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겨울의 길목에서
[다산로] 겨울의 길목에서
  • 강진신문
  • 승인 2019.12.0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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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수필가

바람이 시원하다. 햇빛 또한 맑다. 벼 수확이 끝난 들엔 벼 그루터기만 남았다. 조금은 쓸쓸하다. 농민들은 벼를 걷어낸 논에 보리파종을 하느라 한창이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논바닥을 달리는 트랙터 꽁무니에 흙먼지가 뽀얗게 뿜어 오른다. 저 흙먼지가 보리싹을 덥고 보리는 그것을 이불삼아 한 겨울을 보내리라. 겨울의 문턱이다.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간다. 마당가 나무들을 다듬는데 이것도 일 이라고 한 낮이 되자 이마에 땀이 흐른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잠깐 쉬며 휴대폰을 꺼낸다. 그리곤 유튜브의 '서울의 소리'를 듣는다. 여의도와 서초동 촛불집회 때문에 요즘 자주 꺼내 듣는 1인 방송이다.
정규방송은 이를 중계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촛불집회 말고도 사연이 하나 더 있다. 대통령의 모친이 작고하셨다는 것이다. 방송은 그 내용을 전하면서, 6.25 때 함경도에서 월남하신 것과 자식들을 키우면서 고생하셨다는 내용을 함께 전한다.
방송을 듣는 도중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다.

92세이셨던 대통령의 노친분은 돌아가시기 전 병원을 자주 가셨는데 그 어떤 병원에서도 관계자들은 그 분이 대통령의 어머니라는 것을 몰랐었다는 것이다. 방송을 들으면서 언젠가 들은 고건 전 총리에 대한 얘기가 떠올랐다.

고 건 씨 하면 전라도 사람으로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고향이 호남(전북 군산)이어서 만은 아니다. 많은 공직 이력과 젊은 나이로 전남도지사를 했었기 때문일까? 전남 지사 때는 우리의 강진청자에 큰 관심을 가지고 당시 문공부 장관이었던 김 성진(?) 씨와 함께 대구청자도요지에서 직접 테이프를 끊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기도 한다.

그분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여.야와 보수 진보를 넘나들며 청와대 정무수석, 교통부 장관,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장관, 서울시장, 국무총리, 마지막으로 대통령권한대행 등 핵심 요직을 거쳤다. 하지만 80년 청와대 정무수석 때는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확대조치'에 반대해서 사임하는 기개도 보여줬었다.

그 분에 대한 얘기 한토막이다. 아니 그 분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될 것이다.
그 분 아버지 고 형곤 씨는 꿋꿋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었다. 전북대 총장시절 비서실을 없애서 화재가 됐었고, 박 정희 정권 때 국무총리를 맡으라는 전갈이 청와대에서 오자 한마디로 거절하였다고 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됐었다. 유신정권하에서 총리를 하는 것은 역사에 오명을 남기고 곧 그것이 수치로 여겨졌으리라.

그분의 친구 분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그 분, 고 형곤씨와 바둑을 두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참 바둑을 두다가 물었다. "서울대학교 총 학생회장을 했던 자네아들 지금 뭐하고 있는가?" 부친은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지금 전라도에서 공무원 하고 있다네"

그때 그는 고 건 씨가 시. 도청 어디에서 일반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뒤에 알고 보니 전라남도지사 였다 고 한다. 그 도 그럴것이 당시 고 건씨의 나이가 약관을 넘긴 37세 였던 것이다.

노인만 남은 농촌마을의 노인당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얘기가 자식 자랑이다.
뉘 집 아들은 무엇이 되었네. 뉘 집 딸은 이번에 빌딩을 샀다네, 라는 둥. 집안의 누가 작은 회사 이사만 되어도 프랑카드를 걸고, 사. 행시만 합격해도 잔치를 벌인다.

또, 작은 직위만 있어도 초상이 나면 5일장을 치르고, 조그만 관직이 주어지면 남들이 웃는줄 모르고 사무직 비서를 수행비서처럼 데리고 다니며 거드름을 피운다. 이러한 때에 초겨울 바람과 함께 들려오는 신선한 얘기다. "명예와 권력은 까마귀의 썩은 쥐와 같은 것. 봉황에게는 아무소용이 없다" 장자의 말 이었던가?.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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