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고을 정보수집,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주변 고을 정보수집,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 강진신문
  • 승인 2020.03.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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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 3] 남당포를 지킨 김흥업 장군(Ⅰ)

 

조선시대 때 우리 강진은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단다. 육군 본부나 다름없는 전라병영성이 강진에 자리 잡게 된 이유만 봐도 알 수 있어. 적들이 배를 타고 강진 땅 깊숙이 들어와 있는 남당포에 닿기만 하면, 순식간에 한양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지.

1592년, 조선은 왜적으로부터 쑥대밭이 돼버렸어. 임진왜란이라고 부르는 전쟁이었지.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겨우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1597년 다시 왜군이 쳐들어 온 거야. 그 전쟁을 '정유재란'이라고 불러. 전쟁으로 불타버린 나라를 복구할 틈도 없었기 때문에 조선은 또 다시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단다.

우리 강진도 마찬가지였어. 병영성의 군사들은 경상도로 치고 들어오는 왜적을 막으러 가느라 텅 비어버렸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왜적을 물리치느라 강진 쪽을 돌아다볼 겨를도 없었어. 단지, 우리 고을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겠다고 일어서는 '의병'들만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어. 왜적은 순식간에 전주를 함락하고 난 뒤 두 패로 나뉘어 한 패는 북쪽으로 한 패는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노략질을 하였어.

1597년 봄, 여러 부대로 나누어 이곳저곳을 약탈하던 왜적이 강진만으로 쳐들어왔단다. 그때, 칠량에서 염걸 장군이 의병 300여 명과 함께 허수아비 작전을 펼쳐 왜적을 물리쳐버렸어. 뿐만 아니라 정수사 계곡으로 적들을 유인해 왜군 100여 명을 몰살시키는 전과를 올렸지. 염걸 장군이 왜군을 물리쳤다는 소문이 온 고을로 퍼져갔어. 모처럼 평화로워진 강진 고을에 장이 섰단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백성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좋아했어. 그때 대장장이가 쇳덩이를 떵떵 내리치며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했어.

"이 사람들아, 아직 좋아하긴 이르단 말이야!"
"자네 심술은 왜 그리 고약한가? 꼭 잔칫집에 고춧가루 뿌리는 것 같네."

사람들이 대장장이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어. 대장장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꼬치꼬치 이유를 설명해줬어.
"염걸 장군이 이순신 장군의 명령을 받고 경상도 쪽으로 곧 떠날 거라는 소문이 떠도니까 그러지."
"뭐, 뭐라고? 그럼 우리 강진은 어떡하고!"
"낸들 알겠나. 왜적이 다시 쳐들어오지 않기만을 빌고 또 비는 수밖에."

사람들은 걱정을 한가득 짊어지고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어.
이런 소식은 온 동네로 퍼져나갔어. 서둘러 깊은 산속이나 외딴 섬으로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허어! 강진이 곧 버려진 땅이 될 지도 모르겠구나."
어디선가 깊게 한탄하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어. 군동에 사는 김흥업이라는 사람이었지. 김흥업은 의롭고 기개가 넘치기로 소문난 양반이었어. 옆에 있던 아들 서봉이 대답을 했어.

"아버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강진이 어떤 곳입니까?
'금릉창의'가 일어났던 자랑스러운 곳인데 설마 버려진 땅이 되겠습니까."
"음, 금릉창의라……."

김흥업은 아들 서봉의 말을 몇 번이나 낮게 읊조렸어. 금릉은 강진을 칭하는 말이고 창의는 맨 먼저 의병을 일으킨다는 뜻이기 때문에, 어느 고을보다도 먼저 강진 사람들이 나서서 의병을 일으키자는 굳은 의지가 담긴 말이었기 때문이야.
김흥업은 결연하게 소리쳤어.

"서봉아 당장 의병을 모으자!"
"예, 아버님."
서봉은 곧바로 의병을 모으러 집을 나섰어. 김흥업이 의병을 모으고 있다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갔어.

덕망이 있고 기개가 높은 김흥업을 믿고 사람들은 피난길을 멈추었어. 그러고는 장정들 하나 둘 김흥업 집으로 모여 들었어. 그렇게 모인 의병의 수가 백여 명이나 됐어. 김흥업은 강진읍성과 병영성에 남아있는 무기들을 가져왔어. 별 볼일 없는 무기였지만 낫이나 호미 같은 농기구보다는 나았어. 농사나 장사를 하던 백성들이었지만 저마다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은 왜적을 당장이라도 동강 낼 기세였지.

김흥업은 의병들을 모아놓고 외쳤어.
"염걸 장군이 왜적을 쫓아버렸다고 하지만 언제 다시 쳐들어 올지 모르는 일이다. 분명 배를 타고 남당포로 들어올 것이니 우리는 미리 대비를 하여야만 한다. 손자병법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을 이긴 다는 뜻이다."

"와아! 김흥업 장군 만세!"
의병들은 김흥업을 어느새 장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어. 김흥업은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어갔어.

"왜적은 분명 밤을 틈타 남당포로 쳐들어올 것이다. 염걸 장군에게 혼쭐이 났기 때문에 벌건 대낮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이다. 지금은 고작 백여 명 뿐이지만 일당 백이라고 치면 우리는 33만 명이나 다름없는 군사라고 믿고 나를 따르도록 하라!"

"왜적을 물리치자!"
의병들은 김흥업 장군의 말처럼 만 명쯤이 외치는 듯한 함성을 질렀어. 김흥업은 곧바로 훈련에 들어갔어. 그러고는 왜적이 밤에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특별한 무기도 만들기 시작했지.

왜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날들이 이어졌어. 폭풍우가 몰려오는 전날 밤처럼 적막한 긴장감이 돌았지. 강진의 의병들은 손을 맞잡고 서로를 격려하며 버티고 있었어. 김흥업 장군도 마찬가지였어. 어떨 때는 애꿎은 백성들의 목숨을 붙잡고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도 같았어. 누가 봐도 왜적에게 맞서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똑 같았거든.

김흥업은 곁에 있는 아들 서봉에게 물었어.
"아들아, 넌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제 몸은 아버지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아버님이 두렵지 않게 생각하는데 자식인 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 할 수 있겠습니까?"

"흠……."
김흥업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어. 그때, 방문이 열리며 김흥업의 아내가 방으로 들어와 앉았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부인, 밤이 깊은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그게 아니라……아들 녀석 말을 듣다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들어왔습니다."
"허어!"

김흥업은 어렴풋이 아내의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아 낮은 신음을 내뱉었어. 아내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물었어.
"당신은 가문 걱정은 티끌만큼도 하지 않는 겁니까?"
"뜬금없이 웬 가문 타령이오?"
"서봉이가 잘못 돼 죽기라도 한다면 가문의 대는 누가 이어 간단 말씀입니까……흑흑!"

아내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어. 김흥업은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가슴 한 편이 먹먹해져왔어. 서봉이가 독자이기 때문에 행여 죽기라도 한다면 김씨 가문의 대는 끊기고 말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김흥업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주먹을 불끈 쥐었어.
"당신은 너무 슬퍼하지 마오. 나라가 있어야 가문도 있는 거 아니겠소. 나라를 잃어버릴 판인데 가문 따위가 아니 우리네 목숨이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이오. 나와 아들 서봉이의 결단은 이미 섰으니, 당신은 그리 알고 체념하기 바라오."
"흑흑, 여보……서봉아……."

김흥업의 아내는 더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럽게 울기만 했어.
"흑흑, 어머니!"
서봉도 혼절할 것 같은 어머니를 붙들어 안고 함께 울었단다. 이를 지켜보고 있는 김흥업의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어. 김흥업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남당포의 갈대들도 바람에 몸을 흔들며 서걱서걱 울어댔어. 점점 전운이 감돌았단다.

다행히 여기저기에서 왜군을 물리치고 있다는 승전보가 들려왔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의 활약은 대단했어. 그 바람에 왜군들이 남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어. 그러나 악에 바친 왜군들이 조선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어.

김흥업 장군은 주변 고을의 여러 정보들을 모으고 있었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왜군이 쳐들어오는 걸 미리 짐작이라도 하면 반드시 막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들에게 맞설 수 있는 특별한 방어책도 이미 마련됐고 말이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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