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기고]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김억추 장수)
  • 강진신문
  • 승인 2020.04.1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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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임 _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끈 명궁수 지역출신 김억추 장수를 기리는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라는 책이 나왔다. 이에 이 책에 대한 서평을 간략하게 기록해 본다.

조선 선조 30년(1597년),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13척의 전선(戰船)으로 왜선(倭船) 133척에 맞서 싸워 31척의 적선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뒀다.

<선조실록> 권 94, 선조 30년 11월 10일(정유)에는 "신(臣, 이순신)은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김억추 등과 함께 전선 13척과 정탐선 32척으로 해남현 바닷길의 중요한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는데, 적의 전선 130여 척이 이진포 앞바다에서 이쪽을 향하여 왔습니다. 신은 수사 김억추, 조방장, 배흥립, 거제 현령 안위 등을 지휘하고 각각 전선을 정비하여 진도의 벽파정 앞바다에서 적들과 죽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웠습니다. 대포로 적선 20여척을 쳐부수고 쏘아 죽인 것만도 대단히 많았는데, 바다에 빠져 떠 있는 적 8명의 목을 베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는 치열했던 명량해전에서 왜군 선봉장 구루시마를 화살 1발로 쓰러트린 명궁수 김억추 장수의 이야기이다.

정찬주 작가는 작가후기를 통해  "김억추 장수를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통제사와 함께 눈부신 전공을 세우고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용장이다. 그런데 <난중일기>의 두 구절 때문에 억울하게도 용장으로서 빛을 잃는다. 첫 번째는 '우수사 김억추는 겨우 만호(萬戶)에나 적합할까 대장감이 못 되는 사람인데 좌의정 김응남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 구절은 이순신이 김억추보다는 김응남을 비난했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순신을 사사건건 비난하고 원균을 옹호했던 좌의정 김응남이 못마땅하니까 김억추까지 싸잡아 비난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여러 장수들은 스스로 적은 군사로 많은 적과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달아날 꾀만 내고 있었다. 김억추가 탄 배는 벌써 2마장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이 구절 역시도 김억추는 전선 후미에서 질서를 잡는 후위장 역할을 하느라고 물러나 있었을 뿐이었고, 실제로 전투가 벌어졌을 때는 너무 앞서지 말라고 이순신이 걱정했을 정도로 왜선과 맞붙어서 싸웠던 것이다" 라고 전하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억울한 인물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것도 소설가의 몫이라며 김억추 장수를 충(忠)과 효(孝)를 다했던 장수, 임진왜란을 종식시킨 장수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확신한다는 작가처럼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강진 출신 김억추 장수와 장수의 명량해전 전공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고, 재조명 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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