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111>-병영면 하고마을
마을기행<111>-병영면 하고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4.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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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소리없이 대지를 적시는 가운데 들녘을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인 벼들은 시원스레 내리는 빗줄기를 양분삼아 나날이 키를 키워가고 있다. 먹장구름 사이로 간간이 내비치는 햇빛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들판을 더욱 초록빛으로 빛나게 만든다.

병영면소재지에서 직선으로 뻗은 농로를 1㎞ 남짓 따라 들어간 곳에 위치한 하고마을을 찾았다. 하고마을은 옛날 성터가 있었던 고성 5리에 속하는 마을로 옛 도강현의 치소가 위치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을에는 동헌터, 옥쇠터, 얼음창고 자리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을이 생긴 유래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백제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50여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정을 쌓아가고 있다.

마을 지형은 닭의 형국으로 예전 마을회관 근처에 2단으로 된 바위가 있어 이를 달걀로 비유하였다. 이 바위를 손대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고 전해졌으나 지난 60년대 마을 청년들이 골목길을 넓히기 위해 바위를 깨버렸고 조각들은 회관앞 사장나무 주위에 남아 있는 상태다. 또 하고마을은 회관을 중심으로 마을이 길게 형성돼 활 형국으로도 비유된다.

하고마을에는 소의 멍에처럼 생긴데서 유래된 논인 멍에배미, 마을 동북쪽에 위치한 논으로 흉년에 된장 한 그릇과 바꿨다고 하여 부르게 된 된장배미, 병처럼 생긴데서 유래된 병배미, 닭의 머리부분에 해당되는 달구머리, 하고저수지를 이르는 배진강, 섬처럼 생긴 언덕에 회선정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섬등, 마을에서 개를 잡아 씻는 곳에서 유래된 개샘, 소의 구유처럼 생겨 불리게 된 소구시샘, 옛날 과거에 합격해 마을로 돌아오면 깃발을 세웠던 곳으로 마을에 전염병이 유행하면 이를 막기 위해 디딜방아를 거꾸로 세워 두기도 했던 장소인 진대거리, 마을의 맨 남쪽에 있는 등성이로 소나무가 많아 부르게 된 지명인 시오리, 홍교의 위에 있는 보인 월턱보 등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주민들 사이에 구전돼 온 지명들이 전해오고 있다.

마을에 들어선 첫 느낌은 여느 마을과 다름없이 조용한 시골 마을을 연상시킨다. 촉촉이 내리는 장맛비는 마을의 분위기를 더욱 고즈넉하게 만든다. 마을에 도착해 강창희(47)이장을 찾았다. 강진군의회 의원을 지낸 강이장은 2년전부터 마을일을 맡아보고 있다. 강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협동심이 좋아 대소사에 너나없이 함께 한다”며 “예전보다 마을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지만 주민들 사이의 인심은 예전과 다름없다”고 마을자랑을 했다. 또 강이장은 “매년 4월19일에는 마을기금으로 70세이상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계속해 오고 있다”며 “잔치를 베풀거나 어르신들을 모시고 관광을 시켜드리는 전통을 꾸준히 지켜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고마을은 당도높은 단감 생산지로 유명하다. 50여 가구에서 15㏊의 면적에서 단감을 생산해 목포, 광주 등지의 공판장으로 출하해 높은 농가소득을 얻고 있다. 병영면 단감 재배면적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하고마을은 지난 90년대 초까지 생강을 특산품으로 재배했지만 연작피해로 생강생산량이 크게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농가들이 감나무로 작목을 전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하고마을은 황토질의 농지를 보유하고 있어 단감의 당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강이장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해 정주권사업의 일환으로 총사업비 1억5천여만원의 70평 규모의 저온창고를 완공해 가을에 수확한 단감을 3~4개월 저온보관한 후 출하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강이장은 “단감뿐만 아니라 저온저장으로 마을에서 생산되는 고품질의 쌀을 분산 출하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을을 둘러보다 저온창고 옆에 자리잡고 있는 여자노인당을 찾았다. 마을 구판장 건물을 수리해 사용하는 여자노인당의 20평 남짓한 실내에는 3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총무를 맡고 있는 최국자(여·62)씨는 “농번기에는 나이많은 주민들이 농사일로 바쁜 젊은 회원들을 위해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농한기에는 반대로 젊은 회원들이 어르신들의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있다”며 “매일 노인당에 모여 주민들 사이의 정을 키워가고 있다”고 자랑했다. 함께 있던 김양심(여·78)씨는 “노인당이 낡아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외풍이 심해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주민들이 매일 같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회관을 새로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덧붙였다.

마을 회의실 한켠에 위치한 2평 남짓한 이발관에서 마을주민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무료 이발봉사를 10년째 계속해 오고 있는 강대철(58)씨도 복지회관 신축을 내심 바라고 있었다. 마을 청년회에서 1만~2만원씩 성금을 모아 만든 이발관은 태풍 민들레의 여파로 유리창이 깨지는 등 피해를 입은 상황. 강씨는 하고마을 주민들뿐만 아니라 병영면 장애인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발관을 갖춘 복지회관이 신속히 신축되었으면 하는 속마음을 토로했다.

현재 마을에는 회영제라고 불리는 50여년 된 마을회관과 10년전 구판장 건물을 수리한 여자노인당을 주민들이 모임장소로 사용하고 있지만 건물이 낡고 공간이 좁아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하고마을 출신으로는 광주상업고등학교장을 역임하고 광주시교육청 교육위원을 지낸 박창래씨, 전남도경국장, 제주도지사를 역임하고 마을의 간이상수도 설치와 마을앞 경지정리 사업에 앞장섰던 장일훈씨, 천안 호서대 인문대학장을 역임한 최염열씨, 군 영농협회 회장과 군정자문위원을 지낸 김주성씨, 대전 세무서에 근무하는 전정문씨, 광주시 행정심판위원을 지낸 박병철씨, 광주에서 양림동파출소장을 거쳐 경위로 퇴직한 최규완씨, 동원산업에 근무하는 박철만씨, 부천시에서 파출소장을 지낸 최규석 씨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김순심씨
마을 안길을 따라 올라가다 집안 툇마루에 앉아있던 김순심(여·60)씨를 만났다. 태풍 피해가 없었는 지 묻자 김씨는 “지난 3월에 심은 깨와 고추가 강풍에 가지가 꺾이고 쓰러져 다시 세우는 작업을 했었다”며 “태풍이 큰 피해를 가져올 것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피해가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올해 20마지기 논 중 절반 가량을 직파로 벼를 재배하고 있어 대가 약한 편”이라며 “아직은 벼가 많이 자라지 않아 피해가 없었지만 8월경 태풍이 불면 피해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20마지기 밭에 감나무를 심어 재배하는 김씨는 “감이 익어도 일손이 부족해 다 따내지 못하는 형편이여서 지난해에는 상인에게 밭떼기로 14마지기 정도를 팔았다”며 “하고마을 단감은 특히 맛이 좋아 직거래로 15㎏ 한 상자에 2만원선에 판매했다”고 소개했다.

마을주민들에 대해 김씨는 “우리 마을은 집안에 애경사가 생기면 주인보다 마을주민들이 더 나서서 챙긴다”며 “부녀회 등 마을 조직이 잘 갖춰져 마을일에는 십시일반 힘을 모아 함께 하고 있다”고 답했다.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는 김씨는 “올해 군에서 장교생활을 한 큰아들이 제대하고 둘째아들도 대학을 졸업해 좋은 직장에 빨리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라며 “자식들이 잘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힘든 농사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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