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저의 작품을 보내고 싶네요"
"고향에 저의 작품을 보내고 싶네요"
  • 김철 기자
  • 승인 2020.02.16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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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 임춘택 화백 작품 300여점 기증의사

강진읍 기룡마을 출신인 임춘택 화백은 향우회에서 익히 알려져 있다. 매년 향우회 행사가 열리면 항상 방문해 인사를 전했고 작품을 선물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고향 강진에 대한 애착이 깊은 임 화백이 이제 고향에 그동안 그린 작품을 전시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임 화백은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5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님은 32세에 홀로 되어서 시어머니의 학대로 길 밑 논바닥에 문간 별채를 옮겨 집을 지어 주어 생활을 하다 길 위로 옮겼다.

임 화백은 그 집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는데 4학년 때 한복을 입고 연을 날리는 아이의 그림을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좋아했던 생각이 난다고 했다.

강진중학교 때는 베토벤의 금발머리와 빨간 머플러에 초롱한 눈으로 악보를 보는 모습을 그려 액자를 만들어 걸었다. 중학교 때 미술교사가 없어 음악교사가 그림을 지도하는데 저에겐 소질이 있으며 화가가 되라는 말이 없었다.

강진농고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강진농고에는 아예 없었다. 생물 시간에 동물, 물고기, 해부도를 잘 그려 생물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고등학교 때 옆 중학교 미술선생님께 부탁드려 개인 레슨을 부탁드렸더니 혼자라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때 주먹을 불끈 쥐고 열심히 석고데생 그림책을 보고 연습해 독학으로 조선대학교 미술과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임직순 교수님을 만나 열심히 미술에 전념하는데 5.16이 일어나 1달 동안 휴교가 되어 영화간판을 그려볼까 해서 영화관을 찾아보니 로버트 테일러, 제임스틴, 엘리자베스테일러 등 그림을 그리고 나도 외국 영화잡지를 사서 그려보다가 그 시기를 지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도암중학교에서 강사 7개월을 근무하고 제주도 대정여고에서 2년 근무하는데 불도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깡통을 불에 뜨겁게 달구어 방에 담요를 덮고 자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제주도 출신 미술대학교 학생이 없어서 한 학교 근무지를 두고 세 학교를 근무했다. 비포장도로에서 먼지가 자욱하여 버스를 탈려고 하면 목이 칼칼할 정도였다. 그 학교에 근무하면서 연극 발표회가 있어 무대를 장식하고 조명도 하여 도에서 1등을 했다.

2년 근무하고 임 화백은 어머님이 고혈압에 누워 계셔서 성요셉 여고에 근무하게 되었다. 성요셉 여고에서 10년 근무하고 80년도 문일고로 전근하여 김영실 이사장겸 교장선생님을 만나 명예 교장, 명예이사장 등 미 8군 대령과 스타에게 선물을 문의하셔서 우리나라 초가 설경을 그리게 하고, 얼마 있다가 교장실 앞 벽이 비어 있으니 120호 예수 그리스도상이 양떼와 같이 지팡이를 집고 있는 모습을 그리게 되었는데 지팡이를 쥐는 손이 잘 그려지지 않고 힘이 빠진 상태로 그려서 마루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린 다음 다시 그리기 시작하여 힘을 주는 손이 되었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150만원을 주셨다. 그 돈이면 변두리 집 한 채를 살 돈이다. 그 돈으로 10년간 계획을 하고 그림을 그릴수 있었고 구상전에서 감사,  부이사장, 한국미협에서 고문까지 이르렀다.

임 화백은 대학교 임직순 교수에 대한 기억이 깊다. 그림을 배우면서 나의 그림을 지도해 주신다고 물감을 묻혀 쓰기 위해 주부를 눌러 짜는데 물감이 없어지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덜컹거렸다. 물감을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물감 값이 비쌌기 때문이다. 그림을 가르쳐 주니 캔버스를 봐야 할텐데 물감없어 지는 것만 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교수님께서 물감이 그리 아까운가 일주일에 1갑을 써야 하네 하고 호통을 쳤다. 재학시절 흉년이 들어 돈을 가지고 쌀을 살 수가 없었다.

그 때 나보고 쌀 한가마를 가져올 수 없냐고 물어 어머님께 알아보고 오겠다고 하니 장성에 사는 친구에게 말하여 가져가신 모양이다. 대학 4년 때 선생님께 보답을 해 주지 못한 것을 생각하니 미안해서 2시간 이상 걸릴 거리를 버스에 쌀을 싣고 광주까지 가서 선생님댁 까지 가지고 가서 드렸다. 돈을 주시기에 안 받았더니 그림 한 점을 주시는 것이 기억이 난다.

임 화백은 한서대 겸임교수를 거쳐 10여회의 개인전과 500회가 넘는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한국미술협회 특별상을 비롯해 문교부장관상, 구성전 특선 3회, 대한민국 근정포장, 문예한국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여기에 임 화백은 한국문화미술대상전 심사위원을 비롯해 구상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임 화백의 작품들은 오는 5월 군과 조율을 거쳐 작품전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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