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공자의 열린교육
[다산로] 공자의 열린교육
  • 강진신문
  • 승인 2020.05.31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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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오랫동안 익숙했던 문화가 획기적으로 변하는 전환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변화가 대면(對面)에서 비대면(非對面)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집합교육 중심으로 이루어 졌던 학습이 일시적이지만 온라인 영상교육으로 대체됐다.

온 국민이 바라는 우선 개혁과제가 교육제도 개선이다. 폐쇄된 교육에서 열린교육으로 차등교육에서 평등교육으로 옮겨가게 된 계기가 자발적이지는 못했지만 백년대계를 위해선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래 전부터 열린교육, 평등교육, 도제식교육을 실천해왔던 사람이 학성 공자(孔子)다. 그는 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린 시절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가난하게 살았다. 생계유지를 위해 창고관리와 목장지기 등 잡다한 일을 하면서 성장했다.

배우기를 좋아했던 그는 22세 되던 해 목장지기를 그만두고 곡부의 허름한 집에 사설학당을 세워 인재양성에 전념키로 결심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했듯이 그도 처음 교육에 종사할 때는 여느 사람들처럼 생계 수단이 주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의 신념이 확고해지면서 교육은 만민이 평등해야 한다는 사상을 근거로 성학(聖學)을 계승하고 사도의 정신을 정립해 나갔다.

공자는 나태해진 제자들을 향해 "옥돌도 쪼아서 다듬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사람도 배우지 않으면 도와 진리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춘추시대 당시 교육제도는 어린 학생들은 태학. 국학. 향교 등에서 의무교육을 받았다. 수업료와 숙식이 무상으로 제공되었으며 가르치는 스승도 관리 신분이었기 때문에 일정한 녹봉(祿俸)을 나라에서 지급 받았다. 하지만 공자가 설립한 사설학당은 옛 법에 설립 근거가 없어 스승이 학생에게 곡식으로 사례를 받는 선례도 없었다.

공자는 궁핍한 가운데 한 지붕 밑에서 제자들과 함께 숙식했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자 날로 주위의 관심이 치솟기 시작했다. 노나라 인근은 물론 먼 거리에 있는 위나라와 오나라까지 학생들이 몰려들어 공자학원은 북새통을 이뤘다. 학생 수가 늘어날수록 재정 상태가 열악해 졌지만 공자는 걱정하지 않고 안빈낙도의 삶을 살았다.

공자 학원은 열린교육을 지향했기 때문에 문턱을 없앴다. "교육에는 가르침만 있을 뿐 차별해서는 안 되며(有敎無類) 배움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르친다"고 말했다.

사람의 본성은 선(善)하지만 기질과 습관에 길들여져 있을 뿐 군자의 가르침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선으로 돌아 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자가 학생들을 자신의 동생이나 아들처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지켜보던 신분이 천하고 궁색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제를 데리고 찾아와서 공손히 절하고 가르침을 부탁했다. 어떤 사람은 생활이 여의치 않아 정성껏 말린 물고기 한 두름을 가져와 자녀를 가르쳐 달라고 머리를 조아리자 공자는 물질의 많고 적음 보다 감탄해서 기쁘게 제자로 받아 주었다.

신분제도가 확고했던 춘추시대 말엽에 공자학원에서 시작된 차별 없는 평등교육은 파격이었다. 공자학원에 가면 차등 받지 않고 누구나 배울 수 있다는 소문이 국경을 넘어 널리 퍼졌다. 불선(不善)이 생활화 돼 있어 함께 앉아 말하기도 꺼리던 호향(互鄕) 사람들에게 까지 소식이 전해지자 한 아이가 공자를 찾아와 뵙는 것을 지켜본 제자들이 의아해 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학생들이 황당하여 학당을 그만둘까 웅성거리고 있었다. 공자는 그들을 불러 앉혀 놓고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어찌 이리도 한심한 행동을 하느냐? 사람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선입견을 가지고 확신한다는 것은 인간성을 헤치는 옳지 못한 행동이다. 호향 어린이가 새 사람이 되겠다고 배우러 오지 않았느냐 이제부터 다른 사람과 똑같은 학생의 신분으로 대하고 과거 행적을 따져 차별하지 말라"라 하며 엄중히 타일렀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끼리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유치원부터 서열을 매기려 하는 사교육의 열풍이 도처에서 불고 있다. 사학재벌은 족벌경영으로 학생 숫자를 금전으로 환산하며 온갖 편법과 비리를 저지르고 있다. 힘없는 보통사람들은 이마를 찌푸리고 바라만 본다.

인류 최초 열린교육, 차별 없는 교육, 사설무상교육을 실천했던 학성 공자의 교육방법을 살펴보면서 코로나19 모범적 대응으로 인해 선진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국민 한 사람으로 낙후된 교육 개선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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