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소(1)
[다산로] 내 혀가 아직도 붙어 있소(1)
  • 강진신문
  • 승인 2020.02.0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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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중국사회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던 전국시대 7대 강국 중에서 가장 힘이 강한 나라는 진(晉)나라였다.

진나라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여섯 나라 제후들의 고민이 깊어갔다. 약한 나라끼리 뭉쳐서 진나라를 공격할 것인가, 아니면 진나라와 개별적으로 연맹을 맺고 자기 나라를 보존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각 나라들은 뛰어난 책사를 기용하려 경쟁을 벌였다.

이 시기에 말재주가 좋은 정객 두 사람이 등장한다. 그들은 명성을 떨치고 돈을 벌기 위해 각국을 돌아다니며 약한 나라끼리 연합하여 진나라를 칠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으로 진나라와 화친을 맺어 평화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 떠들고 다녔다.

그 중 한사람은 소진(蘇秦)이라는 낙양 사람이다.

그는 이 두 가지 견해에서 자신의 뚜렷한 소신이 없었지만 명석한 머리와 타고난 구변으로 벼슬자리를 찾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장의(張儀)라는 위나라 사람이다. 그는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해 먹고 살기 위해서 어느 나라든 등용되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소진이 먼저 조나라의 재상으로 임명되었지만 장의는 그때까지도 등용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다 초나라 재상 소양의 집에서 식객 노릇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재상이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식객과 가신들을 데리고 연못가 정자에 앉아 술을 마셨다. 연회는 무르익어 사람들이 취기가 더해가자 시중드는 여자들과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시간이 더 흘러 흥이 최고조에 달자 한 손님이 재상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임금에게 그 귀한 '벽옥(璧玉)'을 상으로 받으셨더군요.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아무렴 재상의 공덕은 그야말로 위대하지요. 그 벽옥을 좀 보여주실 수 없으십니까?"

재상은 흐뭇하여 벽옥으로 된 큼직한 구슬을 꺼내어 손님들에게 보여주면서 그 과시했다. 손님들은 재상의 손에 들린 벽옥을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 은은한 녹색 빛깔과 정교함에 각기 한마디 감탄의 말을 쏟아 내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에서 첨벙 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물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밤이 이슥했을 때 그 물고기가 또 한 번 풀쩍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여기저기서 많은 물고기들이 뛰어 올랐다. 그 후 동북쪽서 먹구름이 몰려오며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서둘러 술자리를 거두었다.

연회가 끝날 무렵 재상은 만취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늦게 깨어났는데 가신이 엎드려 외쳤다.

"재상님, 어제 손님들에게 자랑하던 벽옥이 밤새 사라졌습니다. 제가 분명히 보물 서랍에 넣어두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재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손님들을 공손히 돌려보냈다. 그리고 어젯밤 연회에 참석했던 식객을 상대로 조사를 했다. 그런데 한사람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더니 재상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장의가 의심스럽습니다. 벽옥은 틀림없이 장의가 훔쳤을 것입니다."

"장의가 의심스럽다고? 그 이유가 뭔가?" 재상이 재촉하듯이 물었다.

"장의는 이곳에 올 때도 돈 하나 없이 빈 털털이로 와서 재상님의 신세를 지고 있지 않습니까? 장의는 이곳 초나라 태생이 아니라 언제라도 귀중품을 챙겨서 도망할 사람입니다."

재상도 장의를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재상은 하인을 시켜 채찍으로 장의를 때리며 다그쳤다.

장의는 눈을 질끈 감고 수백 번 내리치는 매를 맞았다. 너무 심하게 맞아 온몸이 성한 데라곤 없어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재상은 장의가 그토록 많은 매를 맞고도 자백하지 않자 더 이상 추궁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장의가 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우물가에서 쪼그리고 앉아 채소를 다듬고 있던 장의의 아내는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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