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공자의 생애
[다산로] 공자의 생애
  • 강진신문
  • 승인 2020.05.0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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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중국 전한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공자의 선조(先祖)는 송(宋)나라 사람이다."라고 기술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첩의 소생으로 아들 백니가 있었는데 다리를 심하게 절뚝거렸다. 친구 안양이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자기 셋째 딸 안징재를 그의 배필로 삼게 해 주었다. 부부는 아들을 얻기 위해 몸을 정결히 하고 이구산(尼丘山)에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여 아들 공자를 얻었다.

공자의 출생 년도에 관해서는 『사기』 <공자세가>에 기원전 551년 10월 경자일이라 했다. 공자의 탄생은 석가모니(釋迦牟尼)보다 10여 년 뒤며, 소크라테스(Socrates)보다 82년, 예수(Jesus)보다는 551년이 앞섰다. 어린 공자의 이마 꼭대기가 언덕처럼 생기고 머리 위가 움푹 들어갔다고 해서 이름을 구(丘)자로 지었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공자가 세 살 때 죽었다. 청상과부가 된 안징재는 어린 공자를 데리고 곡부 궐리로 이주하여 옹색한 살림을 꾸려야 했다. 자애로운 어머니는 총명한 어린 아들의 교육에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공자는 어려서부터 살생을 일삼는 전쟁놀이와 사람을 속이며 물건을 파는 장사놀이를 좋아하지 않고 예절 배우기를 좋아했다.

공자는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상한 가르침을 받아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고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었다. 당시 귀족계층 자제들은 관학에 들어가서 학문을 배우고 육예를 몸에 익혔다. 그러나 서민이었던 공자는 향교에 나가서 촌로들로부터 강학을 받거나 초보 군사훈련을 받았다.

한편 공자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내느라 집수리, 연장 만들기, 약초 캐기, 고기잡이, 사냥 등 일상의 잡다한 직업에 종사하였기에 다방면에 능했다. "나는 어려서 천했다. 그래서 잡일을 할 줄 안다. (吾少也賤故多能鄙事)"(子罕)고 했다.

공자는 가족을 봉양하고 제사를 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낚싯대를 드리워 고기를 잡되 새끼까지 잡는 그물질을 하지 않았고, 주살질을 할 때는 평온하게 잠자는 새를 쏘지 않았다. 보잘 것 없는 생물에게도 이같이 대했으니 사람을 대함은 짐작할 수 있고 작은 일에 대해서도 이와 같았으니 큰 것을 어떻게 했는가를 알 수 있다. (釣而不綱 弋不射宿) (述而)

밤낮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노동해 가난한 살림을 도우며 봉양하던 중 어머니가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17살 어린 공자는 슬픔을 견디며 예법을 다해 장례를 치렀다. 의지 할 곳 없는 공자는 어머니 생각에 사무쳐 맛있는 음식을 봐도 입맛이 없어 먹지 못하고 밤이 되어 몸이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공자는 비바람 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에 혼자서 인생을 꾸려가야 했다.

남달리 배우기를 좋아했던 공자는 낯선 글자를 보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물어 배우려 했고, 훌륭한 행실을 보면 미루지 않고 곧 따라 익히곤 했다. 천신만고의 아픔과 시련을 극복하고 육체와 정신이 건강하게 자라면서, 총명함과 착한 성품이 인근에 두루 알려 지게 되었다.

방년 19세 때에 송(宋)나라의 병관씨의 딸 기관씨와 결혼했고, 이듬해에 아들 이(鯉)를 낳았다. 공자는 22세 되던 해에 목장지기를 그만두고 곡부에 사설학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30세에 자기의 사상을 스스로 확립하여 인의를 실천해 나갔다. 공자의 명성이 인근 국가에까지 알려졌다.

35세가 되던 해에 노(魯)나라에 정변이 일어나자 제(齊)나라로 망명길에 오른 임금을 따라가 7년의 세월을 보내고 불혹의 나이 42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학당에서 다재다능한 제자들과 함께 즐거운 세월을 보냈다.

공자는 기원전 497년 55세 되던 해에 제자들을 거느리고 주유천하를 떠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69세에 돌아왔다. 부인과 아들을 먼저 보낸 비통함도 잠시 뿐이었다. 저술과 제자 양성에 매진하다 73세에 병을 앓게 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 했던 것일까. 뜰에서 지팡이를 짚은 체 하늘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허물어지며, 슬기로운 철인이 시드노라고" 그로부터 며칠 후 기원전 479년 4월 11일 거룩한 생을 마감했다. 제자들은 스승을 곡부의 북쪽 사수가에 매장하고 여막에서 3년 혹은 6년 복상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500년이 되었지만 악습을 버리고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창건하려 했던 그의 언행록 <논어>는 세계 문학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그가 실천했던 경천애인 사상은 세상이 어둡고 어지러울수록 더욱 밝은 빛을 발하며 시대를 초월하여 바른길로 인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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