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몹쓸 추수꾼 보이스 피싱
[다산로]몹쓸 추수꾼 보이스 피싱
  • 강진신문
  • 승인 2019.05.0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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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수필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범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지체하지 않고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에 가담한 자들이라 말하고 싶다.
이들의 범행은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되며 은밀한 장소에서 범행에 필요한 요령을 습득하는 등 치밀한 사전 계획에 의해 실행된다.

그들은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악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를 걸어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하고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는 경찰과 검찰 그리고 금감위를 사칭하여 위험을 막아 주겠다며 접근해 온다. 그들의 계략에 말려들면 평소 침착하고 합리적인 사람도 꼼짝 못하고 당하고 만다.

그들은 일단 걸려든 먹잇감을 통째로 집어삼켜버리는 몰염치한 범죄 집단이다.
그들에게 당한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도 발본색원(拔本塞源)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들은 국경을 초월한 온라인망에서 점조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당을 검거하더라도 꼬리자르기에 그칠 뿐 몸통은 찾을 수 없다.

검거해도 죄질에 비해 형량이 너무 낮아서 해악의 뿌리는 발가락사이 티눈처럼 제거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사람들의 심리연구를 거듭하며 정부의 피해 방지 대책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내가 금융창구에 근무하던 10여 년 전에도 극성을 피웠지만 지금처럼 조직화, 지능화 되지는 않았다. 직원들에게 고객이 자동인출기 앞에서 전화통화를 길게 하면서 안절부절 못 할 때 고객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방지책을 교육시키고 있던 때였다.

마침 그 일당으로부터 내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이야말로 못된 일당에게 골탕 먹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는 대검찰청인 검사 아무개입니다. 선생님의 정보가 모두 유출되어 통장에 있는 모든 예금이 인출될 우려가 있으니 신속하게 안전한 계좌로 옮겨야 합니다" 나는 당황한 척하며 어눌하게 "아이고 큰일 났네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고 물었다.

"지금 이 통화를 도청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통장을 모두 가지고 자동인출기 앞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나는 일부러 잠깐 머뭇거렸다. 즉각 반응이 왔다. "국민이 피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려는 대한민국 검사를 의심하는 것입니까?"

되레 호통을 치면서 말했다.
"당장 대검찰청에 확인 전화를 해보세요"하면서 전화번호를 알려주기까지 하였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대뜸 "너 이 도둑놈아!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남의 등을 처먹는 그 못된 짓을 하고 있냐?" 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XX 자식 놈아!" 하면서 호통을 쳤다.

그 쪽도 감쪽같이 당한 것이 억울했던지 돌변하여 자기가 사기꾼인 줄 알았으면 그만 전화를 끊으면 될 일이지 영업 방해를 한다면서 "XX 자식 놈!" 하며 욕으로 맞섰다. 이에 뒤질세라 큰 소리로 "에라 XXX놈, X자식!" 하며 공격을 가했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난타전을 벌이던 중 그 쪽에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나는 허공에 대고 쾌재를 부르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그들은 천하에 몹쓸 추수꾼이다.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어렵사리 마련해 둔 병원 수술비, 대학 입학금, 결혼 자금을 송두리째 빼앗아간다.

간혹 전문직이나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피해를 당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낚아챈 먹잇감이 실속이 없다 싶으면 즉시 전화를 끊고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독성이 강한 식물은 꽃이 화려하다.

그들은 상냥한 말투, 유창한 화술, 반듯한 표준어로 안심을 시킨 후 짧은 대화 속에서 상대방 취약한 부분을 파악하여 집중 공략한다. 사회적으로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운 사람, 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쉽게 넘어간다.

객지에 사는 피붙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보호하고 있다든지, 돈을 쉽게 벌 수 있게 해주겠다든지, 처지와 형편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택한다. 외롭고 궁핍한 사람은 그들의 사술에 걸려 속절없이 당하고 만다.

우리는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이란 기쁨과 희망을 나누며 살아가기도 부족하다. 봄바람처럼 훈훈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얼굴에 부드럽고 화평한 기운이 넘쳐야 한다. 서로를 존중하고 신의를 잘 지킬 때 우리 사회는 밝고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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