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나쁜 말해 눈물 흘리는 장군바위
아이들에게 나쁜 말해 눈물 흘리는 장군바위
  • 강진신문
  • 승인 2020.07.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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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 10]
장군바위(Ⅱ)

 

꼬박 열 달 만에 아이가 태어났단다. 어찌나 울음소리가 컸던지 동네 사람들은 새벽잠을 설치고 노파 집으로 달려왔어. 영감은 자초지종을 설명했지. 동네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영감의 입으로 직접 듣고도 믿기지가 않는 거야. 노파가 애를 낳는다는 게 말이 돼? 그래서 아이를 보여 달라며 아우성을 쳤어.

"아이고, 이 사람들아. 제발 부탁이니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만 참아줘."
"아이를 낳았다면 못 보여줄 이유가 없잖소?

동네 사람들은 막무가내였어. 당장 집으로 뛰어 들어가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세였어. 세상에서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데 호기심이 발동할 수밖에. 영감도 기를 쓰고 막았어.

"자, 자……어서들 물러가라고.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단 말일세."

동네 사람들은 더는 보채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어. 그러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했어. 영감은 불안한 나머지 대문에 금줄을 당장 쳐놓았지. 큼지막한 고추도 달랑 매달았고 말이야.

태어난 아이는 보통이 아니었어. 태어난 지 이틀 만에 말을 하더니 꼿꼿하게 걷는 것도 모자라 펄펄 날뛰며 병정놀이까지 하는 거야. 영감과 노파는 도승의 말이 틀림없다고 믿었어.

하늘도 미리 태몽을 꾸게 하여 아이를 점지해 주었잖아. 그래서 도승의 당부를 하루하루 잘 지켜 나갔지. 아이를 부르지 않기 위해 이름도 짓지 않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아이를 보여주지 않았어.

어느 날 옆집의 젊은 아낙이 찾아왔단다. 노파는 일부러 아낙을 데리고 냇가로 나갔어. 그런데 아낙의 얼굴이 푸석푸석한데다, 근심이 가득 들어앉아 있는 거야. 노파는 걱정이 돼 물었어.

"이보게 얼굴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이제 더는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아요."
"무슨 소린가? 날 앞에 두고 그런 소리 하면 못 쓰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이렇게 늙은 나도 자식을 봤잖은가. 조금만 참고 기다려보게."
"흑흑."

젊은 아낙은 마치 노파가 어머니라도 되는 듯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어. 한참을 울고 난 뒤 아낙이 노파에게 넌지시 물었어.

"아이를 한 번만 안아볼 수 있나요?"
"……."

아낙의 갑작스런 질문에 노파는 미처 대답을 못했어. 아낙이 애원하는 눈빛으로 간절히 부탁을 했어.

"아이를 안아보면 저한테도 자식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 어서요."
"그건 안 될 일이네."

노파는 정신을 차리고 딱 잘라 거절했어. 그러고는 돌이 지나면 맨 먼저 아낙에게 안겨줄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했어. 누구보다도 아낙의 애타는 마음을 잘 알기에 노파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단다. 그런데 이웃집 아낙에게는 노파가 까마득히 모르고 있는 속사정이 있었어.

옆집 노파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에 젊은 아낙은 기쁨도 잠시 절망감이 찾아왔어. 늙은 노파도 자식을 갖는데 젊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태기가 없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그래서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어. 아, 그런데 이 무당이 옆집 노파가 낳은 아들의 기저귀를 몰래 훔쳐와 가슴에 품고 있으면 아이가 생긴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노파에게 아이를 한 번만 안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던 것이지.

젊은 아낙은 울컥 화가 치밀었어. 자신에게만은 아이를 보여줄 법도 했는데 노파가 매몰차게 거절하는 게 서운했던 거지.

아낙은 그날부터 옆집 노파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어. 노파가 아이가 있는 방을 잠시라도 비우기라도 하면 몰래 기저귀를 훔쳐올 참이었지.

드디어 때가 왔어. 노파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고는 모퉁이를 돌아가는 우물가로 가는 거야. 아낙은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담을 넘어갔어. 혹시 영감이 아기 방에 있을까 봐 살짝 방문을 열어보고 안을 살폈어.

"으악!"
젊은 아낙은 놀란 나머지 낮은 신음을 내뱉었어.

제법 큰 아이가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칼을 휘두르고 활을 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거야. 아낙은 혼비백산하여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어.
"도둑이야!"

기저귀를 훔치러 온 자기 자신을 두고 내뱉은 말이었지. 젊은 아낙은 반쯤 넋이 나간 채로 담을 넘어 집으로 도망쳐 왔어.

아기 방에서 나는 소리에 노파가 허겁지겁 달려왔어. 방문이 열려 있었고 방바닥에 앉아있는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거야. 영롱하게 빛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혼탁하고 사악한 눈으로 변해있었어.

"아이고, 이를 어째!"
노파는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어. 잠깐 아이 방을 비운 사이 누군가 방문을 열어본 게 틀림없었어.

아이는 점점 커가면서 이상한 버릇이 생겼단다. 바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손버릇이었어. 그러니까 도둑질을 하기 시작한 것이지. 가만 도둑질? 뭔가 짐작 간 게 있을 거야. 도둑이야!

옆집 젊은 아낙이 날아다니는 아이를 보고 내질렀던 말이었어.

안타깝게도 그 아이는 아낙이 "도둑이야!"라고 부른 뒤부터 진짜 도둑이 돼가고 있었던 셈이지.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비범한 재주는 찾아볼 수 없었어. 점점 대담한 도둑질만 늘어났어. 영감과 노파가 타이르고 윽박질러도 소용없었어. 집 기둥에 묶어놓고 심하게 매질을 해도 도둑질은 멈추지 않았어. 되레 아이의 도둑질은 섬뜩섬뜩 무서울 정도로 커져만 갔어. 이쯤 되니 강진에는 크고 작은 절도사건이 끊이지 않았어.

"현감 나리 큰일 났습니다."
어느 날 공방이 초죽음이 된 얼굴로 동헌으로 뛰어 들어왔어. 집무를 보고 있던 현감이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어.

"웬 호들갑인겐가?"
"한양으로 보낼 진상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뭐, 뭣이라?"

현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어. 임금께 올릴 진상품 관리를 잘못했다간 목이 댕강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어. 현감은 사실이 새어나가지 않게 입단속을 철저히 하고는 곧바로 노파네 집을 덮쳤어. 진상품을 훔칠 정도로 간이 큰 도둑은 노파의 아들밖에 없었거든.

"아, 아이코!"
노파 집으로 들어갔던 나졸들이 바람에 낙엽처럼 고꾸라졌어. 열두어 살밖에 안 된 아들이 어찌나 힘이 세던지 어른들 두셋은 상대도 되지 않았어. 놀란 현감은 완전무장한 군사들을 이끌고 와 아들을 간신히 제압했어.

"허허, 이를 어쩔꼬?"
현감은 몇날 며칠을 고민했어. 가만 내버려뒀다간 조선팔도를 휘젓고 다닐 산적 우두머리나 해적 우두머리가 되고도 남았어. 어쩌면 역적이 돼 나라를 뒤엎을 수도 있다는 섬뜩한 생각이 든 거야. 현감은 고민 끝에 임금께 장계를 올렸어. 노파의 아들을 처형해야 한다는 보고였지.

"파발이요!"
며칠 뒤 긴급한 파발이 도착했어. 임금이 현감의 보고에 답을 내려주는 파발이었지. 임금은 현감의 뜻대로 노파의 아들을 처형하라고 명령을 내렸어. 그렇게 장군의 기상을 타고 태어났던 노파의 아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단다.

노파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빠져 한동안 바깥출입도 못 했어. 몸은 점점 쇠약해져 누워있는 날들이 많았지. 그러던 어느 날 대문 밖에서 목탁 소리가 났어. 몇 년 전에 들렸던 바로 그 도승이야. 영감과 노파는 맨발로 뛰어나가 도승을 맞았어.

"아이고, 스님! 하늘의 날벼락이 어떻게 저희 집에 떨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노파는 도승의 도포자락을 붙잡고 흐느꼈어. 도승은 혀를 쯧쯧 차며 물었어.

"소승의 당부를 지키지 못하셨군요."
"흑흑, 누군가에게 아들을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래, 지금 아들은 어디에 있소?"
"도둑질을 일삼다 처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도승은 안타까운 듯 합장을 하며 낮게 읊조렸어.
"허어, 방정맞은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운명을 바꾸어버렸구나!"

도승은 바람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단다. 그 뒤 희한한 일이 벌어졌어. 마차가 내려왔던 바위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한 거야. 마을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장군바위가 눈물을 흘리네!"라고 외쳤어. 그 바위를 '눈물 흘리는 장군바위'로 불렀고 말이야.

그 뒤부터 팔영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절대 나쁜 말을 하지 않았단다. 그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사건을 겪었으니 그럴 수밖에. 반대로 아이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좋은 말만은 아끼지 않았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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