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것네"
[편집국에서]"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것네"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4.08.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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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것네”


탐진강 둔치에서 은어축제 전야제가 열렸던 지난 13일 밤이었습니다.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마신 건국대학교 황주홍 박사가 마지막으로 연단에 올라가 축사를 했습니다.

축사내용을 모두 기억할 수 없지만, 은어 축제가 더욱 더 발전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상당히 의미있는 메시지였고, 유세에 버금가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날 이영호의원은 형편상 개막식 참석을 못했습니다.

저는 행사장 뒤쪽 잔디밭에서 일행과 공짜 맥주를 즐기며 축사를 들었습니다. 제 주변 여러곳에서는 이미 술판이 거나하게 벌어져 있었습니다.

황박사가 축사를 마치고 힘찬 박수를 받고 내려 올 때였습니다.

“거 참, 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겠네”

저의 왼쪽뒤 강변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던 한 무리의 사람들 틈에서 언듯 들려온 소리입니다. 처음에는 저의 오른쪽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줄 알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는데 소리의 정확한 근원은 왼쪽뒤였습니다.

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겠다는 그 주민의 말,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저 또한 지금 누가 강진의 국회의원인지 헷갈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탐진강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누가 국회의원인지 모르겠다는 말에는 두가지 뜻이 배어있습니다. 하나는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이 국회의원 행세하고 있다는 핀잔일 수도 있고, 또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이 국회의원 정도의 몫을 잘하고 있다는 칭찬 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거꾸로 뒤집으면 진짜 국회의원이 국회의원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질타일 수 있고, 왜 진짜 국회의원을 물먹이느냐는 원망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의 기준에 따라 다르고,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결국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데 뿌리를 함께 합니다.

선거의 묘미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승자에게는 법적으로 대단한 권한을 부여합니다. 승자의 지위를 활용해 더 효율적으로 대중을 이끄라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패자에게는 법적으로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훗날 권토중래할 것인지 여부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문제 일 뿐입니다. 선거에서 2등한 사람에게 어떤 권한이 부여된다면 사회는 극도의 혼란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이같은 구조는 인간공동체가 오랜 학습끝에 만들어놓은 민주주의의 틀입니다. 이같은 틀이 사람간의 경쟁을 촉발시켜 민주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승자는 주민들의 평가를 받을 것이고, 패자는 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겠다는 각성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강진의 모습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물에 물을 탄 것 같습니다.

이영호 국회의원은 승자로서 지역사회와 지역민에게 어떻게 각인되고 있습니까. 국회의원이 되어서 강진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 민생탐방이라는 것이라도 한번쯤 해봤는지 궁금합니다.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게 국회의원의 서울 생활이라면, 주변사람을 통해서라도 지역민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구당까지 없어진 마당에, 요즘 이영호국회의원과 주민들 사이의 문은 너무 닫혀 있습니다.

이영호의원은 당선 초기에 어떤 간담회에서 자료준비가 허술하다며 강진군 실과장들을 호통쳤습니다. 당시 모습대로라면 지금쯤 이영호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강진의 주요사업들을 꽤뚫고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적지않은 사업이 중앙부처와 긴밀한 협력에 돌입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강진군에서 추진하는 사업중에 국회의원과 협력관계에 있는 사업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영호 국회의원의 현재와 같은 지역구 활동 모습은 주민들에게 적잖은 불만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황주홍박사의 요즘 행동반경은 매우 넓습니다. 청자문화제때는 개막식과 출향인의 밤에 참석했고, 은어축제에는 연단에 올라가 축사까지 했습니다. 국회의원 낙선자 중에 선거가 끝난지 6개월도 안됐는데 이 정도의 왕성한 활동을 재개한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주민들이 무엇을 느끼라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45.8%의 지지를 얻은 사람을 지속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인지, 각종 행사장에서 주민들에게 인사는 해야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분명한 메시지를 알고 싶습니다.

이런저런 이유중에 황박사를 이해해 줄 만한 명분은 시기적으로 별로 없습니다. 득표율에서 비롯된 기쁨을 누리는 것이라면 그것은 법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부여되지 않은 2등의 즐거움일 뿐입니다. 주민들에게 눈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인정때문이라고 하기에는 황박사가 출마했던 국회의원선거의 사회적 비중이 너무 큽니다. 

우리는 패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종종 말합니다. 여러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하기도 합니다만, 패자의 아름다움이란 결국 일정기간 조용히 있어 주는 것 아닙니까.

주민들의 손으로 선택된 사람에게 시간을 주면서 일단 기회를 부여하고, 설령 승자의 단기적 평가가 좋지 않더라도 그 사람과 열심히 해서 지역을 발전시키라며 주변사람들을 설득시키는게 우리가 아는 패자의 아름다움입니다. 승자에 대한 평가는 주민들이 하는 것입니다.

강진은 분명한 승자와 분명한 패자가 필요합니다. 물에 물탄 듯한 지역사회에서는 역동성있는 힘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민들을 헷갈리게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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