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현감 신유, 커다란 불길을 잡을 큰 연못이 필요
강진 현감 신유, 커다란 불길을 잡을 큰 연못이 필요
  • 강진신문
  • 승인 2020.01.2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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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우리동네 옛 이야기] 강진읍 소코뚜레 연못(1)

강진군도서관이 지난해 연말 지역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담은 동화책 '우리 동네 옛이야기, 남당포를 지킨 김흥업 장군'을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된 동화책은 강진읍과 관련된 전설과 역사,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지역의 향토사학자인 양광식 강진문사고전연구소장의 감수를 받아 김해등 동화작가가 직접 썼다. 옛이야기 동화중에서 발췌해 게재한다.


사람들은 강진을 두고 '와우형국'이라는 말들을 했어. 지금의 보은산이 예전에는 '와우산'이라고 불렸던 것처럼 소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라는 것이지. 사람들이 죄다 잠든 한밤중에도 소는 되새김질을 하며 온 동네를 굽어보고 있다고 생각해 봐. 절로 풍요롭고 든든해지는 느낌이 들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런 '와우형국' 때문에 강진 사람들이 애꿎은 눈총을 받기도 했단다. 강진 사람들이 성난 소처럼 드세고 고집이 셌다느니, 이런 고집을 꺾기 위해 현감이 소의 코에 해당한 곳에 연못을 팠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야. 사나운 소도 코뚜레를 하면 주인이 시키는 대로 온순해지니까, 그런 이치로 전설을 꾸몄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럼, 우리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때로 돌아가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볼까?

때는 1651년, 조선 효종 임금 때였단다.

강진은 그때만 해도 오지 중에 오지로 손꼽혔어.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을 유배 보내는 곳으로도 유명했고. 그래도 강진은 궁궐이 있는 한양에서 먼 곳이긴 했지만 아주 풍요로운 곳이었어. 산과 들 바다 그리고 강물이 함께 어우러져 물산이 아주 풍부했거든.

어느 날부터 효종 임금은 골머리를 앓았어. 임금은 마침 곁에 있던 도승지 앞에서 한탄을 했어.

"허어,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전하, 무슨 근심걱정이라도 있사옵니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임금을 모시는 도승지는 덜컥 걱정이 앞섰어. 도승지라면 임금의 얼굴에 드리워진 근심쯤은 알아서 척척 해결해 줄 필요가 있었거든. 효종 임금이 전라 관찰사가 올린 장계를 건네며 대답했어.

"강진 현감이 또 물러나겠다는 보고이네. 도승지는 이에 대해 뭘 아는 게 있는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강진 이속(말단 관리)들의 고집이 고래심줄처럼 질기고, 성질이 성난 황소처럼 드세어서 현감들이 도무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들었사옵니다."
"인근의 해남이나 장흥과 달리 유독 강진의 이속들만 그런 이유가 있는가?"
"그게……."

도승지는 마땅한 답변을 찾지 못해 얼버무렸어. 효종 임금은 답답한 나머지 혀만 끌끌 찼단다. 그때 이조정랑이 임금을 알현하고자 했어. 이조정랑은 벼슬자리를 정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는 신하라 효종 임금은 내심 반가웠어.

"어서 들라 하라."
"전하, 아뢰올 말씀이 있사옵니다."

이조정랑이 고개를 조아리며 예를 올렸어. 효종 임금은 반가운 얼굴로 이조정랑에게 물었어.
"그러잖아도 궁금하던 게 있었는데 마침 잘 왔느니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조정랑이 납작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어.
"전라도 강진 현감이 자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데 누구 마땅한 자가 없는가?"
"사실은 그 때문에 전하를 뵙고자 하였나이다."
"오호, 그래?"

효종 임금은 반가운 나머지 눈을 동그랗게 떴어.
"그 자가 대체 누군가?"
"신유라는 자이옵니다. 신유는 문장이 뛰어나고 기개가 넘쳐 드센 강진의 이속들을 잘 단속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흠."
"뿐만 아니라 신유 본인이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그래?
그럼, 좋다! 한 번 맡겨보기로 하지."

효종 임금은 흔쾌히 허락했어. 오지나 험지면 슬슬 피하기 마련인데 스스로 자처하고 나섰다는 게 믿음직스러웠던 거야. 그렇게 신유가 강진의 현감으로 내려오게 됐단다.

강진 현감 신유는 맨 먼저 산세를 살펴봤어. 신유는 문장뿐만 아니라 '풍수지리'도 밝았기 때문이야. '풍수지리'는 산과 물 그리고 들이 조화로운 곳에 터전을 잡아야 궂긴 일이 없이 잘 살 수 있다는 사상이지. 소문대로 보은산은 소가 엎드려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주변이 소와 관련된 지형들이 한눈에 들어왔어.

신유는 무릎을 탁 쳤어.
"내, 이럴 줄 알았어. 드세고 사나운 강진 이속들을 길들일 방법이 딱 하나 있지. 허허허."
신유는 급히 이속들을 불러 모았어.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여 명령을 내렸어.

"성 아래 양민들이 사는 곳에 급히 연못을 하나 파야겠다."
"현감 나리! 갑자기 뜬금없는 연못을 왜 파는 겁니까?"
이속들이 한 목소리로 이유를 물었어. 신유는 이속들이 자신의 말을 호락호락 들어주지 않을 거란 짐작을 했던지라 놀라지도 않았어. 고집이 센 이속들을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살살 꾀는 방법 밖에 없었어.

현감 신유는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어.
"백성들이 가꾸는 텃밭에도 물이 필요할 거 아닌가?"
"저희 강진은 비가 적당하게 내려줘서 마을 곳곳에 있는 연못으로도 충분합니다요."

이방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서서 따지고 들었어. 신유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옴짝달싹 못할 이유를 생각해냈지.
"어허, 연못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뭐가 또 있습니까요?"
"강진은 아직까지 큰 불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인근 고을에는 큰 불이 자주 난다고 들었다. 우리 강진도 미리 대비하려면 물이 가득 들은 큰 연못이 분명 필요할 테니 잔말 말고 당장 파도록 하라!"
"……."

이속들은 더는 반박할 수가 없었어.
"현감 나리, 연못을 팔 마땅한 자리가 어디입니까요?"
"음…저기가 좋겠구나."

신유가 가리킨 곳은 동헌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보이는 널따란 들이었어(오늘 날의 강진군도서관 터). 이속들은 하는 수없이 현감이 시키는 대로 연못을 크게 팠단다. 보은산에서 흐르는 물과 쏟아진 빗물이 모아져 연못은 금방 물이 차고 넘쳐났지.

하필이면 연못을 판 지 얼마 안 돼 아랫동네에 불이 났어. 하마터면 초가 수십 채로 옮겨 붙어 큰불로 번질 뻔했지. 다행히 신유가 파 놓은 연못의 물 탓에 큰불로는 번지지 않았어. 사람들은 오랜만에 어진 현감이 오셨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어. 이속들도 그런 신유 현감을 좋아하는 눈치였어.

신유는 펄쩍펄쩍 뛸 듯이 기뻤단다.
"허허, 생각보다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군!"

신유는 고분고분하게 느껴지는 이속들을 보며 낮게 읊조렸어. 그렇다고 계획했던 일을 늦추어서는 안 될 일이었어. 그래서 바로 다음 단계의 일을 진행하기로 결심했어.
신유는 이속들을 모두 데리고 강진읍성을 둘러보러 갔어. 그러다 동문이 있는 성곽 앞에서 우뚝 멈췄어.

"성이 이렇게 낮고 허술한데 적을 제대로 방어할 수 있겠느냐?"
"지난 번 왜구가 쳐들어와 무너졌던 곳인데 아직 보수가 덜 돼 그렇습니다요."
"뭐라? 왜구가 물러간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 모양이란 말인가?"
신유는 버럭 소리를 질렀어. 이속들은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댔어. 왜구가 물러간 뒤로 하필 기근까지 겹쳐서 미처 성곽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고 말이야.
신유는 당장 불호령을 내렸어.
"왜구가 쳐들어온다고 미리 기별이라도 한단 말이냐?"
"……."

이속들은 입이 열 개라도 부족했지.
"내일 당장 성을 새로 쌓도록 하겠다. 어떤 군대가 쳐들어와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아주 견고한 돌들로 쌓아야만 해. 알아 들었는가?"
"네이, 현감 나리."

이속들은 고개를 납작 숙여 대답했어. 신유는 이속들이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아쳤지.
"저기 바위와, 저-기 바위를 깎아내서 그 돌로 성을 쌓도록 하라!"

신유가 가리킨 곳은 보은산 비둘기 바위 위쪽의 봉우리와 군동의 금사봉 봉우리였지. 이속들은 신유가 미리 생각해두기라도 한 것처럼 깎을 바위를 콕콕 집어 가리키는 게 수상했지만 이것 저것 따질 처지가 아니었어. 그래서 시키는 대로 일꾼들을 데리고 봉우리들을 깎아냈단다.

깎아 낸 돌들이 동문 쪽 성곽 앞에 쌓여갔어. 수백 명의 일꾼들도 성곽 주변으로 몰려들었어. 새로 온 어진 현감을 보러 나온 사람들도 꽤 많았지. 왜냐하면 다른 현감들은 부임하자마자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했거든. 유배지나 다름없는 오지로 내려왔으니 백성들을 쥐어짜서 재산이라도 불려갔으면 했던 거지.

신유는 공방을 불러놓고 설계도를 내밀었어.
"성벽을 이쪽으로 이렇게 쌓도록 하라."
"……."
이속들은 신유의 명령에 토를 달 수 없었어. 다른 현감들은 성이 무너지건 말건 그대로 내버려두었는데, 새롭게 다시 쌓는다고 하니 반가울 수밖에.
언제 또 왜구가 쳐들어올지 몰라 늘 불안했었거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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