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무위(無爲)를 생각하다(이사 하던 날)
[다산로] 무위(無爲)를 생각하다(이사 하던 날)
  • 강진신문
  • 승인 2020.06.2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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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수필가

시동을 걸었다. 옆자리를 바라봤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아내는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다. 5월의 햇살이 제법 따갑다.

23년 만인가. 같은 집에서 참 오래도 살았다. 광주에서 목포로 이사와 처음엔 유달산 자락에서 월세로 살았고 몇 년 후 양을산 아래 한옥으로 옮겼으며 그 후 이사를 한 곳이 지금의 아파트였다.

아니 조금 전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이미 남의 집이 되어 버린 그 아파트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 우리 부부는 실로 33년 3개월 만의 목포 생활을 접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길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는 제일중학교 사거리를 지나 갓바위 문화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눈에 익은 입암산 신록의 푸른 잎사귀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옆자리의 아내에게 물었다. "왜 눈물 안나?" 왜 눈물이 나느냐고 아내가 나에게 되묻는다. 의외였다.

자동차가 영산호를 옆에 끼고 달린다. 아침 햇살을 받은 수면이 어느새 윤슬로 물꽃을 피우고 있다. 호숫가 저 너머의 월출산 천황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목포와 영암 경계를 지나 잠시 영산호 수문 갓길에 차를 세웠다. 멀리 바라보이는 유달산은 녹음으로 더욱 짙어졌고 목포항 앞바다는 하늘을 담아 파랗게 질려 있다.

20대 후반, 흰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유달산 사옥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나는 목포사람이 되었다. 사옥은 나비의 더듬이처럼 안테나를 높이 세워 어디론가 금방 날아갈 듯한 모습이면서도 노적봉 옆에서 늘 그렇게 그림엽서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곤 했다.

아나운서 부스에 앉아서도 올망졸망 펼쳐진 다도해를 굽어볼 수 있었던 곳. 그 유달산이 지금 멀어지고 있다.

자동차가 어느새 금계국이 흐드러지게 핀 국도변을 달리고 있다. 꽃의 색이 황금색 볏을 가진 관상용 새 금계(金鷄)를 닮았다 해서 금계국으로 불린단다. 금계국은 북아메리카 남부가 원산지라고 하니 지구 반대편에서 이주해온 셈이다.

그에 비하면 나는 어떤가. 거리상으로는 이사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30분 후쯤이면 월출산 자락 강진달빛한옥마을에 도착할 것이니 말이다.

이삿짐을 실은 탑차도 함께 달린다. 그간 자잘한 세간(世間)들을 버릴 만큼 버렸고 우리가 옮길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다 갖다 놓았는데도 지금의 짐이 걱정이다.

나는 웬만하면 버리자 하고 아내는 아깝다 하면서도 엄청 버렸는데 저 짐을 다 어찌할까. 짐 때문에 마음의 짐이 조금은 무겁다. 하지만 앞으로는 가볍게 살리라. 욕심 없이 느리게 살고 싶다.

민들레 씨앗은 바람을 타고 이사를 간다는데 그렇게는 못 하더라도 버리고 비우고 느리게 살고 싶다. 너무 한가한 얘기로 들릴지는 몰라도 은퇴를 앞둔 지금부터는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자동차가 어느새 무위사(無爲寺) 삼거리를 지나고 있다. 그렇다. '무위'란 무엇인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지 않던가. 불교에서의 무위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도가의 법망에서는 자연의 순리를 지키는 것을 무위라 한다고 들었다. 일체의 부자연스러운 행위, 인위적 행위가 없음을 무위라고 볼 때 인간의 가장 행복한 삶은 자연스럽게 사는 것일 게다.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사는 일. 월출산 자락 무위사와 이웃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 짐이 좀 많으면 어떠랴. 앞으로 덜어 내면 될 일이고 그 짐을 마음의 짐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되는 것을. 무위사 삼거리를 지나자 바로 달빛한옥마을 푯말이 우리 부부를 맞는다.

이제부터는 자연과 온전히 친구가 되는 거다. 그들이 건네주는 이야기를 담을 만큼의 여백은 지니고 사는 거다. 걸림이 없이 사는 삶, 그 시작이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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