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쏘렌토 일생
[기고] 쏘렌토 일생
  • 강진신문
  • 승인 2019.04.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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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松 조윤제 _ 시인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쏘렌토로 태어나 첫 주인을 만나서 힘들게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도와주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차와 교환 한다는 핑계로 두 번째 주인을 만났다. 자녀들이 효자라서 대금은 치른 것 같다.

주인이 일할 때는 화물차를 이용해서 쉬었고, 일이 없을 때는 여행을 즐겨서 주인마님과 함께 멀리 바닷가며 유명 관광지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잔칫집 상갓집 아들딸 찾아다니면서도 때맞추어 정비를 잘 해줘서 별로 아프지 않았고 힘들게 살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을 할머니들 시장 가려고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태워다 드리고 아픈 사람도 병원으로 태워다 드렸다. 간혹 주인은 서울 가고 기차역 주차장에서 며칠 동안 날밤을 새울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도둑이 오지 않을까. 누가 부딪치고 가지는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걱정되었으나 무사하게 지나갔었다.

그리고 마트, 시장에 가서 장짐을 싣고 다녔으며 집을 나설 때는 혼자였으나 중간쯤 가다가 낯선 젊은 여자를 태우고 바닷가 모래사장을 달리다 빠지기도 했다. 호젓한 산비탈을 오르다가 펑크가 나서 밤새워 기다리다가 날이 새서 타이어를 교환해 오기도 하고 사랑방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주인마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주차공간이 없어서 다투는 것을 보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신호위반 속도위반을 해 벌금을 내면서 속상해하는 것도 보았다.  도로를 달리다가 고양이 고라니 사체를 보고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 가나 가까이 가나 밤늦게라도 집에는 꼭 찾아왔으며 어디를 가든지  친구가 되고 발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아끼고 사랑해주어 접촉사고 한 번 없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킬로수가 올라갈수록 힘이 버거워 짐을 알았다.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주인은 조심하라 했고 아주 멀리는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킬킬킬 소리로 알려주었으나 주인은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가을날 단풍이 곱게들 때 집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앞을 지나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 생명이 다했음을 직감하고 하룻밤을 마을 앞에 놔두더니 견인차를 불러 20년 짧은 시간을 생명을 다하고 가는 모습을 주인은 못내 아쉬운 눈으로 멀리까지 전송해주었다. 일부 쓸 만한 부품은 다른 곳으로 팔려가고 나는 갈가리 분해되어 본래로 돌아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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