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무명도공들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기립니다"
[특집] "무명도공들의 숭고한 삶과 정신을 기립니다"
  • 김철 기자
  • 승인 2019.10.1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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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도공 추모제 제47회 강진청자축제 성공을 위한 고려 무명도공 추모제

 

축제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4일 대구면 용운리에 소재한 정수사(주지 수현스님)에서는 고려시대 선조 무명 도공들의 안식과 넋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 무명도공 추모제 및 제47회 강진청자축제 성공 기원제가 봉행되었다.
이날 주지 수현 스님은 합창단의 찬불가가 불러지는 가운데 고려 무명 도공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경내에 세워진 혼불등에 불을 밝히며 고려청자 제작에 일생을 바친 이름 모를 도공들의 숭고한 삶을 기렸다.

추모제에는 이승옥 군수와 위성식 군의장, 김선우 경찰서장, 황호용 청자축제추진위원장이 무명도공들의 넋을 위로하는 차와 술을 올리는 행사에 참여했다. 이어 고려청자공예조합 김경진 조합장이 제문을 낭독했다.
대구면 청자촌에서 약 6㎞정도에 떨어진 용운리 천태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정수사는 천년의 고려청자의 역사를 있게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천태산 기슭 10리골 수백기의 가마에서는 도공들이 도자기를 굽기 위한 불타는 연기가 하늘을 가릴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고려 무명도공들에게 500년간이나 안식과 지식을 전하던 정수사에는 조선후기인 1562년에는 내암이 26동, 외암이 25동이나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정수사는 도공들이 작품을 구상하거나 가마에 불을 지필 때면 찾아와 기도하고 참선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고려청자를 만들던 정신적 귀의처라고 할수 있다.

군지에 따르면 정수사는 805년(애장왕 6)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묘적사와 쌍계사 두 사찰이 건립되었고 묘적사에는 천불상을 봉안하였으나 중세에 이르러 왜구의 침략으로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 폐허가 되었던 것을 만력 2년 갑술년(1574)에 산인 사민이 옛 절 그대로 중수하면서 정수사라 하였다. 지난 1991년 요사가 지어졌고 현존하는 당우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된 대웅전 등이 있다.

정수사는 자체적으로 지난 1961년부터 이름 없이 쓰러져간 고려 무명 도공들의 장인정신과 넋을 달래고자 고려 무명도공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지난 1997년에는 경내 도조사에 높이80㎝, 넓이35㎝의 무명도공 위패를 모셨고 2006년에는 도공들의 열정을 밝히고자 높이 2m에 이르는 석등 혼불등을 세웠다. 이어 지난 2010년 도조사 단청 외벽에 고려도공들을 오래토록 기억하고 전수 되도록 하고자 당시 도공들이 도자기를 빚던 과정들을 그려 넣었다.

외벽에는 도공들이 정수사를 찾아 기도하는 모습, 진흙 메치기, 가마에 굽기, 성형과 유약 작업, 완성작품 검토 과정 등을 테마로 그려 놓아 그 시대 도공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이후 강진청자축제를 맞아 축제 하루 전날 지역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군민들이 정수사 도조사에서 고려 무명 도공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와 함께 강진청자축제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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