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이 된 이무기의 전설 - 용혈굴(1)
용이 된 이무기의 전설 - 용혈굴(1)
  • 강진신문
  • 승인 2019.05.3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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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 용혈산의 용굴(8) -

 

도암면 석문리 월하마을은 살기 좋기로 소문났어.

석문산은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좋았지. 경치뿐만 아니라 들판은 기름져서 농사도 잘 되었어. 기름진 들판뿐이게? 강과 바다가 코앞이라 물고기는 차고 넘쳤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월하마을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았어. 처음에는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것부터 시작됐어. 그러더니 동네의 닭들이 하나 둘 감쪽같이 사라지는 거야. 나중에는 큼지막한 개들도 아침이면 보이지 않았지.

모두들 간밤에 삵이 물어갔다느니, 요망한 여우가 간을 빼먹기 위해 잡아갔다는 소문도 돌았지. 사람의 간을 빼먹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수군대기도 했어. 가끔씩 집채만 한 호랑이를 봤다는 사람도 나타났고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끔찍한 소문이 돌았어.

"세상에 그렇게 큰 구렁이는 처음 봐!"

개울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이 혀를 내둘렀어. 아낙들은 빨래방망이질을 멈추며 귀를 쫑긋 세웠지.

"구, 구렁이가 왜?"

"간밤에 소피보러 밖에 나왔다가 봤다니까. 옆집 개똥이네 누렁이를 그 구렁이가 한입에 삼켜버리지 뭐야."

"송아지만큼 큰 누렁이를?"

"그렇다니까! 그런데 구렁이가 귀가 있고, 발까지 달렸더라고!"

"에구머니나!"

아낙들은 겁에 질려 빨래방망이를 놓쳐버렸어. 이무기가 틀림없었거든. 이무기는 용이 되 하늘로 승천하기까지 차가운 물속에서 천 년을 산다고 하잖아. 그런데 이무기가 곱게 있다 곱게 승천하면 얼마나 좋겠어? 성질이 하도 난폭해서 이런저런 해코지를 해댔거든.

그러던 어느 날 황소 한 마리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어. 주인 말로는, 간밤에 외양간에서 황소울음소리가 들리더라는 거야. 주인이 급히 나가봤더니 외양간 안에 요상한 연기가 가득하더래. 한참 뒤에 그 큰 황소가 보이지 않았고. 커다란 새 발자국과 함께 뭔가 기어나간 흔적만 남아있고 말이야.

견디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관헌을 찾아갔어. 

"사또 나리, 이무기가 나타났습니다요!"
"뭐, 뭐라?"
"동네 가축들을 죄다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다."
"이러다라니?"
"사람까지 잡아갈까 두렵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벌써부터 겁에 질려 진저리를 쳤어. 사또는 급히 방을 붙였어. 이무기를 잡거나 물리친 사람에게 큰상을 내릴 거라고 했어. 그러자 힘깨나 쓰는 장정부터 창칼을 잘 쓰는 무사들까지 몰려들었지. 저마다 이무기가 나올법한 곳들을 들쑤시고 다녔고 말이야.

그러면 뭐해?
"아이고, 우리 집 송아지가 안 보여!"
"관헌의 말들도 길길이 날 뛴대. 뭔가가 두려운 게지."
이무기는 보란 듯이 여기저기에서 출몰했어. 그러다 보니 이무기를 잡겠다던 사람들이 하나 둘 꽁무니를 뺐어. 잘못했다간 이무기에게 당해 뼈도 못 추릴 것 같았거든.

마지막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 백 년에 한 번 태어날까 말까 하는 장사라고 소문난 사람이었어.

"낮에는 강에 살다가 밤에는 산속의 굴로 숨어들어갈 거야."

장사는 척 봐도 달라. 이무기의 행방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눈치였어. 장사는 곧바로 큰칼을 허리에 차고 강가로 향했지. 치렁치렁한 버드나무 아래 널찍한 너럭바위가 있는 곳이었어. 너럭바위에서 내려다 본 강은 어찌나 깊은지 짙푸르렀어. 소용돌이가 도는 것처럼 물살도 휘돌고 말이야.

동네 사람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장사를 지켜봤어. 장사는 먼저 어린 아이들을 너럭바위 위에서 놀게 했어. 아이들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우면 이무기가 나타난다는 것이었지. 동네 사람들은 장사를 믿고 아이들을 내줬어.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이무기는 나타나지 않았어.

"흠! 이놈 봐라!"
장사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열었어.
"튼튼한 낚싯대 하나만 가져오게!"

뜬금없는 낚시 타령에 동네 사람들은 기가 찼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걸 어떡해. 그 사이, 장사는 손을 휘휘 내저어 손으로 날아다니는 제비 몇 마리를 낚아채는 거야. 귀신도 곡할 솜씨였지.

장사는 코를 제비 가까이에 대고 킁킁거렸어.
"생각보다 훨씬 더 비리군! 이무기가 안 물고는 못 배길 걸?"

장사는 낚싯바늘에 제비 한 마리를 척 꿰었어. 그러고는 강가 깊은 곳에 낚싯줄을 드리웠지. 물에 젖은 제비는 강물 위에서 허우적댔어. 동네 사람들은 납작 엎드려 숨죽이고 지켜봤단다. 한참이 지났어. 점심때가 다가오는지 햇볕이 머리 위로 뜨겁게 내려앉고 있었어. 그때, 물살이 휘휘 돌더니 끓는 듯 부글부글 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했어.

"왔다!"
장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낚싯줄을 이리저리 움직였어. 동네 사람들 목에서 침 넘어가는 소리가 꿀꺽꿀꺽 들려왔지.

'촤아아-찻!'
강물이 갈라지는 듯싶더니 시커먼 머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어. 그 괴상한 게 제비 미끼를 한입에 삼켜버리는 거야.

"으랏차!"
장수는 낚싯대를 잽싸게 위로 낚아챘어.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물살이 사방으로 튀며 어마어마하게 큰 구렁이 한 마리가 요동치기 시작했어. 꼬리가 요동칠 때마다 강물이 사방으로 튀었어.

"이무기를 잡았다!"
숨어있던 동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어.
'우르르, 쾅! 쾅!'

난데없이 시커먼 구름이 몰려오더니 갑자기 천둥번개가 몰아쳤어. 세찬 바람이 들치고 굵은 비가 쏟아져 내렸지. 이무기는 마치 내리치는 번개를 집어삼키려는 듯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장사를 덮쳤어.

"으윽!"
장사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장사를 집어삼킨 이무기는 강물 속으로 첨벙 사라져버렸단다. 동네 사람들은 한동안 넋 놓고 주저앉아 있었어. 저녁이 지나가고 아침이 왔을 때였어. 동굴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치는 거야.

"이거 좀 봐요!"
동네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어. 이무기가 땅을 파헤치듯 지나간 흔적이 보였거든. 그런데 그 뒤로 명주실이 놓여있는 거야. 동네 사람들은 명주실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갔어. 명주실은 동네를 지나 대숲을 건너 뒷산으로 이어졌어. 사람들은 점점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 시작했어. 죽은 장사의 말이 떠올랐거든. 이무기가 산속의 굴에 산다는 말! 그러고 보니 장사는 혹시나  몰라 자신의 다리에 명주실을 묶어뒀었나 봐.

"저, 저기!"
동네 사람들이 손짓을 하며 속삭였어. 명주실이 어두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가 있었어.
"으악! 에구머니나!"

동네 사람들은 그만 벌러덩 엉덩방아를 찧었어. 굴 앞에 온갖 짐승의 뼈들이 너부러져있었기 때문이야. 그동안 동네에서 사라진 가축들의 뼈가 틀림없었어. 금방이라도 이무기가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들 것 같았지. 사람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쳐버렸단다.

한동안 동네는 쥐 죽은 듯 조용했어. 아니, 폭풍이 몰아치는 전날 밤 같은 두려움이 가득했어. 이무기가 힘센 장사를 한입에 집어삼킨 걸 눈 벌겋게 뜨고 지켜봤잖아. 고을 사또도 손 쓸 방법이 없다며 얼씬도 안 했어.

그 뒤부터 동네에 재앙이 찾아왔어. 자고 나면 장독대의 장독들이 폭삭 주저앉는가 하면, 과일 열매들이 한순간 썩어서 툭툭 떨어져버리는 거야. 그 뿐만이 아니었어. 새끼를 밴 가축들이 새끼를 낳지 못하고 핏물만 죽죽 흘렸고, 아이를 가졌다는 아낙들도 찾아볼 수 없었어. 멀쩡한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간 일도 벌어졌고.

"이무기가 노한 거야!"
"그래, 사람들 씨까지 말리려는 거라고!"
"이무기는 비바람을 불러올 수 있다잖아. 동네에 홍수가 져 죄다 떠내려갈지도 모르는 일이야,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걱정을 앞세웠지. 보다 못한 마을 어른들이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어. 무당이 그러더래. 천 년을 거의 묵은 이무기라 용이나 다름없다는 거야. 감히 용을 죽이려 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는 말도 했고. <계속>

자세히 알아보기
용혈굴은 도암면 석문리 월하마을의 뒷산에 있다.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용혈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용혈굴은 입구에 두 개의 구멍이 있고, 하늘을 향한 천장에 한 개의 구멍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굴 속에 맑은 물이 항상 고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용혈굴 밑에는 용혈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고려 때 원묘국사 요세 스님이 머물렀다는 얘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조선시대 때에는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정약용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놀다 갔던 곳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용혈암도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을 뿐이란다.

용혈굴처럼 우리나라 전설에는 용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용은 '물'을 상징하는 신적인 영물이기 때문에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물은 농사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아 기우제를 지낼 때에 용이 살 법한 저수지에 오물을 뿌리거나, 용의 형상을 만들어 해코지를 하는 것도 용이 비와 물을 내리게 하는 신으로 불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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