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배려(配慮)
[다산로] 배려(配慮)
  • 강진신문
  • 승인 2019.12.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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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

아침에 일어나면서 곧바로 노트북을 연다. 그리고 메일을 크릭한다. 몇 년째 일상이 되어버린 하루의 첫 일과다. 몇 개의 메일이 와 있지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고도원의 아침편지' 다. 고 도원, 김 대중 대통령 때 청와대에서 대통령 연설문 작성자였다.

많은 사람이 책을 읽고 그 책에서 가슴에 와 닿는 글귀절을 보내면 고도원씨는 그 글에 자신의 느낀바를 덧붙여 독자들에게 띄운다. 맨 처음 한두 사람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아침편지 독자가 200만명 이라고 하던가? 오늘의 편지 제목은 '찌그러진 분유통' 이다. 내용이다.

'만 원밖에 없는 가난한 미혼모가 분유를 사러 갔다. 수퍼 주인은 한 통에 만 원이 넘는다고 말한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에서 가게주인은 조용히 분유통을 일그러뜨린다. 그리고 미혼모를 불러 세워 말 한다. "통이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입니다." - 진우의 <두려워하지 않는 힘>중에서-'

이어서 덧붙이는 해설이다.「배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되 상처를 주거나 자존감을 떨어뜨리면 안 됩니다. 분유통을 찌그려 뜨려 반값을 받는 지혜가 담긴 배려, 그 배려가 진정한 사랑입니다.」

몇 년 전 읽었던 '우동 한 그릇' 이라는 일본소설이 생각난다. 일본열도를 울렸다고 해서 구입해 본 것이다. 단편 소설인데 처음 읽으면서 눈물이 돌았는데 끝날 때 까지 눈물 때문에 몇 번이나 읽기를 중단해야만 했다. 테마는 배려였다. 간단한 줄거리다.

우동집 북해정. 1년을 마무리 하는 섣달 그믐날, 종업원들을 다 보네고 가게문을 닫으려는데,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초라한 행색의 한 여자가 들어온다.

"어서 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한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주인은 난로 곁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남편에게 우동 1인분을 시킨다.

남자주인은 꺼져버린 불을 다시 집히고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우동을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고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카운터 있는 곳까지 희미하게 들린다.

"맛있네요." 라는 형의 목소리. "엄마도 잡수세요." 라며 한 가닥의 국수를 집어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가는 동생. 이윽고 다 먹자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 라고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이듬해, 그 다음 해도 섣달 그믐날 그 시간이면 세 모자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해 부터 발길이 끊겼다. 그러나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섣달그믐이 되면 그들을 기다렸다. 아무리 손님이 북적여도 2번 테이블에 예약석의 팻말을 꽂아 비워놓고-.

어느 해는 가게 수리를 해서 집기를 바꿔도 2번 테이블은 그대로 두고, 어느 해부터는 우동값을 올려도 그날 그 시간이 되면 그전의 표시판으로 바꿔놓고 기다렸다.

그렇게 10여년이 흐른 후 섣달그믐날 저녁 세모자가 나타났다. 우동 세 그릇을 시키고 난 후 큰 아들이 말한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여기에 와서 어머니와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때 우동 3인분을 삶아 주자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그렇게 하면 자존감을 무너뜨린다고 하시면서 1인분 반을 주시던 사장님의 말씀을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그릇 반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동생은 금년에 검사가 되었습니다" 듣고 있던 주인 내외의 눈에서 눈물이 넘쳐흘렀다.

사랑이 담긴 배려가 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며, 그때 그러한 삶을 살으려니 했었는데 그동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메일을 읽고 다시 반추해 본 것이다. '황금만량이 귀한 것이 아니다. 남에게서 들은 좋은 말(語) 한마디가 천금보다 낫다' (黃金萬兩 未爲貴 得人一語勝千金) 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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