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굴에 끌려간 최부자의 전설 '칠량 송정리 지석묘'
도깨비굴에 끌려간 최부자의 전설 '칠량 송정리 지석묘'
  • 강진신문
  • 승인 2019.04.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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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칠량 송정리 지석묘(5)-

 

관내에는 각 마을에서 전해내려오는 전설, 즉 설화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전설이 후손들에게 전해지기는 쉽지 않다. 사라져가는 강진의 전설을 아이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김해등 동화작가의 시선으로 풀어서 게재해본다.

 

어스름이 내리는 저녁이었지. 오복이라는 아이가 동네어귀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 산을 넘고 넘어 장에 나간 아비를 기다리는 거야. 엄마는 병을 앓다 일찍 죽어서 오복을 아무도 돌보지 못해.
'꼬르르, 꼴꼴!'

뱃속에서 밥을 기다리는 신호가 오네. 보릿고개라 보리쌀이 떨어진 지 오래여서, 며칠 째 굶었는지도 생각도 안 나. 혹시 아비가 장에서 푸성귀라도 주워오면 풀죽이라도 끓여먹을 수 있으려나. 오복은 불쑥 화가 치밀었어.

"이게 다, 욕심 많은 최부자 때문이야!"
최부자는 소문난 부자였어. 한 번 들어온 재물은 꼭 움켜쥐고 내놓지를 않았지. 재물을 모으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하면 닥치는 대로 빼앗아갔어. 사람도 잡아가 머슴으로 부릴 정도였어.

오복은 주먹을 불끈 쥐며 흔들었어. 주먹 속에서 '따그르르 따그르르'하는 소리가 났어. 바닷가에서 주워 온 공깃돌들이야. 알록달록한 색깔이 어찌나 예쁜지 손에서 내려놓은 적이 없었어.
"얘야, 그거 나한테 줄래?"

난데없이 우락부락한 어른이 나타나 손을 내미는 거야.
"이걸 왜요?"
"갖고 놀려고 그러지. 방망이 하나로는 너무 심심하단 말야."
"방망이라니요?"

 

 

 

 

 

"그런 게 있어. 더는 묻지 말고 무조건 나한테 줘, 그거!"
"안 돼요!"
오복은 단칼에 거절해버렸어. 아비를 기다리는 시간을 달래줄 공깃돌인데 선뜻 줄 수가 있어야지. 그것도 공기놀이 할 아이도 아닌 어른한테 말이야. 하필 그때 배곯는 소리가 나오지 뭐야.

"배고프나 보네. 몇 끼나 굶은 거냐?"
"……."
오복은 대답을 못했어. 사실 몇 끼 굶었는지 셀 수도 없었거든.

"진수성찬을 차려주면 그 공깃돌을 나한테 줄 테냐?"
"진수성찬……."
그런데 참 이상해. '진수성찬'이란 말만 들었는데도 벌써부터 푹 삶은 고기 냄새가 진동하는 거야. 노릇노릇 전이 익어가고, 가마솥에서 쌀밥 짓는 그림도 마구 떠오르고 말이야.

그렇지만 오복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어. 아무래도 우락부락한 어른이 수상쩍었거든.
"그래도 안 돼요."
"그깟 공깃돌이 그리 중하냐?"

"그럼요, 이거 없으면 무지 심심하거든요."
"흠."
우락부락한 어른은 한참을 생각했어. 그러다 환한 얼굴로 입을 열었지.

"좋다! 진수성찬에다 네 소원 하나를 더 들어주겠다."
"정말요?"
"그렇다니까, 맨날 속고만 살았냐?"

오복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에 소원을 냉큼 말했지.
"우리 누렁소 좀 찾아주세요."
"누렁소?"

"욕심 많은 최부자가 작년에 빌린 보리쌀을 갚지 않았다고 끌고 가버렸다고요."
"좋다! 그렇게 하마!"
우락부락한 어른은 흔쾌히 허락하며 손을 내밀었어. 오복이도 어물쩍 공깃돌을 내밀었지.

그때였어.
'펑!'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어. 우락부락한 어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지. 물론, 알록달록한 공깃돌도 함께 말이야. 그런데 눈앞에 진수성찬 같은 밥상이 차려져있지 않겠니?

오복은 늦게 돌아온 아비와 오랜만에 배부른 저녁을 먹었단다.
다음 날, 최부자 집에 손님이 찾아왔어.
"이리 오너라!"

최부자는 손님의 옷차림부터 살폈어. 큰 갓에 말끔한 도포 차림의 선비였어. 구걸하러 온 거지였으면 당장 내쫓았을 텐데, 마침 글공부를 하는 아들이 있어서 받아줬어. 아들 녀석의 공부가 신통치 않았거든.
선비도 최부자의 속내를 금방 알아차렸어.

"허허, 귀에 공이가 들어차 있는 자식이 있군요."
"아니, 그걸 어찌 아시고……."
"한 며칠 머무르며 잘 가르쳐 볼 테니 염려 놓으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넉넉지 않지만 하루에 공부 값으로 다섯 냥씩 드리겠습니다."
최부자는 고개를 넙죽넙죽 숙였어. 둘은 조촐한 저녁을 들고난 후 심심풀이로 장기를 두었어. 최부자는 동네에서 욕심만큼이나 장기를 잘 뒀어.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지.

 

 

 

 

 

 

 

 

그래서 장기 내기라면 물불을 안 가렸고 말이야.
선비의 장기 실력이 변변치 않았어. 최부자는 공부 값 다섯 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공짜로 자식 공부를 시킬 수도 있다는 꾀가 떠올랐어. 그때 선비가 솔깃하게 묻는 거야.

"이거, 장기가 영 심심하군요. 우리 내기라도 해볼까요?"
"허허, 정말이오?"
최부자는 껄껄 웃으며 반겼어.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물었어.
"내기에 뭘 거실 건가요?"
"흠……가진 거라곤 이거 밖에 없습니다."

선비는 소매 속에서 진귀한 구슬을 꺼내놓았어. 어찌나 오색찬란한 빛을 내던지 최부자는 눈을 휘둥그레 떴어. 척 봐도 보통 보물이 아니었거든. 선비는 힐끔 최부자를 쳐다보고 말했지.
"중국 황후의 노리갯감이랍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랍니다.

내 집에는 광이 넘칠 정도로 진귀한 보물이 철철 넘쳐나지요. 만일 내가 진다면 그것을 몽땅 드리도록 하겠소."
"어허허……."
최부자는 심장이 뛸 정도로 기뻤어. 선비의 장기 실력은 보잘 것 없으니 이긴 거나 다름없지 뭐니. 이제 나라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는 일만 남은 것 같았어.

선비가 입을 열었어.
"만일 내가 이기면 저 외양간의 누렁소를 주시오."
"뭣! 누, 누렁소라고요!"

최부자는 순간 놀라서 펄쩍 뛰었어. 덩달아 선비도 놀라지 뭐야. 최부자는 이내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어. 어차피 이길 것인데 뭔들 걸지 못하겠어?


◎ 자세히 알아보기
칠량면 송정리 계동마을에 25기 정도의 지석묘가 늘어져 있다. 지석묘는 선사시대 때 사람들의 묘인데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고인돌'이다. 그때의 사람들은 강이나 바다를 가까이에 두고 무리를 지어 모여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강진의 탐진강을 중심으로 수많은 고인들이 발견되고 있다.
 
계동마을의 지석묘는 남방식과 개석식이 섞여 있다. 지석묘는 생김새에 따라 북방식과 남방식 그리고 개석식으로 나뉜다. 바둑판처럼 뚜껑돌 밑으로 조그만 받침돌을 고이는 방식이 남방식이고, 판자 같은 돌을 놓고 그 아래 땅을 파고 무덤방을 만드는 개석식이다. 북방식은 커다란 뚜껑돌 밑의 땅 위에 시체를 놓는 방식을 말한다.
 
지석묘 25기 중 5호와 15호는 뚜껑돌이 넓어서 집 없는 거지들이 뚜껑돌 아래를 집으로 삼아 살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밤이면 불쑥불쑥 나타나다보니 도깨비로 오해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도깨비굴'로 불리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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