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된 이무기의 전설 - 용혈굴(2)
용이 된 이무기의 전설 - 용혈굴(2)
  • 강진신문
  • 승인 2019.06.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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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 용혈산의 용굴(9) -

 

마을에서 가장 어른이 물었어.

"용을 달랠 방법은 없는가?"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지, 옷흐흐흐!"

무당은 음산하게 웃으며 대답했어. 터무니없는 말 같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어. 보통 이무기가 아니란 걸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니 무당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

제를 올리는 날짜가 잡혔어. 제물로 바칠 처녀를 정하는 게 급해졌어. 시집 안 간 처녀가 있는 집들은 난리가 났단다. 혼인을 서둘렀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 게 아니야.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어. 이무기 소문이 퍼져서, 월하마을 사람들을 마치 역병 걸린 사람처럼 대했거든.

무당은 천연두를 앓지 않은 처녀를 원했어. 천연두는 얼굴에 보기 흉한 상처를 남기잖아. 용이 될 이무기인데 얼근 얼굴을 가진 처녀를 바칠 수 없다는 거야.

천연두를 앓지 않은 처녀는 딱 한 명뿐이었어. 바로 (감나무 골 강씨) 네 둘째였단다. 강씨 집안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돼버렸어.

첫째인 오빠가 나서서 따지고 들었어.

"아버지, 어떻게 사람을 이무기한테 바쳐요?"
"이놈아, 낸들 어떡하란 말이냐. 흑흑!"

강씨는 마땅한 대답을 못하고 눈물만 훔쳐. 둘째는 엄마 품에 안겨 서럽게 울고만 있었어.

"무당을 죽여 버릴 거예요!"

둘째가 주먹을 쥐며 밖으로 뛰쳐나갔어. 하지만 얼마 안 돼 어깨가 축 처져 집으로 돌아왔어.
힘센 장정 여럿이 무당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지. 첫째는 고민 끝에 몰래 둘째를 찾아갔어.

"이대로 널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오라버니, 어쩔 수 없잖아요. 제가 희생돼야 마을도 그리고 우리 집안도 무사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흑흑!"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첫째는 둘째의 어깨를 움켜쥐며 눈을 부릅떴어.

"이무기는 다른 짐승들과 별 다를 게 없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둘째는 불안에 떨며 두리번거렸어.

"그때 죽은 장사에게 들은 말이 있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살로 이무기를 죽일 수 있다고 했어."
"설마요……."
"걱정 마! 해보는 데까지는 해볼 테니!"
"흑흑."

둘째는 눈물이 겨워 한없이 울었단다.
제를 올리는 날이 찾아왔어.

아침부터 월하마을은 뒤숭숭했어. 그렇지만 이무기 굴 앞은 요란했지. 음식이 차려진 상 앞에 제물로 바쳐질 둘째가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고,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무당이 쉴 새 없이 춤을 추었어.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강씨와 부인은 숨죽여 울고 있었고.

"어허…으! 용님, 하늘같은 용님!"
'징! 징, 꽹과르……꽝꽝, 징!'
"제물을 바치오니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길 비나이고, 비나이다!"

무당의 굿이 점점 드세졌어. 마을 사람들도 굽실굽실 싹싹 빌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지. 아무도 억울하게 죽을 둘째의 목숨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단다. 그런 마음 자체가 부정을 타는 거였거든.

'쉬이-쉬익, 쉭!'

굴속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어. 무당은 서둘러 사람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마을로 내려갔어. 제물로 바쳐진 둘째만 벌벌 떨고 있었단다. 쓰개치마 속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나왔어.

그때였어. 쉬익, 시커먼 이무기 한 마리가 기어 나왔어. 보기만 해도 끔찍했어. 통나무만 한 몸뚱이에 강줄기만큼이나 길었지. 둘로 갈라진 혀가 이빨 사이로 나왔다 들어갈 때마다 쉭쉭 바람소리가 났어. 무당 말대로 천 년은 산 듯 보였어.

둘째는 오들오들 떨며 비명을 질렀어.
"악!"

이무기는 둘째를 낚아채듯 휘감고 굴속으로 들어갔어. 굴속은 온통 자욱한 연기와 오싹한 한기로 가득 차 있었어. 이무기는 단숨에 둘째를 집어 삼키려고 입을 커다랗게 벌렸어.

"에잇!"

우렁찬 사내 목소리가 터져 나왔어. 쓰개치마를 확 벗어젖힌 둘째는 다름 아닌 첫째였어. 첫째는 순식간에 활시위를 있는 힘껏 당겼어. 바로 뽕나무 활에 쑥대 화살이었지.

"이 요망한 짐승! 내 활을 받아랏!"
'핑-쉬익, 푹!'

쑥대 화살이 이무기 몸통에 꽂혔어.
"꾸어, 억 - 꽥!"

이무기는 혀를 빼물고 바닥에 풀썩 고꾸라졌어. 첫째는 활을 쥔 손을 번쩍 치켜 올리며 외쳤어.
"죽었다! 내가 이무기를 처치했다!"

그러나 첫째의 목소리는 거기까지였어. 굴속에 있던 웅덩이 물이 치솟으며 다른 이무기가 첫째를 덮쳤어. 한 마리가 아니었어. 세 마리의 이무기가 첫째를 치받아버렸어.

그때였어!
굴 밖에서 우르르 꽝꽝 천둥소리가 진동했어. 삽시간에 하늘이 어두워졌고, 먹구름이 온 산을 뒤덮었어. 비가 몰아쳤고 바람이 들이닥쳤어. 나무들이 통째로 뽑혀나가고,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굴러 떨어졌어.

'우지끈-우지끈!'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어.

꽝! 꽝! 꽝! 굴이 하늘로 뚫리며 용이 솟구쳐 하늘로 오르는 거야. 한 마리……두 마리……세 마리였어. 용이 승천한 모양대로 오색의 구름이 길처럼 뒤따랐어. 비는 거세졌고, 천둥번개는 쉬지 않고 내리쳤지.

한참 뒤에 비바람이 그쳤어. 먹구름이 걷힌 하늘은 어느 때보다 푸르고 맑았어. 동네 사람들은 웅성웅성 이무기 굴로 기어 올라갔어.
"오라버니! 제발 무사하세요."

둘째도 첫째 오빠를 부르며 뒤따랐어. 강씨도 부인 손을 이끌고 눈물 바람으로 둘째를 뒤따라갔지. 동네 사람들도 그제야 안타까운 듯 혀를 끌끌 찼어.
"헉! 저, 저게 뭐야?"
"이, 이무기가 죽었다!"

 

화살을 맞은 이무기가 죽어 너부러져 있었어. 굴 안이 꽉 차고도 남아 몸뚱이 절반은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지. 이무기 옆에는 하늘로 승천한 이무기들의 흉측한 허물이 남아있었고.
"오라버니!"
"아이고, 얘야. 첫째야!"

동굴 벽 아래 피를 흘리고 고꾸라져있는 첫째가 보였어. 손은 뽕나무 활을 꽉 쥐고 있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숨이 끊어진 지 오래였어. 누이를 살리려고 목숨을 바친 오빠 시신 앞에서 동네 사람들은 절로 고개를 숙였단다.

월하마을은 예전처럼 평화가 찾아왔단다.

논과 밭은 다시 기름졌고, 강과 바다에는 고기들로 넘쳐났지.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넘쳐나고, 가축들도 쑥쑥 자랐고 말이야.

그 일 뒤로 뒷산은 '용혈산'으로 불리게 됐어. '혈'은 구멍이라는 뜻이야. 이무기가 살았던 굴은 '용혈굴' 그러니까 용굴이 됐고 말이야. 다만, 세월이 흘러 굴속의 차갑고 깊은 웅덩이는 사라져버렸지 뭐야. 그렇지만 지금도 용굴 앞을 지날 때면 음습하고 서늘한 기운이 쉬익쉬익 뿜어져 나온대. 오싹, 섬뜩하게! 

자세히 알아보기
용혈굴은 도암면 석문리 월하마을의 뒷산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용혈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용혈굴은 입구에 두 개의 구멍이 있고, 하늘을 향한 천장에 한 개의 구멍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굴 속에 맑은 물이 항상 고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용혈굴 밑에는 용혈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고려 때 원묘국사 요세 스님이 머물렀다는 얘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조선시대 때에는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정약용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놀다 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용혈암도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을 뿐이란다.

용혈굴처럼 우리나라 전설에는 용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용은 '물'을 상징하는 신적인 영물이기 때문에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물은 농사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에 용이 살 법한 저수지에 오물을 뿌리거나, 용의 형상을 만들어 해코지를 하는 것도 용이 비와 물을 내리게 하는 신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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