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보기관 전략첩보국 OSS 훈련 1기생 출신
미국 정보기관 전략첩보국 OSS 훈련 1기생 출신
  • 김철 기자
  • 승인 2019.07.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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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포커스] 타계한 지역출신 애국지사 박금룡 선생

 

작천면 군자리 출신...지병으로 국립대전현충원 안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하며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인 애국지사 박금룡 선생이 향년 94세의 나이로 지난 8일 별세했다. 박 선생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치됐다.

박 선생은 박금동과 박한식으로 알려졌다. 박 선생은 지난 1925년 12월 16일 작천면 군자리에서 태어났다. 박 선생은 군자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헌병대에서 군무원으로 근무하다 일본권 헌병대 비밀서류 등을 챙겨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후 광복군이 있다는 서안에 도착해 광복군 제2지대 제2구대 소속 분대원으로 배속된다.

함께 탈출한 한종원과 최봉상과 같이 제2지대에서 함께 활동했고 당시 제2지대장은 이범석이었다. 2지대는 몇 개의 구대가 있었고 구대내에는 10여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된 몇 개의 분대가 있었다.

제2지대에 들어간 박 선생은 곧바로 기초적인 군대훈련을 1개월정도받고 난 이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정보기관 전략첩보국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의 훈련을 받았다.

이 훈련은 한국광복군을 OSS 대원으로 훈련시켜 국내 진공 및 대일공격 작전에 참여토록 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훈련은 크게 3개반으로 나눠 무기훈련반, 무전훈련반, 정보훈련반으로 나눠 각각 훈련을 진행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학병 출신들은 무전, 정보 훈련을 받았고 박 선생은 무기훈련반에 배치돼 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중국 시안에서 실시됐으며 광복군은 1945년 8월4일 OSS 훈련 제1기생을 배출했다. 그러나 일제의 항복으로 국내 작전은 전개되지 못했다. 박 선생은 3년6개월의 독립운동 기간을 인정받아 정부는 지난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쓰촨성(四川省) 충칭(重慶)에서 대한민국의 군대인 한국광복군이 창설된다. 한국광복군은 한말 의병과 만주지역 독립군으로 이어져 온 항일무장투쟁의 전통을 계승한 무장 조직이었고 1946년 5월 복원선언을 발표하고 해산할 때까지 6년여 동안 중국대륙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45년 4월 임시정부 군무부장이 김구에게 보고한 보고서를 보면 총사령부와 3개 지대의 장교 및 사병은 총 514명이었고 이중 광주·전남 출신은 42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박 선생은 유족으로 장남 박남수, 차남 박경수, 삼녀 박혜경씨로 2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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