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가 몰랐던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숨은 이야기
[특집] 우리가 몰랐던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의 숨은 이야기
  • 강진신문
  • 승인 2019.11.1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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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만의 강진이야기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 1)
지난 7월 김재철 명예회장이 모교인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에서 후배들에게 특강을 하고 있다.

 

동원그룹 김재철 명예회장이 지난 7월 제261회 강진다산강좌를 통해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주제로 참석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익한 강연을 펼쳤다.

김재철 회장은 강진 출신의 성공한 기업인으로 어선 2척에서 시작해 동원그룹을 현재의 수산업계 리더로 성장시킨 1세대 창업 회장이다. 50년간 일선에서 동원그룹을 이끌어오다 지난 4월 퇴임했다. 김 명예회장의 모습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그려본다/편집자 주

김재철회장은 1934년 강진군 군동면 내동마을에서 태어났다. 내동마을은 비파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호기심이 강했고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소년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그는 평생 동안 새로운 것에 대한 지식추구와 배움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고 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그가 보여준 강한 호기심은 소년 시절 이미 그의 내면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면으로는 우직하게 밀어붙이는 고집과 뚝심이 남달랐다고 한다. 이 같은 그의 뚝심은 유년기를 넘어서 평생 동안 지속된 것이라고 한다.

김재철 회장은 훗날 참치 잡는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면서 한껏 자신의 인생을 세계무대에서 펼쳐나갔다. 그는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잘 활용하는 재주가 남달랐다고 한다.

요즈음은 개천에서 용이 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도시아이들이 접할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배울 뿐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유복하게 자란 아이가 누릴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긴 인생에서 보면 어디서 혹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더 나은지는 알 수 없다.

"불편함과 부족함이 반드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확신 할 수도 없다."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평범한 일이 특별한 경험에서 없어지는 일이 발생한다 할 수 있다.

모두가 자기가 하기 나름에서 개천에 용이 태어날 것이다.

"신이 역사 속을 지나갈 때 그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이다"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비스마르크'재상이 남긴 명언이다.

어디 이런 진리가 정치가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사람은 저마다 크고 작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해 가는 존재이다.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필히 신의 옷자락을 잡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와 결단이 있어야 한다.

신의 옷자락은 기다려 주지 않고 아무에게나 오지도 않으며 왔을 때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창업의 기회를 신의 옷자락에 비유할 수 있지만 막상 다가왔을 때 그것이 기회인지 아닌지를 알아차리기 힘들다.

사업이란 그만큼 치열한 세계이며 변화에 적응하는 자에게만 승리의 면류관이 주워진다. 끊임없는 도전과 변신이 곧 한국원양어업의 개척사이자 발전사이다.

"앎의 가장 큰 적은 무지가 아니라 안다는 착각이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때로는 풍자한 경험이나 건축연구가 새로운 프로젝트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 말이다.

경험과 오만은 치명적이며 과거 지나치게 의존할 때 우리는 쉽게 그 한계를 만난다. 과거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사람은 가지고 있는 경험이 많음에도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수 있다.

김재철회장에 의한 어장 개척사가 곧바로 한국 원양어업 개척사이다라는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크고 작은 어장개척이 그를 통해 이루어졌다. 원양트롤 어장은 해역별로 크게 북태평양어장 남태평양어장 대서양어장 인도양어장의 4대천역으로 나눌 수 있다. 남태평양 트롤어장은 다시 남서태평양 트롤어업(호주. 뉴질랜드수역 및 인도네시아 수역)과 기타 남북아메리카 연안 트롤어업으로 구분된다.

그가 개척하면 뒤를 이어 다른 회사들이 어장을 대게 공유하게 되는데 이를 두고 한 연구자는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나라 원양어업 진출의 일반적인 경향은 신규대당 어장에서 시범조업 실시되고 어장성이 판명되고 기업채산성이 양호하다고 인정되면 업계에서는 경험적인 어장조사가 시범조업도 없이 무조건 경쟁적으로 진출하는 것이 관행이었으며 심지어 다른 어장에서 조업 중인 선박까지 그곳으로 몰려들어 조업을 한다고 했다.

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욥기8.17)는 성경말씀이 있다. 새로운 사업은 처음에 시작의 의미를 분명히 알기 어렵다.

처음에는 미약했을지 모르나 이후 동원산업이 수산종합식품회사로 그것을 넘어 동원그룹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낸 사람에게는 행운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특별한 순간과 사건이 있다.

한사람의 품성이 그 차이를 만들어낸다. 진지함과 친밀감은 김재철회장의 뛰어난 덕목에 있다.
김재철회장이 걸어온 길에서 우리가 알 수 없었던 숨은 이야기가 많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 하고자 한다.

사익을 넘어서 인재육성에 대해서 사람 키우는 일에 대해서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인재 양성에 남다를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에 없었던 시절의 사람들에게 남다른 애국심이 있었다.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여기서 우리는 그가 사람 키우는 일은 어떻게 추진해왔는지 살펴본다.

인재육성, 사람 키우는 일에 대해서 김재철회장이 털어놓은 말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인재 양성에 남다른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고향사람 키우는 일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한 해는 창사8년이 되던 1977년부터이며 강진군 관내 중. 고교 가운데 실력이 우수하지만 가정이 어려운 학생을 돕기 위해 강진 동원장학회를 만들었다.

첫해에 9명, 다음해애 18명, 그리고 그 다음해에 28명 규모로 장학생의 숫자를 늘려 2014년까지 총 2000여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았으며 고향부터 눈을 돌린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교세라그룹의 창업자 이나모리회장이 창업하면서 먼저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고 다음에는 교토에서 그다음은 일본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큰 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저도 고향부터 시작해서 모교로 그리고 나라로 교육지원사업의 범위를 조금씩 확장해 왔다.

고향을 돕는 일에서부터 차근차근 하다가 마침내 1970년 숙원사업인 동원 육영사업을 설립했다.

1979년 기준을 보면100대 상장기업가운데 16개 업체가 장학재단을 갖고 있었는데 김재철회장이 3억 원의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한 일은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기업으로 보면 중견기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로 1979년에 설립된 장학재단 가운데 기금 규모로 보면 두 번째 재단이었다고 한다.(대기업포함2번째 재단)
 

국가 발전에 역군이 될 유능한 인재 육성 목적으로 설립된 동원육성재단은 본 재단의 설립취지에 합당하고 국가관이 투철하며 향학열이 충만한 장학생을 선발하여 지원 육성했다. 김재철회장은 자신이 1999년 육영재단을 설립한 일이 부를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창업에서부터 그는 기업을 사회와 더불어 존재해야 하고 사회에 필요한 기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면서 사회에 돕는 기업이라면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 하고 이런 방법 가운데 하나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동원산업이 조국발전의 원동력이 될 참된 인재육성을 위해 설립한 취지를 강조했다.

광야에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장학재단을 더 활발히 넓혀 나가면 여기저기서 꽃이 만개하는 것 같아 참으로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고 확신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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