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애자씨'의 18년 직장 변경
[편집국에서]'애자씨'의 18년 직장 변경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4.07.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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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씨가 18년만에 직장을 바꾸었습니다. 애자씨가 누구냐구요. 모르시는 분은 모르

▲ 이애자씨
시겠지만 아실만한 분은 다 아시지요. 강진읍 군청아래 모 식당에서 쟁반위에 아귀탕과 복탕을 열심히 실어나르던 그 분 말입니다.

그분이 아귀탕 집을 그만두고 최근 모 어린이집 주방에 취업을 했답니다. 그 식당은 개운한 아귀탕도 좋았지만 손님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와 주문을 받던 애자씨의 순박한 모습도 대단한 인기였지요.

그래서 두아이의 엄마이면서 가정주부인 이애자(31)씨의 이름을 손님들이 정을 담아 부르던 ‘애자씨’라고 감히 적고 있습니다. 부디 실례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식당에 가면 “애자씨”를 힘차게 불렀습니다. 강진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식당에 가면 지난 18년 동안 “애자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식당에 가면 애자씨를 만날 수 없게 됐습니다.

말이 18년이지 한 직장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지요. 그것도 식당에서 여자몸으로 이토록 오랜세월 동안 서빙과 주방일을 본 것은 대단한 직업근성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애자씨의 나이가 지금 서른 한살이라고 하니 13살때부터 그곳에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애기했지만 애자씨는 손님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옵니다. 손님이 뭘 주문하면 큰소리로 “알겠습니다”하고 돌아가지요. 그러고는 감감 무소식일 때가 많습니다. 그 넓은 식당에서 혼자서 서빙을 하기 때문이였답니다. 그러고 한참있다 주문한 음식을 가지고 오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님들중에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언젠가 어떤분은 “애자씨가 조금 바쁜 갑다. 기다리다 먹으면 더 맛있제” 하면서 웃더군요.

애자씨는 또 손님들 사이에서 컴퓨터로 통했습니다. 그 많은 손님들의 주문을 혼자서 받다시피하면서 메모를 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 식당은 메뉴가 단순해서 음식이 다르게 나올 확률은 적습니다만, 손님들의 숫자는 이방과 저방이 헷갈릴 법도 한데 쟁반위에 들고 간 밥그릇의 숫자가 달라 본 경우가 없다는 군요.

또 음식서빙을 혼자서 하면서 그릇 한 번 깨본적이 없답니다. 여기에 손님들 나오면 “잘 드셨습니까”하는 인사말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프로중의 프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식당에 갔던 손님들은 애자씨를 단순히 종업원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집의 담백한 국물맛과 적당히 익은 밑반찬, 조금은 촌스러운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애자씨의 솔직한 심성이 잘 어울렸다고 할까요. 아무튼 애자씨는 그 식당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궁금해지는게 그럼 애자씨가 왜 20년 직장을 그만뒀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그 식당에 쉴세없이 드나들었던 사람들도 궁금증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애자씨의 말을 들어보니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는가 봅니다. 여기에 모두 적을 수는 없습니다마는 아마 사람이 살면서, 그리고 사람이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살다보면 나올 수 있는 그런 일 같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애자씨에게는 그 짐이 너무 무거웠고, 고심끝에 결국은 직장 이동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고민한 기간이 4개월은 걸렸다고 했습니다.

애자씨는 “나는 자유를 너무 원했다”는 말을 하더군요. 우리가 그 내막을 여기서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더 풀어야할 일이 많아보였습니다.

어쨌든 읍내식당에서 애자씨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손실로 느껴집니다. 애자씨 같은 사람들이 강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정말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읍내에서 애자씨를 만나면 다들 격려의 말씀이라도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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