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대구면 계율리 난산마을
[마을기행]대구면 계율리 난산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4.09.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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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30도를 육박하던 한낮의 무더위도 한풀 꺾여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게 한다. 차장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풍성한 가을의 모습이다. 한여름의 폭염과 폭풍우를 이겨낸 들판의 곡식들은 나날이 알갱이를 살찌우며 수확의 날을 기다리고 있고 도로 곳곳에는 붉은 고추와 깨를 햇볕에 말리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대구 청자촌을 지나 찾아간 곳은 대구면 계율리 난산마을. 청자촌이 지척으로 보이는 난산마을은 지네형국의 뒷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나눠져 있다. 윗마을은 지네형국인 뒷산에 지네가 잘 살 수 있도록 밤나무숲이 조성돼 있어 율촌으로 일컬어졌으며 아랫마을은 닭의 알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알메라고 불리다 해방직후 난산마을로 통합되었다.

이웃마을 계치의 뒷산이 대계산으로 수탉형국이며 당전마을의 뒷산인 여계산이 암탉형국으로 마을은 알에 해당하는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있어 난산(卵山)이라 칭하게 되었다. 풍수설에 따르면 닭의 형국인 계치와 지네 형국인 난산은 상극 관계이지만 마을 앞에 큰 내가 가로 막고 있어 양마을이 피해없이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마을 입촌연대는 확실한 고증이 어려운 상태로 변씨가 처음 입촌하여 율변이라 했다고 전하며 현재는 곡부공씨, 해남윤씨 등 25여호 30여명의 주민들이 미맥농사 위주로 생활하고 있다. 

난산마을에는 관찰봉이라고도 하며 생김새가 까치머리와 같아 불리는 까치산, 산형국이 매와 같아 붙여진 매봉, 바위가 두개로 갈라진 형태로 서있는 벼락바우, 벼락바우 곁에 있으며 병풍이 펼쳐진 형상을 띤 병풍바위, 벼락바우 밑에 있는 샘인 벼락바우샘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또 일명 샘배미라고도 하며 마을앞 1천400평 면적의 논에 둠벙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식수와 농업용수를 해결했던 은향뱀이가 있었지만 경지정리와 함께 현재는 논으로 변해 있다.

찾아간 마을은 너무도 한가로운 모습이었다. 마을의 유래에서 보이는 밤나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따사로운 햇볕 속에 빨갛게 익어가는 감들이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23년째 마을일을 맡아보고 있는 오충웅(69)이장을 찾았다.

대구면에서 가장 오랜 이장경력을 지닌 오이장은 반갑게 맞아주며 마을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오이장은 “다른 마을에 비해 소촌이다 보니 마을주민들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다”며 “가진 것은 없어도 주민들이 서로 우애있게 아끼고 사는 정다운 마을”이라고 마을자랑을 했다. 또 오이장은 “900여평의 동답에서 곡수를 받아 마을기금과 이정세로 활용했으나 올해부터 이정세를 받지 않기로 했다”며 “넉넉하지 못한 주민들의 살림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동답에서 나온 모든 기금은 마을자금으로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을 돌아나오다 경지정리가 되어있지 않은 일부 논들을 볼 수 있었다. 마을에서 청자파편이 출토된 지역으로 경지정리를 할 수 없도록 지정돼 있다는 오이장의 설명이다. 청자파편이 발견된 것으로 미뤄 고려시대부터 부락이 형성되었을 것이란 추측을 가능케 한다. 또 대구지역은 닭과 관계된 지명이 있는 곳에 가마터가 있어 도자기를 구워냈던 곳으로 추정된다. 

오이장의 소개로 마을 노인회장을 맡고 있는 공진덕(75)씨를 만났다. 공씨는 “예전에는 곡부공씨 자자일촌으로 지네에 비유되는 공씨들이 마을 곳곳에 밤나무를 많이 심었다”며 “뒷산에 울창하던 밤나무 숲이 밭으로 변하고 자연적으로 고사해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아랫마을로 내려오자 한그루 노송이 눈에 들어왔다. 정월 대보름이면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 노송에 그네를 매달고 주민들이 그네뛰기를 즐기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전통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령화와 주민수 감소로 마을에서 유지되던 전통이 대부분 모습을 감춰 아쉬움을 남게 한다.

난산마을 출신으로는 경기도 안산 경찰서에서 경사로 근무하고 있는 공학영씨, 광주에서 국민은행에 근무하는 김주훈씨, 조선대학교 공대교수를 지낸 오율권씨, 광주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퇴직한 윤사현씨, 강진군청 지적계에서 근무한 공양윤씨, 서울에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윤득형씨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

새를 쫓기 위해 논을 둘러보고 있던 문종례(여·58)씨는 “허리 통증으로 4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고 최근 퇴원해 추수를 준비하고 있다”며 “올해는 날씨가 좋아 대풍이라고 하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 거름을 잘 주지 못해 벼포기가 제대로 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문씨는 “못자리를 준비해 놓고 갑자기 입원하게 돼 올해 농사를 짓지 못할 뻔했다”며 “같은 마을에 사는 큰조카가 모내기를 해주고 농사를 돌봐줘 그나마 올해 수확을 하게 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남편 공건식(68)씨가 풍을 앓아 걱정이 앞선다는 문씨는 “올해초 풍으로 광주 한방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아직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며 “빨리 건강을 되찾아 예전처럼 활기찬 모습으로 되돌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소망했다.

3남2녀를 두고 있는 문씨는 “3년전부터 서울에 사는 큰딸이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해주고 있다”며 “지난해 쌀 40㎏ 10여가마를 팔아주었고 올해는 고추 120여근을 큰딸에게 보내주었다”고 말했다.

마을주민들에 대해 문씨는 “주민들의 생활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니것내 것 없이 지내는 정이 넘쳐난다”며 “힘든 농사일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주민들 사이에 정이 있기 때문이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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