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싸락눈 날리는 날
[다산로] 싸락눈 날리는 날
  • 강진신문
  • 승인 2020.01.20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성한 _ 수필가

『하늘은 진눈개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유배지인 화순 능주의 초가 마당에서 조 광조는 한양을 향해 북향 4배를 했다. 그리고 그대로 꿇어앉아 집행관이 주는 사약(賜藥)을 두손으로 받아 마셨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그는 죽지를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집행관이 손짓을 했다. 역졸이 몽둥이를 들어 그의 뒤에서 후려쳤다. 그는 그대로 몸을 옆으로 뉘이며 죽어갔다. 그의 입과 코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와 싸락눈이 깔린 마당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조선 중종때 정치개혁을 꿈꾸었던 조 광조가 훈구파의 흉계에 의해 전남 화순으로 유배를 와 사약을 받고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이다. 그의 수제자로 19세에 과거에 합격했지만 20세가 체 못돼 벼슬을 하지 못하고 스승 조 광조를 모시던 양 산보에 대한 역사소설의 한 부분이다.

그는 스승의 죽음을 목격한 후 벼슬에 환멸을 느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그길로 우리 호남의 담양에 소쇄원을 지어 일생을 칩거했다. 그러나 여기서 쓰려고 하는 것은 그가 아니고 조 광조에 대한 것이다.

조 광조(趙光祖). 그는 과거(科擧)에 장원급제를 했다. 그리고 벼슬에 나아가 중종의 총애를 받았다.

그가 벼슬을 하면서 현실정치에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은 너무나 어지러웠다. 연산군의 폭정이 끝나고 중종이 즉위를 하여 세상은 변하는 줄 알았지만 오히려 백성은 살기가 더 힘들었다.

연산군을 폐위하고 중종을 옹립한 소위 중종반정에 공을 새운 훈구대신들은 천하를 쥐락펴락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몇백 몇천 두락의 토지를 소유하며 사가(私家)에는 수십에서 수백명의 사노(私奴)를 두고 부렸다.

심지어 그 중의 어떤 이는 사병(私兵)을 거느리며 무술까지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벗어나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고 아주 조그만 관직도 그들을 통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었다.

조 광조는 개탄했다. 젊은 그의 눈에 비친 현실은 그 참담함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그대로 두면 머지않은 장래에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그는 왕의 신임과 총애를 등에 없고 개혁에 착수했다. 이들의 사전을 몰수하고 사노를 혁파하는 조치를 단행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순조롭지가 않았다. 예상은 했지만 저항이 너무 컸다. 훈구파는 일제히 일어나 모함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왕도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었다. 왕의 조 광조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마침내 조선을 세울 때 했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의 방법을 이용했다. 木자와 子자 즉, 李(이) 씨가 나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고려말 시중에 퍼뜨린 노래가사를 역으로 이용했다. 대궐 안의 오동나무 잎에 바늘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그곳에 벌꿀을 발라 개미 등 곤충들이 뜯어먹게 했다.

내용인즉 주(走)와 초(肖)를 합하면 조(趙)가 되며 그것은 곧 조 광조를 뜻하는데 그가 왕이 되려한다는 것이었다. 궁녀로부터 글씨가 새겨진 오동나무 잎을 받아든 중종에게 훈구파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간했다.

역모의 뜻을 미물인 곤충이 먼저 알았다 는 것이다. 결국 왕은 그들의 뜻을 더 이상 물리치지 못했다. 그래서 백성을 하늘로만 알고 개혁을 이루려던 조 광조는 마침내 화순에서 그렇게 죽어갔다. 그것이 1519년 12. 20일의 일로서 정확하게 500년 전 일이었다. 이의 정사(正史) 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엄연히 기록으로 남아있는 이른바 기묘사화다.

그로부터 500년 뒤인 2019년 겨울, 개혁을 숙명으로 알았던 -발음은 같지만 성씨 자체는 다른- 또 다른 조(曺)씨가 사약을 받았다. "기억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한 역사는 돌고 돈다" 아놀드 토인비가 한 말이다.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씨가 오래도록 계속되더니 오늘따라 남해안 구강포구에 싸락눈이 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