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소(2)
[다산로]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소(2)
  • 강진신문
  • 승인 2020.02.16 20: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권 _ 수필가

재상도 장의를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재상은 하인을 시켜 채찍으로 장의를 때리며 다그쳤다.
장의는 눈을 질끈 감고 수백 번 내리치는 매를 맞았다. 너무 심하게 맞아 온몸이 성한 데라곤 없어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재상은 장의가 그토록 많은 매를 맞고도 자백하지 않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장의가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우물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고 있던 장의의 아내는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여보, 내가 왔소. 장의가 왔단 말이오." 장의가 피투성이가 되어 비뚤어진 입으로 말을 내 뱉자, 그때서야 아내가 그를 알아보고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장의 아내는 남편이 죽도록 맞은 것을 보고 울먹이며 말했다.

당신이 제 말을 듣지 않더니 결국 이처럼 천대를 받는군요. 애당초 벼슬을 포기했다면 남에게 이토록 얻어맞기야 했겠어요?"

"이제 나와 함께 가정이나 잘 꾸려 나갑시다. 공자 선생도 수신제가(修身齊家)가 먼저라고 말씀하지 않았소." 장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아내를 향해 입을 벌리며 말했다.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는지 보시오"하고 묻자 "혀요?"하고 아내가 반문하자 장의는 "그렇소, 혀가 붙어 있소, 없소.?" 다시 묻자 "물론 혀야 잘 붙어 있지요. 혀가 붙어 있으니까 혀가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는 것 아니요? 아이고, 참! 얻어맞고 이 꼴로 농담을 해요?" 아내는 웃음을 참지 못해 씩 웃었다.

장의가 말했다. "부인 그럼 됐소, 혀만 그대로 있으면 무서울 게 없소. 이제 안심이오."하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장의는 눈을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혀만 있으면 어느 나라 왕의 마음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어, 이 세 치도 안 되는 혀로 수만 리 되는 땅을 정복할 수 있어'

장의는 조나라 재상으로 있는 친구 소진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소진과 장의는 귀곡자(鬼谷子) 선생 밑에서 동문수학 했던 절친한 관계였기에 내심 기하고 찾았다.

그러나 소진은 친구인 장의를 반겨주기는커녕 거지를 대하듯 푸대접을 하며 보냈다. 장의는 분개하여 '내 기필코 성공하여 너에게 다시 찾아오리라.' 다짐하고 진나라로 떠났다.

장의가 떠나자 소진은 곧장 하인을 불러 돈을 주며 그가 성공 할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도록 시켰다.

하인은 신분을 숨긴 채 장의에 뒷바라지를 충실히 했다. 장의는 졸음을 쫒기 위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병법과 심리학을 읽혀 마침내 실력을 인정받아 진나라 재상으로 등용되어 뜻을 펼치게 되었다.

장의는 소진의 임무를 부여 받은 하인과 하직인사를 하면서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 줄 모르겠다고 말하자 "은혜를 갚으시려거든 소진 어른께 갚으십시오. 나는 그저 명령을 수행했을 뿐입니다."하고 말했다.

장의는 비로소 친구 소진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진정한 친구는 면전에서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친구 앞에서는 충고해 주고 몰래 숨어서 도움을 주는 것이다.

고사에 '시오설상재(視吾舌尙在)'란 말은 '내 혀가 아직 성하게 남아 있다.'는 장의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곳은 모두 망가졌어도 정작 중요한 부분이 멀쩡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