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시문학지(詩文學誌), 시조를 담다
[다산로] 시문학지(詩文學誌), 시조를 담다
  • 강진신문
  • 승인 2020.03.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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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헌 _ 광주전남시조시인협회 회장

초목에 싹이 트는 우수가 지났다. 백련사 동백꽃 피고지고 내가 사는 월남리 계곡의 홍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다시 찾아올 환한 봄날, 코로나19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나면 풀빛으로 물이 든 햇살들 거느리고 우리 강진을 찾는 관광객도 늘어날 것이다.

이런 남도의 길목에서 필자의 광고 카피(copy)도 한몫을 할 거라는 생각에 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내 마음이 닿는 곳 강진'이 우리 강진의 초입에서 관광객을 먼저 맞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만든 관광 슬로건의 키워드는 감성이다. 설렘이다. 하루 이틀 훌쩍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살짝 터치해 강진으로 발길을 돌리게 하자는 의도가 들어 있다.

강진은 참 감성적이다.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다. 독특한 문화가 있고, 살아 숨 쉬는 역사가 있다. 반도의 끝자락 강진은 상당 부분 감성과 맞닿아 있다.

1930년에 창간된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한 순수시 운동의 역사가 그렇다. 순수시가 개인의 정서에 중점을 둔 시이기 때문이다. '시문학'은 1930년 3월 창간호가 발간된 후 그해 5월과 이듬해 10월 3호를 끝으로 종간돼 아쉬움이 크지만 문학사에 남긴 업적은 크다.

그런데 '시문학'에 우리 시, 시조가 실려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만난 적이 없다.

'시문학' 창간호 편집 후기에 "제1호는 편집에 급한 탓으로 연구 소재가 없이 되었다. 앞으로는 시론, 시조, 외국 시인의 소개 등에도 있는 힘을 다하려 한다"라고 적고 있는 데도 말이다.

영랑과 함께 1930년 '시문학'을 창간해 편집과 재정을 맡았던 광주 광산 출신 용아 박용철은 이미 시문학 1호에 <비 내리는 날>이라는 시조를 발표했다. 2호에도 박용철은 <우리의 젖어머니>라는 3수로 된 연시조를 상재했고, 수주 변영로 역시 <고운 산길>이라는 제목 아래 3편의 시조를 2호에 발표했다. 또 박용철은 <애사哀詞 중에서>라는 큰 제목 아래 '그대의 돌아가신 날' 등 6편을 제3호에 실었다.

영랑은 1호에 <사행소곡四行小曲 7수>, 2호와 3호에 각각 <사행소곡 5수> 등 제목부터 사행시라고 이름 붙인 다수의 사행시를 시문학에 발표했다. '오-매 단풍 들것네'로 잘 알려진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로 시작하는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역시 4행 2연으로 된 시이다. 영랑은 유독 4행시를 많이 남겼다. 

시조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을 갖춘 시인데 반해 영랑이 주로 쓴 이런 사행시는 말 그대로 네 줄로 된 시이다. 시조가 각 장이 4음보(걸음)이고 종장의 첫 음보는 3음절, 두 번째 음보는 5음절에서 7음절까지라는 규칙이 있지만 4행시는 자유로운 시다.

시문학지가 3호로 종간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시조가 실렸을 것이고 영랑도 어쩌면 우리시 시조를 지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고 민족주의자였던 그의 족적을 봐서도 그렇다. 강진 출신 현구는 '시문학' 2호와 3호에 시조처럼 각 행을 4음보로 처리한 시를 많이 남겼다. 

시조를 쓰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것은 용아 박용철이 34세로 요절했고, 영랑과 현구는 한국동란의 희생자가 돼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또 시문학파의 일원이었던 정인보가 시문학지에 번역시만 발표했다는 거다. 정인보가 누구인가. 1926년 최남선, 이병기, 이광수, 이은상 등 당대 최고의 시조시인들과 국민문학파라는 이름으로 시조부흥운동을 펼쳤던 문인이 아니던가.

전조선문필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정인보는 순수 우리말을 주로 골라 쓴 시조 46편의 '담원시조집'을 출간할 정도로 시조를 사랑했지만 '시문학'에서는 그의 시를 찾을 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천년 전통의 시조가 품은 압축과 절제, 긴장과 이완의 묘미야말로 세상 어느 곳에 내놓아도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우리 한국인의 정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시, 시조, 수필 등의 장르에 등단하고도 시조의 매력에 빠져 시조를 주로 쓰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기도 하다.

2020 새봄, 우리 강진문학, 나아가 한국문단이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으로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감성을 품은 강진이 관광객으로 더 붐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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