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물에게 겸손을 배우다
[다산로] 물에게 겸손을 배우다
  • 강진신문
  • 승인 2019.05.17 1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권 _ 수필가

북풍과 햇볕이 나그네 옷 벗기기 시합을 한 우화가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북풍과 햇볕이 시합을 한다. 먼저 북풍이 잘난 척 하며 나그네에게 강한 바람을 내 보냈다. 나그네는 추위를 느끼고 오히려 옷을 끌어당기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다음 햇볕의 차례가 되어 조금씩 햇볕을 비추자 나그네는 더위를 느끼다가 스스로 옷을 벗었다.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힘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는 자가 이기는 것 같지만 덕을 베풀어 스스로 복종하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다.

'천하의 가장 약한 것이 천하의 가장 강한 것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잘 알면서도 이를 행하기란 쉽지 않다.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으니 겸손하며 남에게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라는 뜻이다.

인간이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야 하는 선에는 상선과 중선 그리고 하선이 있는데, 상선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을 말한다.

물은 지구의 1/3을 덮고 있으며, 우리 몸의 60~ 70%를 채우고 있기 때문에 하루에 2~3리터의 물을 마셔야 한다. 지구상에 물이 없으면 생명은 살 수 없다. '동물의 왕국'에서보면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동물들이 건기가 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물웅덩이에 갔다가 맹수에게 잡혀 먹히는 광경을 보면 물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

물은 이처럼 인간과 동식물에게 유익을 주면서도 공명을 다투지 않는다.

노자가 말했던 '공수신퇴 천지도야(功遂身退 天之道也)'는 공을 이루었으면 그 자리에서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는 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공을 내세우며 떠날 때를 알지 못해서 화를 당한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떠나야 할 때를 알기 때문에 화를 당하지 않는다. 나가야 할 때 나갈 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설 줄 아는 것 역시 중요하다.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박수를 받을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물은 만물의 생명을 보존시키는 지대한 공이 있어도 내세우지 않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간다. 오히려 낮은 곳에 있기에 자기의 존재가 점점 커진다. 산골짜기의 물은 큰 강이 되고, 다시 넓은 바다로 흘러서 대양을 이룬다.

물은 융통성이 뛰어나다. 물은 둥그런 용기 담으면 둥그런 형태를 하고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형태를 할뿐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을 무시하며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강한 것을 공격해서 부숴 버릴 때는 물의 힘을 당할 수가 없다.

일본열도를 순식간에 휩쓸었던 후쿠시마 원전 쓰나미, 브라질 광산 댐 붕괴사고 때의 물의 위력을 보면 알 수 있다.

화재로 소실된 곳은 재라도 남지만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흔적도 없다. 물을 잘 다스려 홍수를 방지하는 것을 치수(治水)라 한다. 물을 잘 다스려 이용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강불식(自强不息)하는 물의 인내력은 대단하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에 구멍을 뚫고 단단한 쇠붙이도 물에 오랫동안 담아두면 부식한다. 만물 중에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한 것을 이기는 물에게 겸손을 배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