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효(孝)에 관한 이야기
[다산로]효(孝)에 관한 이야기
  • 강진신문
  • 승인 2019.03.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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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권 수필가

효(孝)의 중요성에 관한 글은 많지만 효의 실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열녀와 효부, 효자가 되기란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옛날 마을에 열녀나 효부, 효자가 나오면 나라님이 상을 내리고 문중에서는 비각을 세워 장려하였다.

조선 숙종 때 있었던 일화를 통해 효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본다. 세찬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철이었다. 궐밖에 민심을 살피기 위해 미복 차림으로 야행을 갔다. 빈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 앞을 지나고 있었다. 외벽이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움막집에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이를 궁금하게 여긴 임금은 움막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물 한 사발을 청하면서 둘러보았다. 살림살이는 보잘것없고 사방이 낡은 흙벽뿐이었다.  임금이 물었다.
"여보시오! 이 집안은 뭐가 그리 즐거운 일이 많아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은 것이오?"

주인이 대답했다.  "비록 힘들게 살아가지만 평생 갚아도 부족한 빚을 꾸준히 갚아가며, 늘그막을 위해 작은 저축도 해가며 살아가니 어찌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웃음을 참지 못하나 봅니다"

궁궐로 돌아온 임금은 궁금증이 풀리질 않았다. '평생 갚아도 못 갚을 큰 빚을 갚으며 작지만 노후를 대비하여 저축을 할 수 있다' 분명 뭔가 큰 비밀을 감추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그는 가장 믿을 만한 신하를 불러 은밀히 진상을 파악해 오도록 했다.

다녀온 신하 역시 같은 말을 했다.  "그들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숨겨놓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임금은 또 다시 그 집을 찾아 나섰다. 이번에는 인기척도 하지 않고 허물어진 흙벽 틈사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허리를 구부리고 새끼를 꼬고 있는 수염이 허연 노인 곁에 어린애들이 깔깔대면서 볏짚을 고르고 있었다. 부인은 바람벽에 기댄 채 해진 옷을 깁고 있었다.  임금은 문을 두드리고 방안으로 들기를 청했다. 전에 다녀갔던 일을 말하며 뜻을 다시 물었다. 주인은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은 곧 빚을 갚은 것이요, 애들을 키우는 것은 노후를 위한 저축이지요, 그래서 이보다 더 큰 부자가 어디에 있겠소이까?"  가난 속에서도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삶에 감동을 받은 임금은 궁으로 돌아가 효를 장려하는데 더 힘을 기울였다는 얘기다.

어른은 어린이의 거울이다.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 커서 부모에게 효도를 잘 할 수 있다. 나는 태어나 우는 재주와 젖을 빠는 힘밖에 없었지만 매일 부모의 사랑을 먹고 성장했다. 어린 시절 부모 곁에 있으면 안심되어 한없이 즐겁지만 잠시만 떨어져 있으면 불안하고 무서웠다.
 
자식을 낳아서 길러 보면 부모의 깊고 높은 은혜를 알 수 있다.  효(孝)자는 늙을 노(老)와 아들 자(子)가 합해진 글자다. 자식이 늙은 부모를 업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핵가족 시대로 접어들면서 효의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아 허전하다.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사회지만 효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겨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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