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운동 원림' 국가 명승 지정에 부쳐
[기고] '백운동 원림' 국가 명승 지정에 부쳐
  • 강진신문
  • 승인 2019.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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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_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명승'이란 "경관이 뛰어나고 예술적 가치가 큰 곳"으로 현행 문화재보호법에서 정의하고 있다. 명승이 되려면 단순히 자연경관만 좋아서는 안 되고 시대의 풍류가 있는 곳 이어야 한다.

더하여 명승을 경영하는 주인장은 물론 풍류 인사들의 인품과 사유수준, 그리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덕행이 있어야 최고의 명승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산 좋고 물 좋아 주색잡기에 빠진 난봉꾼들이 드나드는 곳이라면 도적들의 산채에 불과 할 것이다.

백운동 원림은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명승 중에 최고봉이다.

영산(靈山)인 월출산을 배산으로 강진 월출산의 자궁쯤에 해당되는 백운동 원림은 숲과 물이 깊고도 풍부하다.

백운동 정선대에 올라서 월출산 봉우리를 보면 천개의 불상같이 보인다는 천불봉이 손에 잡힐 것 같아 대웅전 한가운데 있는듯 하다가도 하고  한줄기 바람에 안개가 깔리면 아득히 멀어져 가니 마치 구름버선을 신고 선경(仙境)을 거니는 듯하다.

세월의 풍상을 갑옷처럼 두른 노목들과 바람이 도끼로 조각한 듯한 푸른 절벽이 서로를 껴안고, 계류는 그 사이를 휘감고 떨어지며 폭포가 되고 가야금 소리를 낸다. 세속에 찌든 귀와 눈을 씻어 준다.

원림 내원의 중심에는 '유상곡수(流觴曲水)'가 있는데 계곡에 흐르는 물이 내원 마당으로 들어와 잠시 머물다 다시 머리를 돌려 계곡으로 되돌아간다.

자연의 법도에 따라 순리대로 살라는 뜻이 유상곡수에 담겼는데 오는 이들은 알까? 백운동은 단순히 풍치가 좋은 곳을 넘어 사유의 정원이다. 명승의 조건으로 명사들의 사유와 흔적들이 기록된 시대의 풍류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백운동 원림은 고매하고 문명 높은 선비들의 자취가 연연세세 흥건하다.

백운동 원림을 조성한 이담로는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백운동으로 들어와 깨끗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아들인 김창집, 김창흡 형제가 1678년 6월 백운동을 방문하여 남긴 시에 그 고졸한 성품이 드러나 있다.

강진에서 이담로를 찾아 갔는데/ 굳센 절개 속인과는 참으로 달라./ 거처는 환하여 티끌 하나 없고/ 상차림은 얼마나 소박하든지./ 깊은 대숲 사람을 머물게 하니/ 높은 의리 정성껏 대접 받았네. 

백운동을 찾은 명사들을 보면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 다성이라 추앙받는 초의선사나, 조선조 마지막 어진화가이자 남종화의 태두인 소치 허련, 등 하나같이 조선조 유불선(儒佛禪)의 젖줄이 되는 학사들이요, 자기분야에서 독보적 업적을 남긴 분들이다. 백운동원림은 이런 인문학적 터무니들이 어느 명승보다 풍부하여 고려시대부터 기록과 유적을 보태면 백운동 원림은 하나의 박물관이라 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국가 지정 문화재인 명승은 1970년 제1호로 지정된 강릉시 '명주 청학동 소금강'부터 최근 115호로 지정된 강진 '백운동 원림'까지 다수가 있으나 국가문화재에 걸맞은 국민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고 있고 개발이나 활용에도 미진한 구석이 많아 보인다.

우선 명승을 '경치가 좋은 곳'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명승이라는 공간속에서 이뤄온 사람과 역사의 터무니를 발굴하고 제공하여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몇 해 전 이낙연 국무총리가 백운동에 와서 '풍광이 주는 행복과 엣 선인들의 자취에 울림을 받았다'는 감상문을 주고 갔는데 방문객들도 그런 감동을 느꼈으면  좋겠다.

또 하나 명승을 보호, 보존 차원에서만 접근하려는 시각들이 있는데 반드시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 하지만 개발할 곳은 규제를 풀어 개발하고 문화자원으로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백운동 내원만 잠깐 보고 가는 관광은 공원이지 명승이라고는 할 수 없다.

백운동 원림 내원은 복원이 되었으니 운당원, 석림원, 수림원, 동백원, 다원 등 외원의 종합적인 개발과 정비가 필요하다.

특히나 중요한 것은 경치위주 관광지형 명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산, 초의, 소치 같은 문사들이 백운동 원림에서 풍류와 학문적 성과로 세상을 이롭게 했듯이 백운동 원림에서 '문예부흥'이 꽃 필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명승은 그런 곳 이여야 한다.

강진군청에서는 백운동 경치가 좋다하여 단순히 길을 내거나 음식점을 들이지 않고 유적을 발굴하고 전문가들 위원회를 만들고 학술대회를 여는가 하면 백운동 관련 전적들을 번역 하는 등 명승지정을 차근차근 추진해 왔다.

향후 관련 유물을 모으고 차 체험을 할 수 있는 전시관을 건축할 예정인데 문화자원을 활용하고 부흥시키려고 하는 강진군의 안목과 정책방향은 대단히 바람직하고 박수 받을 일이다.

백운동 원림의 터무니를 추적하고 자료 발굴과 가치에 대한  토대를 제공한  정 민 한양대 인문대학장과 문중, 복원업체, 문화재 전문위원, 관련 공무원 등 복잡한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을 조율하고 설득하여 풀어 가면서 밤낮, 휴일을 가리지 않고 백운동 원림 복원사업에 열정을 쏟은 이재연 학예사, 백운동 원림을 최초로 명승이라 이름 불러준 문화재청 김종승 과장, 이모든 구슬을 명승 지정으로 꿰어낸 이승옥 강진군수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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