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장군의 전설 - 의병대장 염걸장군(2)
허수아비 장군의 전설 - 의병대장 염걸장군(2)
  • 강진신문
  • 승인 2019.07.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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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11)

 

염걸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 바다로 진격했어. 곳곳이 전쟁터였지만 밤만 되면 슬픔이 몰려왔지. 회령진에서 죽은 아들이 죽어가면서 했던 말이 자꾸자꾸 생각나.

'칠량 앞바다에서 아버님과 함께 고기 잡는 게 꿈이었는데…….'
"흑! 내 아들, 홍립아!"

염걸 장군은 그만 여태 감춰뒀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어. 그때였어. 아우 염서가 헐레벌떡 뛰어와 소식을 전했어.

"형님, 큰일 났습니다."
"무, 무슨 일이냐?"

염걸 장군은 서둘러 눈물을 감추고 염서의 대답을 다그쳤어.
"몰운대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아들 '면'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뭐라?……이런 비통한 일이!"

염걸 장군은 가슴을 치며 아파했어. 회령진에서 아들 홍립을 잃었을 때처럼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어.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질까 봐 슬픔을 억누르고 있을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떠올랐고.

염걸 장군은 서둘러 명령을 내렸어.
"장군님의 원수를 갚자! 당장 출전준비를 하라!"
"예, 형님!"

염서는 형님의 명령을 곧장 따랐어. 염걸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몰운대로 쳐들어갔어. 왜군들이 배에서 내려 쉬고 있는 틈을 타, 번개처럼 기습을 했어. 방심하고 있던 왜군들을 쳐부수고, 우두머리 장수까지 생포해버렸지. 이 소식은 이순신 장군의 귀에도 들어갔어.

"염걸 장군이 아니었으면 난 죽을 때까지 치욕스러웠을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칭찬도 모자라 임금께 장계를 올렸어. 임금은 염걸 장군에게 '수문장'이라는 벼슬을 내려줬어. 이순신 장군은 염걸을 친 아우처럼이나 아끼고 믿었어. 크고 작은 전투에 불러서 함께 싸우기도 했지.

아마, 모두들 잘 알 거야.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전투 말이야. 바로 '노량해전'이지. 이 노량해전에도 염걸은 이순신 장군 곁에서 용맹하게 싸웠어. 왜군의 배 수십 척을 부수고, 왜군의 장수 수십 명을 베어 큰 공을 세웠단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이 죽는 바람에 염걸 장군의 공로는 조정에까지 전달되지 않았대.

노량해전에서 대패한 왜군들은 싸울 힘이 없었어. 그저 목숨만 건져 일본으로 도망치면 다행이었지. 이건 절호의 기회였어. 다신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지 못하게 기를 싹둑 잘라버려야 했지. 하지만 조선의 병사들은 이순신 장군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컸어. 퇴각하는 왜군들을 쫓아가 전멸시킬 생각을 못했지.

그때 나선 사람이 바로 염걸 장군이었어.
"당장 거제로 진격한다!"
왜군들이 거제를 거쳐 일본으로 도망친다는 걸 알았지. 그러나 아우인 염서와 염경의 생각은 달랐어. 형님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를 쓰는 거야.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위험합니다!"
"도망치기 바쁜 적들인데 뭐가 두렵다고 그러느냐!"

염걸 장군은 되레 아우들을 나무랐어.
"아무리 그러셔도 이번만큼은 형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형님, 명령을 거둬주십시오!"

염서와 염경은 형님을 끝까지 설득했어. 염걸 장군은 벌컥 화를 내며 소리쳤어.
"저놈들을 살려 보내면 또 다시 쳐들어올 것이다."
"……."

"그땐, 우리 조선에는 이순신 장군님도 없고 너희들과 나도 없을 것이다. 내 아들 홍립이나 장군님의 아들 면처럼 왜적의 칼에 쓰러져가는 백성들 밖에 없을 것이다. 이래도 저놈들을 살려 보내겠느냐?"

"형님……."
염서와 염경은 그만 무릎을 꿇었어. 오로지 나라와 백성만을 위하는 형님의 뜻이라면 죽음이라도 두렵지 않았지.

염걸 장군은 병사들을 이끌고 거제로 달려갔단다. 그러나 거제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했어. 전국에 흩어졌던 왜군들이 속속 몰려들고 있었고, 그들을 태운 군선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있었어.

"저 배가 대장선이다!"
염걸 장군이 화려한 군선 한 척을 가리켰어.
"전쟁에서 장수 한 명은 병사 수천수만을 대신할 수 있다. 저 배에 탄 장수들을 죽여야겠다."
"형님, 거리가 너무 멀어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흠."

염걸 장군은 한참을 궁리한 끝에 작전을 얘기했어.
"염서는 오른쪽, 염경은 왼쪽에서 공격하는 척하여 적들의 시선을 돌리도록 해라. 난 그 틈을 타 대장선에 불화살을 쏘아 집중 공격을 하겠다."
"예, 장군! 명을 받들겠습니다."

염서와 염경은 고개를 숙여 깍듯하게 대답했어. 그러고는 병사들을 이끌고 흩어졌어. 염걸 장군은 화살을 잘 쏘는 병사들을 이끌고 대장선 가까이 접근했어.
"와! 물리쳐라!"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드디어 두 아우가 양쪽에서 공격하는 척했어. 그러자 짐작했던 대로 왜군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흩어졌어. 염걸 장군은 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 명령을 내렸어.
"지금이다! 불화살을 당겨라!"
"넷!"

병사들은 포구 가까이 달려갔어. 그런데 아뿔싸!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거야.
"으악!"
왜군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병사들이 빠져버렸던 거야. 왜군들의 함성이 들려왔어.

"조선 병사들이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흩어졌던 왜군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었어. 대장선이 먼 바다로 빠져나가는 게 보였어. 염걸 장군은 칼을 휘두르며 목청껏 외쳤어.
"맞서 싸워라! 백성들의 원수를 갚자!"
"와아!"

그러나 몇 곱절 많은 왜군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어. 조선의 병사들이 하나 둘 피를 토하며 쓰러져갔어. 사방에서 활과 총탄이 날아들었어.
"형님!"
염서와 염경이 앞 다퉈 달려왔어. 삼형제는 죽을힘을 다해 왜군들과 맞서 싸웠어.
"윽!"

염경이 왜군의 칼에 가슴이 찔려 쓰러졌어. 염서는 "아우야, 안 돼!"를 외치며 왜군들을 무찔렀어. 베고 또 베어도 왜군들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어. 염서도 염경을 구하지도 못한 채 쓰러졌어.

"형님, 저희들은……컥."
"아우들아, 흑!"

염걸 장군이 달려왔지만 염서와 염경은 눈을 뜨지 못했어. 이를 본 병사들은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어. 기세가 살아난 왜군들이 짐승처럼 날뛰며 조선군을 죽여댔어.
"물러서지 마라!"
염걸 장군이 칼을 휘두르며 독려했지만 병사들은 점점 뒤로 물러났어. 이제 염걸 장군의 목숨마저 위태로웠어. 바람 앞의 등불처럼 곧 꺼질 것만 같았지.

그때였어.
"주인마님!"
염걸 장군의 노비들이 달려왔어. 훈련된 병사들마저 주춤하고 물러서는데, 노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든 거야. 노비들은 염걸 장군을 에워싸고 왜군들과 맞서 싸웠어.
'탕!'
그때 한 발의 총탄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어.
"헉……윽!"

염걸 장군이 가슴을 움켜쥐며 피를 토하고 쓰러졌어.
"마님, 장군님!"
노비들은 염걸 장군을 부둥켜안고 울었어. 왜군들이 달려들어 목을 베고 가슴을 찌르는 줄도 몰랐어. 그렇게 염걸 장군과 두 아우 그리고 노비들은 장렬하게 전사했단다. 염걸 장군의 나이가 쉰 넷이었을 때니까, 1598년 11월이었어. 염걸 장군의 전사 소식을 들은 강진 사람들은 땅을 치며 목 놓아 울었단다.

그렇게 일본과 7년간의 전쟁은 끝이 났어.
임금은 왜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염걸 장군에게 병조판서를 내려줬어. 장군이 살던 집에는 붉은 문을 세워 충정을 기리게 했지. 후손들과 마을 사람들은 강진군 칠량면 단월리 율변촌에 염걸 장군 삼형제와 아들 홍립의 묘를 함께 썼어.

그러고는 '사충묘'라고 이름을 지었지. 아, 사충묘 옆에는 주인을 따라 왜적과 맞서 싸우다 죽은 노비들의 묘도 있단다. 바로 '충노의 묘'란다.

자세히 알아보기

칠량면 단월리 율변촌에 '사충묘'와 '충노의 묘'가 있다. 의병대장 염걸 장군과 외아들 홍립 그리고 아우들인 염서와 염경의 묘를 한데 모아놓은 곳이 '사충묘'이다. '충노의 묘'는 염걸 장군을 따라 왜적을 물리치다 죽은 노비들이 묻힌 곳이다.

조선이 왜적과 맞서 싸운 큰 전쟁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시체를 거둘 수 없는 일이라, 죽은 사람들의 옷가지나 신발, 쓰던 물건들을 가지고 혼을 부르는 '초혼장'을 치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의병대장 염걸은 1545년 칠량면 율변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큰 공을 세워 1605년 병조판서로 추증됐고, 장군이 살던 집에는 붉은 문을 세워 충정을 기렸다고 한다.

바닷가에 허수아비를 세워 왜적을 도망치게 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허수아비 장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에 맞춰 해마다 열리는 고려청자 축제 때에는 바닷가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염걸 장군이 우리 강진을 구한 공적을 되새겨보고 있다.

또, 왜적을 지금의 정수사 깊은 골로 유인하여 죽였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정수사 입구에는 '염걸 장군 성전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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