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산초당을 『다산 성지순례지』로 가꾸어 가자!
[기고] 다산초당을 『다산 성지순례지』로 가꾸어 가자!
  • 강진신문
  • 승인 2019.04.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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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추현 _ 강민회 사무국장

우리 강진은 고려청자와 다산은 뗄 수 없는 어쩌면 숙명적 관계라고 생각한다.

12세기 천년 신비의 땅으로 발돋움한 고려청자 발상지, 그리고 18세기 동양 최고 실학사상의 대가로 추앙받는 다산선생의 혼과 정신세계의 메카인 다산초당 등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다산선생이 1801년에 유배 와서 사의재 등에 계시다가 1808년 지금의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계시는 동안 당시 관료 등의 횡포와 백성들의 아픔을 직접 지켜보면서 정신혁명과 사회개혁의 지침서인 목민심서 등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다산초당을 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해야 한다고 강진군에 제언하고 싶다.

지금의 초당은 1958년 해남윤씨 종친회원과 일부 뜻있는 군민들이 주축이 된 '다산유적보존회'가 어렵게 성금을 모아 무너진 초당을 복건하고 같은 해 사적 107호로 지정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추석날 강진 시내 작은 식당에서 친구 서너 분과 점심을 하는데 60대 초반의 부부가 등산복 차림으로 식사를 하기에 "이 명절날 어디를 다녀오시냐"고 물었더니 성지순례 다녀온다고 하기에 무심코 "우리 강진에는 성지가 없는데요" 하였더니 "다산초당"이라고 하면서 역사 속의 다산초당이 아니라고 언짢은 투로 말씀하시기에 부끄러움과 함께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 당시의 모습이 1940년 일본인 이에이리가즈오 등이 저술한 '조선의 차와선'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백운동에 전해 내려온 '백운세수첩'이나, 2015년 정민 교수가 쓴 '강진 백운동 별서정원'에도 1812년 9월 12일(음력일 것 같음) 다산과 초의선사가 성전 백운동을 찾아 그 경치에 반하여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도록 하였고 그림 솜씨가 좋아 다시 다산선생이 거처한 다산도를 그리게 하였다는 기록 등이 있으며, 그 그림은 현재 무안군 삼향면 초의선사 생가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으므로 이런 자료들을 참고하여 당시의 원형대로 복원, 다산초당을 『다산 성지순례지』로 가꾸어 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그 어려웠던 시절 유배 온 다산을 품에 안고 그분의 사상과 혼을 이어지게 한 조상들에 대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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