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신외무물(身外無物)
[다산로] 신외무물(身外無物)
  • 강진신문
  • 승인 2020.07.1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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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지난 2018년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 젊은 청년이 이전 손님이 남긴 담배꽁초와 음식물을 치워달라고 요구하자 종업원이 비웃었다며 폭행을 하고 칼로 찔러 살인을 했다.

최근에도 서울 강북구 아파트 경비원이 주차관리 중 입주민과 시비가 있어 그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모욕감을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절반 이상이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우발적 범죄라는 보도를 접했다.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만용을 용기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용기란 정의롭고 씩씩한 호연지기 기운을 지니고 있지만 만용은 사리분별을 못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무모한 행동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는 그 후 어려운 일을 당할 것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공자(孔子)가 안회(顔回)에게 말했다. "나를 등용해 주면 도를 행하고 나를 버리면 도를 간직한다. 오직 너와 나만이 이것을 할 수 있구나." 궁핍하게 살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꾸준히 덕행을 쌓고 있던 안회에게 더 없는 칭찬이었다.

반면에 성품이 굳세며 무사 기질이 다분한 자로(子路)가 곁에서 안연을 칭찬하는 것을 듣고 은근히 시샘이 나서 공자에게 대뜸 물었다. "도를 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전쟁에 임하는 상황이라면 선생님께서는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학식과 덕행은 안회에 미치지 못해도 군사나 병법은 최고로 인정받고 싶다는 속셈이었다.

공자의 대답은 의외로 냉담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배(舟) 없이 걸어서 황하를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자와 함께하지 않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해서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성취하는 자와 함께하겠다."

아무리 작은 일도 시작할 때 자세히 살피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마련이다. 공자의 속내는 자로의 무모한 용맹을 억제하여 진정한 용기를 길러 주기 위해서였다. 공자는 어느 날 자로의 강직함을 걱정하며 '자로 같은 사람은 명대로 살기 어렵겠구나'하고 말했다.

사람은 매 순간 도처에서 위험과 맞닥뜨리며 살 수 밖에 없다. 예지 능력이 탁월하여 환란을 미리 피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간의 한계다. 그래서 선조들은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며 풍전등화(風前燈火), 여리박빙(如履薄氷), 포호빙하(暴虎馮河) 등 숱한 금언을 남겼다.

얼마 전에도 대낮에 서울역 안에서 묻지마 폭행이 있었다. 30대 남성이 지나가는 여성이 자기를 쳐다본다며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광대뼈를 손상시키는 사건이다. TV보도를 시청하면서 딸자식을 둔 아비의 입장에서 염려와 분노가 솟았다.

내 신체를 내가 지니고 다니지만 전유물이 아니다. 부모님께 받았기에 부모님 것이며 조상의 얼을 이어 받은 소중한 생명이다.

옳은 일을 보고도 앞장서 행동하지 못함은 용기가 없는 것이지만. 참된 의(義)를 위해서는 망설임 없이 목숨을 바치더라도 한때의 분노(一朝之忿)를 다스리지 못해 타인의 생명을 훼손하고 빼앗거나 천하보다 귀한 내 몸을 상하게 하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내 몸이 귀하고 소중한 것처럼 남의 목숨도 소중하게 대해 줘야 한다. 호흡이 멈추면 온전한 신체발부를 부모님과 조상께 돌려야 한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풍토 속에 살면서 몸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신외무물(身外無物)이라는 글귀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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