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골프장 가는 날 아침에
[다산로] 골프장 가는 날 아침에
  • 강진신문
  • 승인 2020.02.24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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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한국, 그 등불이 다시한번 켜지는 날 너는 동방의 밝은 등촉이 되리라.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처 들린 곳…(후략)" - 라빈 드라나트 타골 -

그라운드 골프채를 싣고 차의 시동을 건다. 시동과 함께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온다. 미 아카데미상 4개부문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에 관한 소식이다. 어제 저녁도 뉴스의 전 시간을 할애했었다. 라디오는 시상 당시의 전후 정황을 대담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 뉴스를 들으며 인도의 예언가이자 시성(詩聖)이라 일컫는 타골의 시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어렸을적 그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았고 뒷부분은 생략 한 체 앞부분만을 달달 외우고 다녔었다. 아마 어린 나이에도 왜정 때 이런 시를 지어 피 압박 민족인 우리에게 보낸 그 시인의 인간다움과 역사의식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작년 봄 벚꽃이 한창인 4월초 서유럽을 여행했다. 그때 로마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가 일행에게 물었다. 그녀는 20년 넘게 이태리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 지금 유럽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몇 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치솟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행들이 대답을 늘어놨다. " 삼성전자, 반도체, 현대차… " 대답이 끝나자 가이드가 웃으며 외치듯이 말했다. "BTS !" 그리고 말을 이어 계속 했다. "지금 유럽에서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영국에서 공연이 있는데 입장권은 판매개시 7분안에 매진됐고, 유럽전역에서는 이 공연을 보려고 공연 이틀전인 지금 관객이 몰려든다는 bbc 방송의 뉴스입니다.

그들은 국경을 넘어와 호텔에서 또는 길 위에서 노숙도 불사할 것이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선 어디를 가도 코리어 하면 바로 알아봅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공항 입국심사때 코리어 하면 고개를 갸우뚱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 범근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면 그때서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아닙니다. 저 역시 이곳에 살면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이웃의 시선을 느낍니다. 우리의 위상을 국내에서는 잘 모릅니다. 여러분들 말씀대로 반도체도, 휴대폰도, 그리고 컴퓨터나 가전제품도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만. 그런데 … "

그녀의 넉살은 길게 이어졌다. 가이드의 말이 아니라도 실감은 했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공항에서 그리고 관광지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우리나라 사람들로 정말 우리가 잘 살게 되었는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자주 가는곳이 가까운 중국이나 동남아여서 이겠지 했었다. 그런데 유럽 또한 거의 같았던 것이다. 동양인이 보이면 반가워서 웃음을 띠우며 목례를 해주었었는데 그중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영화가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대단한 일이다. 영화감독 봉 준호. 지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로 낙인찍혀 숨을 죽이고 살았던 한 젊은 예술인이다. 그런 그가 기생충 이라는 영화 한편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00 여년이 되어가는 미 아카데미상 역사에서 비영어권 국가로서는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그리고 각본상과 국제영화상등 4개 부문을 동시에 석권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영국 아카데미 각본상 및 외국어영화상을 모두 휩쓸었다. 내일이면 미국에서 4개의 황금빛 오스카 트로피를 들고 돌아오는 그들의 환한 모습이 그려진다. 타골의 예언처럼 드디어 동방의 등불이 켜지고 있는 것일까?

기분이 들떠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총선을 앞두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기생충 같은 정치인들 때문에 속이 우글거렸는데 모처럼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상쾌하다. 하늘을 보니 맑고 바람도 한 점 없다. 오래도록 흐리고 바람이 세찼었다. 오늘은 홀인원이 여섯 개가 나왔으면 싶다.

마량면 그라운드골프장. 그 옛날 왜구가 침입하면 남해안에서는 가장먼저 봉화를 올렸다는 봉대산의 줄기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곳이다. 이곳 골프장이 생긴 이래 5개의 홀인원이 최고란다. 오늘 그 기록을 깨면 전 회원에게 한턱쏘아도 좋을 것 갔다는 생각을 하며 인조잔디가 파랗게 깔린 그라운드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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