로 삼았던 삼팔선을 따라 휴전선이 그어졌다. 이 전쟁을 한국 전쟁 이라고도 하고 6.25 전쟁이라고 한다. 미국과 소련을 우두머리로 하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 때문에 얻어진 이 전쟁으로 한반도는 온통 피바다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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