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믐달의 미소
[기고] 그믐달의 미소
  • 강진신문
  • 승인 2019.06.2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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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松 조윤제 _ 시인

그믐달은 앙증스럽다.

그믐달의 미소는 외롭고 요염하며 매력이 있는 달이다.

여름밤 별빛만이 비춰주는 원두막에서 사랑하는 이와 사랑을 나누고 있을 때 날 새는 것을  알려준다.

십육일 밝은 달의 함박웃음보다는 한심한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보고 느낀 자의 얄궂은 얇은 미소 지음 같은 깊은 속이 있다.

기다리던 임이 찾아와 왈칵 안기지 못하고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소리 없이 웃어주며 반기는 것 같다.

동짓달 긴긴밤 살벌한 바람 소리 무서워 오줌을 참다 참다 못 이겨 밖에 나오니 흔들리는 대밭 넘어 쓰러져가는 노송 사이를 비집고 딱하다는 시선을 보내며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청상과부가 밤새 외박하다가 깜박 잠이 들어 봉창 문을 넘어다보고 잠을 깨우는 달이다. 그리고 물안개 낀 개울 징검다리를 희미한 호롱불처럼 밝혀주는 고마운 달이다.

어설픈 도둑이 날 샌 줄 모르고 도둑질하다가 도망칠 때 가는 길 따라가며 알려주는 귀찮은 달일 때도 있다.

초승달 보름달 반달 세상사 다 겪고 외롭고 쓸쓸하게 누가 볼까 싶어 남모르게 새벽녘에 떠나가는 달이다.

수많은 별 속에 조용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야상곡 같은 존재다.

비쩍 마른 폐병 환자가 담배를 힘껏 빨아댈 때 양 볼처럼 배고픈 달이다.

실연(失戀)당해 밤새 술 퍼마시고 쓰린 속 달래려고 샘가에 나가 냉수 찾을 때도 빙긋하고 한심스레 미소를 보낸 달이다.

먼 곳에서 보고 싶은 임이 온다는 기별 듣고 밤새워 기다리다 새벽녘에 깜박 졸다가 놀라서 눈떠보니 창밖이 어슴푸레 밝아져 동이 트나 싶어서 얼른 창문 열고 내다본다.

임 오시는 걸음 소리 들리지 않아 또랑또랑한 두 눈은 그믐달 바라보며 그믐달 같은 눈썹을 그리니 날 지켜보던 그믐달이 슬그머니 자리 비켜 떠나가고 그리웠던 임 품에 안겨보네.

성냥 쟁이 풀무에 달구어져 흠씬 두들겨 맞고 호미 날 되어 팔려가는 슬픈 달이다.

푸른 하늘 나룻배 되어 구름 속을 천지 분간 모르고 헤매다가 동쪽에서 뜨는 해 바라보고 달아나듯 바람 따라 서산으로 넘어간다.

어리석은 황새가 구정물의 미꾸리 한 마리 건져 삼키고 긴 모가지를 자랑하며 오리 발 짧은 것만 알고 깔보는 것을 가소롭게 보고 고운 얼굴 찡그려 소리 없이 비웃으며 사라지는 그믐달이기도 하다.

달은 춘분과 추분을 기준으로 계절에 따라 다르다. 보름달은 저녁 6시에 떠서 아침 6시에 진다.

그와 반대로 그믐달은 아침 6시에 떠서 저녁 6시에 지지만 낮에는 태양 빛 때문에 불 수 없는 달이다.

동지에는 아침이나 저녁 무렵에 떠 있긴 하지만 빛이 비치지 않아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그믐달은 좀처럼 찾아 주는 사람 없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낮에는 해에 가려서 빛을 내지 못하다가 해가 진 뒤에 잠깐 빛을 내기에  외롭고 서글픈 달이다.

그럼 또 얼마를 기다려야 볼 수 있을는지 임 그리며 잠 못 이루는 밤에 다시 만나거든 내 마음 달래주며 떠나지 말고 함께 있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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