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우직한 동물
[다산로] 우직한 동물
  • 강진신문
  • 승인 2019.11.2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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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_ 수필가

10여 년 전 상영되었던 <워낭소리>는 경북 봉화 두메산골에 노부부가 40년을 함께 살았던 소와 인간의 삶을 그린 다큐멘터리로 커다란 인기를 모았다.
 
예전에 소는 가족의 일원이었다. 외양간은 머슴이 자던 사랑채나 안방과 가까운 곳에 붙어 있었다. 도둑이나 맹수로부터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농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외양간에 들러 하얀 콧등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만져 온도를 측정해 소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다.

소먹이로 쇠죽을 끓여 두었다가 사람들의 식사시간에 맞춰 데워서 주었다. 대나무 숲이 흔들리는 소리에 깊어가는 겨울밤이면, 쇠죽 끓인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소는 인간이 베풀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소쩍새 우는 봄이 오면 동틀 무렵부터 땅거미 질 때까지 논밭을 갈았다.
 
소는 예부터 믿음직하여 부(富)와 근(勤)의 상징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와 관련된 많은 속담에 부정적인 비유가 많은 것을 보면서 인간의 표리부동한 이중성을 실감한다.
 
예를 들면 고집이 세면 '황소고집이다.'하고 아무리 일러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쇠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또 이치에 맞지 않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리켜 '지나가는 소도 웃겠다.'고 하고 어떤 일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경우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이 한다.' 와 같이 표현한다. 그리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와 같이 어리석고 우매한 동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이광수는 수필 우덕송<牛德頌>에서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며 부처요 성자라 했다.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는 신성(神性)에 달하기 위해 소를 본받아야 할 스승이라고 극찬했다.
 
옛날 우리 집에서 소는 재산목록 첫 번째로 꼽혔다. 가족의 병원비, 경조사 등 다급한 일이 생길 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한번 놓친 쇠고삐는 다시 잡기가 어렵다며 아무리 다급한 일이 있어도 끝까지 소를 팔지 않고 해결해 보려는 의지를 보였다. 농촌 사람들은 우환이 겹쳐 집안의 가세가 기울면 제일 먼저 소가 팔려 나가고 그 다음에 전답이 맨 마지막에 집이 팔려 나간다고 했다.

소는 외형상 우뚝 솟은 뿔과 덩치에 비해 성격이 굉장히 유순한 동물이다. 들이나 산에 고삐를 매어 둔 채 컴컴한 밤이 되어 찾아가면 무서워 꼼짝하지 않고 서 있다 주인 발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쉰다. 소는 우직해서 자갈길이든 진흙탕이든 가리지 않고 주인이 모는 대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또한 소는 모성애가 강해서 논밭을 갈면서도 송아지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기 때문에 곁에서 놀도록 한다. 광활한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모습,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젖을 뗀 송아지가 묶여서 팔려가던 날 어미는 먹이를 먹지 않고 저녁내 운다.

소는 살아서 논밭 일구는 일과 운송수단으로 죽어서 먹거리와 가죽을 제공하며 인간을 위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삶을 살다간다. 이제 기계화로 산골짜기와 민속 싸움소를 제외하면, 먹거리 제공을 위해 사육하는 소뿐이다.

거드름을 피우거나 서두르지 않고 인간을 위해 묵묵히 소임을 다고 담담하게 사라져간 소에 관한 이야기는 머지않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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