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엿장수 맘대로
[다산로]엿장수 맘대로
  • 강진신문
  • 승인 2019.06.1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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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수필가

지역 축제장이나 관광지, 고속도로 휴게소에 얼굴에 분장을 하고 일부러 옷을 찢어 울긋불긋한 헝겊으로 꿰매 입은 엿장수를 볼 수 있다. 가위를 흔들며 각설이 타령으로 호객 행위에 나서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엿장수 가위질 소리와 전혀 같지 않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예전에는 주전부리가 흔치 않았다. 끼니는 늘 보리밥이었으며, 먹고 뒤돌아서기가 바쁘게 배가 고파오기 일쑤였다.
가난했던 시절 마을에 자주 왔던 엿장수에 관한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귀한 간식거리였던 엿을 생각하면 벌써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엿장수는 가위질로 자신의 출현을 알리며 호객행위를 했다.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동네 아이들은 구멍이 난 고무신, 쪼그라진 양은 그릇, 헌책, 소주병, 간장병, 사이다병 등을 들고 엿장수에게 모여들었다. 심지어는 고장 난 라디오 돼지털, 사람 머리카락까지도 들고 왔다.
어떤 아이들은 명절 또는 제사 때 제기로 사용하는 놋그릇을 가져오고, 커다란 양은 대야를 일부러 찌그려서 가져오다 부모에게 들켜 귀싸대기를 얻어맞고 뒷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에잇, 엿이나 먹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분명 비아냥대거나 빈정대는 말인데도 우리 생활 속에 친숙하고 정겨운 언어로 자리 잡았다. 지금은 수능이나 취업 수험생에게 원하는 곳에 엿처럼 찰싹 달라붙으라며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로 엿을 선물한다.

또 사람들은 무슨 일을 자기 편한 대로 하는 경우를 빗대어 '엿장수 맘대로' 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의 깊은 뜻은 흥정에 있었다. 어떤 날은 검정 고무신은 받지 않고 흰 고무신만 받고, 소주병은 받지만 간장병은 받지 않은 때도 있었다. 엿장수는 고물 가격을 기분 내키는 대로 매겨서 엿으로 떼어 주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빗대어 "엿장수 맘대로 한다" 했다.

그것은 엿장수가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고도의 상술이었다. 엿판의 엿은 한정되어 있는데, 값비싼 물건이 많이 쏟아지는 날은 이문이 좋은 흰 고무신이나 소주병부터 받았다. 갑자기 값을 후하게 쳐주는 경우는 엿판에 엿은 많은데 물건이 많이 나오지 않은 날이었다.

좌판에 붙어 있는 엿을 정을 대고 가위로 쳐서 떼어주는 호박엿, 생강엿이 있고, 엿가락에 밀가루를 발라 서로 엉키지 않도록 쌓아놓은 가락엿이 있다. 좌판 위에서 엿을 대충 떼는 것 같지만 머릿속 계산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떼어 낸다. 그리고 목판 한 쪽에 뿌려 놓은 밀가루를 엿가락 몸통에 발라 종이 봉지에 넣어 준다.

엿장수라 해서 모두 똑같지 않았다. 엿판을 등에 메고 가락엿만 파는 자본이 영세한 엿장수가 있고, 기다란 철제 리어카에 엿판을 두 겹으로 올려서 밑판에 떼어서 파는 호박엿과 생강엿을 놓고, 위판에 가락엿을 파는 자본력이 튼튼한 엿장수가 있다.

등짐을 메고 다닌 영세업자는 상술이 없어서 맛보기로 사람을 유인할 줄도 모르고 가격도 인색해서 값이 나가는 물건을 받지 못했다. 한편 철제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엿장수는 엿을 뚜벅 떼서 맛보기를 자주 때문에 값진 물건을 많이 받아 엿판의 엿을 금세 다 팔았다.

엿장수는 가끔 어른들을 부추겨 '엿치기'라는 내기를 시켰다. 엿장수가 부르면 어른들이 슬금슬금 엿판으로 몰려와 엿치기를 했다. 엿가락 속에 뚫린 구멍이 제일 작으면 그 날 엿값을 낸다. 제각이 손가락 굵기의 기다란 엿가락을 하나씩 골라서 입술에 대고 힘차게 꺾으며 입김을 불어 넣는다.

구멍 크기는 엿을 만드는 과정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기술과 요령이 필요 없는데도 진지한 모습으로 엿가락을 고른 뒤 기를 모아 꺾었다. 조금 어리숙한 사람이 있으면 주문을 외우는 시늉을 하며 엿을 바꿔쳐 독박을 씌우기도 했다. 고집이 센 사람은 이길 때까지 계속하다 엿장수 좋은 일만 시켰다.

엿치기가 끝나면 엿판 위의 큰 조각은 어른들이 가져가고 작은 부스러기는 조무래기들의 몫이 된다. 조각엿을 먹고 나면 성이 차지 않아 눈이 자꾸 엿장수의 손목으로 간다.
어느 날 엿판 앞에서 "오빠야, 엿 먹고 싶다.

엿 좀 사주라"며 칭얼대는 여동생의 댕기 머리를 싹둑 잘라 엿과 바꿔 먹고 어머니께 혼쭐이 났다. 아랫마을에 살았던 두 형제는 얼마나 엿이 먹고 싶었던지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신 두 켤레를 벗어 엿으로 바꾸어 먹고, 한참 기다렸다 엿장수가 짐을 메고 일어서자 신을 잽싸게 꺼내서 줄행랑을 쳤다.

지금은 동네를 찾아다니며 가위를 흔드는 엿장수가 없다.
현대인들은 생필품을 마트나 백화점에서 일괄 구매한다. 그 곳은 정찰제로 운영되다 보니 에누리를 찾아 볼 수 없다.

예전엔 물건은 사고 팔 때면 어디든지 에누리가 있었다. 으레 물건 값을 깎아 달라며 볼멘소리를 하면 "젠장 그렇게 합시다" 하면서 성큼 더 주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마트나 백화점에서 할인 행사를 하지만 가격표시를 해 놓기 때문에 예전의 에누리가 실감나지 않는다.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이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와 에누리뿐만 아니다.
무엇이든 지나고 나면 항상 옛것이 좋게 생각되고 그리워지는 것이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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