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에 대한 극진한 충성, 신하들 본보기 된 최귀생
임금에 대한 극진한 충성, 신하들 본보기 된 최귀생
  • 강진신문
  • 승인 2020.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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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 8]
하늘이 내린 효자 최귀생(Ⅱ)

동네 사람은 귀생을 더는 말리지 못했어.

이런 소문은 온 동네에 삽시간에 퍼져나갔어. 사람들은 저마다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라며 최귀생을 칭찬했어. 그러나 귀생의 지극한 효성도 소용없었던지 어머니는 세상을 뜨고 말았단다.

귀생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지. 생각 같아서 어머니를 따라 죽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일이야. 부모가 물려준 몸을 함부로 해치는 것도 불효 중에 하나였거든. 귀생은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묘 옆에서 시묘살이에 들어갔어.

시묘살이가 뭔줄 잘 알 거야. 태어나서 제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3년 동안 부모가 보살펴줬으니, 자식도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묘 옆에다 집을 짓고 음식을 바치고 묘를 돌보며 사는 것이야.

그렇게 최귀생의 효성은 강진고을 뿐만 아니라 온 나라로 퍼져나갔단다.

세월이 한참이나 지나갔어. 나라가 어수선해지는가 싶더니 신무기로 무장한 왜적이 부산으로 쳐들어왔어. 바로 선조 임금 때 벌어진 임진왜란이야. 두 달 만에 한양이 함락되고, 임금은 평양을 거쳐 명나라와 가까운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됐어. 수많은 군사와 수많은 백성이 죽고, 조선 땅 거의 다 왜군에게 노략질을 당했지.

백성들은 침을 퉤퉤 뱉으며 임금 욕을 했어.
"선조는 임금도 아니야!"
"어떻게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저 살겠다고 도망을 쳐?"

화가 난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지르고 약탈까지 하였지. 뭔가 잘 못됐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선조 임금은 급히 두 왕자를 전쟁터에 내보냈지만 백성들이 붙잡아 왜군에 넘겨버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단다. 그때 최귀생이 홀연히 나섰단다.

"지금이야말로 임금을 가까이에서 안전하게 모셔야 할 때야."
"자네 미친 겐가?"

동네 사람들은 최귀생을 뜯어 말렸어. 조총으로 무장한 20만 명이나 되는 왜군이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걸 빤히 알고 있잖아. 그래서 곧 조선이 망할 거라 여겼으니 당연히 말릴 수밖에. 귀생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어.

"충은 효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으니 임금은 곧 어버이나 마찬 가지일세. 자네들은 부모님이 행여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남들처럼 손가락질하고 버리기라도 할 텐가?"

"그, 그건……."
동네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더는 할 말이 없었어. 최귀생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았거든.

귀생은 곧바로 짐을 챙겨 임금이 머무르고 있다는 의주로 떠났단다. 왜군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험난한 여정이었어. 까딱했다간 왜군들에게 붙잡혀 목숨을 빼앗길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길이었단다.

귀생은 무사히 의주에 도착했어. 도착하자마자 선조 임금께 문안인사부터 드리려고 했지. 그러나 그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어. 왕자들을 왜군에게 넘긴 자들도 조선의 백성들이었잖아. 신하들은 귀생을 믿을 수 없어 임금 가까이에 가지 못하도록 막았어.

귀생은 실망하지 않고 곧바로 궂은일을 찾아 나섰어. 의주에 차려진 임금의 행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단다. 전쟁 중이라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었지. 임금과 신하들이 먹고 마실 음식들이나 옷가지 땔감들은 다 백성들한테 나왔어.

하지만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도망치기 위해 온 임금, 군권을 세자인 광해군에게 넘겨버린 임금을 백성들이 좋아할 리가 없었어.

임금의 생활은 어느 백성이나 다름없이 곤궁하고 궁핍했어. 임금은 하루하루 통군정에 올라가 명나라 배를 기다렸어. 통군정은 의주읍성에 있는데 명나라와 조선을 가로지르는 압록강이 훤히 보이는 곳이야. 그러나 웬일인지 명나라 황제는 배를 보내주지 않는 거야. 임금은 통군정에 오를 때마다 애가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어.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임금은 통군정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었어. 길이 깨끗하게 닦여져 있었고 돌부리는 고사하고 나뭇잎 하나 떨어져 있지 않았어. 선조는 하도 의아해서 시중을 드는 환관에게 물었어.

"전라도 강진에서 올라온 최귀생이라는 자가 매일 길을 닦으며 쓸고 있사옵니다."
"최귀생이라……전라도 강진에서 일부러 올라왔단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

선조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 전쟁을 막지 못했다며 궁궐에 불을 지르고 어가 행렬에 돌을 던지는 백성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최귀생 같은 백성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게 고마웠던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옵니다."
"짐을 위한 일이 또 있단 말인가?"
"예, 전하. 지난번 수라상에 귀하게 올린 약밤도 그자가 정주고을까지 달려가 어렵게 구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온갖 궂은일은 스스로 찾아서 하고, 아침저녁으로 전하의 침소쪽으로 엎드려 문안인사를 드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충신 중에 충신이로다!"

선조는 감탄한 나머지 당장 최귀생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어. 선조 앞에 엎드린 귀생은 눈물부터 흘렸어. 온갖 고초를 겪고 있는 선조 임금이 아버지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야.

선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귀생에게 물었어.
"이 먼 곳까지 오느라 참으로 고생하였겠구나?"
"상감마마를 기쁘게 모실 생각뿐이어서 한달음 길밖에 되지 않았사옵니다."
"그래 이 난리 중에 부모는 어찌 두고 왔는고?"
"전하……어흑흑!"

 

최귀생은 대답 대신 울음보를 터트렸어. 선조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어.
"아니, 왜 우는고?"
"소인의 부모는 모두 죽었고 이제 제게 남은 어버이는 상감마마 한 분 뿐이옵니다."
"짐이 어버이라고?"
"그렇사옵니다. 어버이가 곤경에 처했는데 나 몰라라 할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이옵니까. 난이 끝날 때까지 지척에서 상감마마를 모시는 게 자식 된 도리라고 여깁니다."
"허허허, 기특한지고. 오늘 짐이 그대 말을 듣고 보니 없던 힘이 절로 생기는구나."

선조 임금은 모처럼만에 껄껄껄 웃었어. 그렇게 최귀생은 왜군이 물러나고 임금이 한양으로 돌아올 때까지 가깝게 옆에서 모시게 됐단다.

최귀생의 임금에 대한 극진한 충성은 모든 신하들의 본보기가 됐어. 어쩌면 선조 임금이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건너가지 않았던 이유가, 강진 출신 최귀생 같은 충성스러운 백성이 남아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임진왜란을 시작으로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끝나기까지 무려 칠 년이나 걸렸단다. 전쟁이 끝났을 때 조선은 만신창이가 돼 있었어. 수많은 백성들이 죽고 수많은 백성들이 일본으로 끌려 갔어. 논밭은 황폐화됐고 궁궐이나 백성들의 집들도 불에 타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나라처럼 보였지.

그러나 질경이처럼 질긴 조선의 백성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섰단다.

1605년, 강진에 내려와 있던 최귀생에게 고을 현감이 찾아 왔어.
"현감 나리, 어인 일이시옵니까?"
"기쁜 소식이오! 선무 원종 공신록에 공(최귀생)의 이름이 올라갔다고 하오! 아울러 '통정대부'의 품계도 내리셨소."

통정대부란 정3품에 해당하는 높은 벼슬이야.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관직이었고 녹봉도 주어졌지. 귀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몹시 의아해했어.
"네에? 자식 된 도리로써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공신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허허허!"
현감은 너털웃음을 웃으면서도 최귀생의 겸손함에 머리를 숙였어.

최귀생은 1628년에 세상을 떠났단다. 일 년 뒤, 인조 임금은 최귀생의 효행과 충심을 높이 사서 정려를 내렸어. 정려란 효자나 충신 열녀에게 내리는 최고의 증표였지. 후손들도 최귀생의 묘에 정려비문을 새겨 세웠어. 백성들은 정려문과 정려비문을 보며 최귀생의 효행과 충심을 길이길이 본받고 따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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