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전설이 남아있는 구유바위
신비한 전설이 남아있는 구유바위
  • 강진신문
  • 승인 2019.03.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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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군동평덕마을 굴레바위(4)>

장성한 인선은 유명한 지관이 됐단다. 지관이란 집터나 묏자리를 잘 잡아주는 사람을 부르는 말이지. 어찌됐던 백여우의 구슬을 삼킨 바람에 유명한 지관이 됐다는 소문이 자자했지. 덕분에 살림도 넉넉해졌고 말이야.

그럼, 시샘이 많았던 누이동생은 어떻게 됐을까?
누이는 옆 동네 배씨 집안으로 시집을 갔대. 마음씨 착한 인선은 누이에게 넉넉한 재물도 안겨줬어. 그런데도 누이는 욕심이 많아 친정을 들락날락하면서 이것저것 제 물건처럼 가져갔어.

훗날, 인선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의 묏자리가 궁금했어. 최고의 지관이니 최고의 명당에 아버지 묘를 쓸 거라 여겼거든. 명당이 후손들을 잘 되게 해준다고 철석같이 믿던 시대였으니까 그래.

인선은 아버지의 묘를 미리 봐뒀었어.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 감히 자랑할 만한 곳이었지. 장례 날, 상여꾼들이 미리 봐 둔 묏자리로 향했어. 묏자리가 궁금한 사람들도 뒤를 따랐어.
"으헉!"

인선은 묏자리 앞에서 까무러치고 말았어.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기 때문이지.
"이, 이럴 리가 없는데……."
인선은 몇 번이나 묏자리를 확인했어.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차며 손가락질을 해댔어.

"제 아비를 물구덩이에 모시려고 했네!"
"유명한 지관은 헛말이었어, 헛말!"
"불효막심한 사람 같으니라고!"

인선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어. 하는 수없이 가까운 곳을 찾아 허겁지겁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어. 인선은 그 일 때문에 얼굴을 들고 밖에 나갈 수가 없었어.
몇 년 뒤, 누이동생이 인선을 찾아왔어.

"오라버니, 시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셨답니다."
"아이고, 이런……."
"부탁이 있어 이렇게 부랴부랴 찾아왔는데, 꼭 들어주셔야 해요."
"그, 그러마."

인선은 수심이 가득한 누이의 부탁을 거절할 리가 없었지. 누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을 열었어.
"예전에 파 두었던 아버지 묏자리를 저에게 주세요."
"거긴 물구덩이가 아니더냐? 그런 곳에 어찌 시아버지를 모시려고 그러느냐."

"아니에요, 오라버니. 나중에 보니 물이 바짝 말랐더라고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인선은 대수롭지 않게 허락했어. 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시댁으로 돌아갔어. 별 탈 없이 시아버지의 장례도 치렀지.

그런데 얼마 안 돼, 누이에게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어. 누이의 집안에 재물 복이 터지기 시작하는 거야. 하는 일마다 잘 되고, 짓는 농사마다 풍년이었어.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하인들도 수십 명이나 늘어났지.

어느 날, 탁발승 한 명이 누이 집을 찾아왔어.
"시주 좀 하시지요."
"지나가는 개를 줄 보리쌀은 있어도, 놀고먹는 스님 먹일 보리쌀은 없다."

누이는 탁발승에게 소금을 뿌려댔어. 탁발승이 허허, 너털웃음을 웃더니 한 마디 하는 거야.
"허어, 아깝다. 아까워……."
"아까워? 자, 잠깐……스님, 뭐가 아깝다는 겁니까?"

누이는 얼굴을 싹 바꿔 탁발승을 붙잡았어. 탁발승은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더 해줬어.
"저, 논 가운데 있는 바위 있잖소?"
"무슨 바위요?"
"소 구유처럼 생긴 저 바위 말이오."

"아!"
"저 바위가 이 집 재물 운을 가로막고 있지 뭐요. 만석꾼이 되고도 남을 집인데……아깝구나, 아까워."
탁발상은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하늘을 쳐다봤어. 어디서 낯이 익더라니 바로 백여우로부터 인선의 목숨을 구해준 그 도승이었어. 누이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어. 쓸데없는 바위 때문에 농사 짓기 불편했는데, 잘 됐다 싶었지.

사실은 도승의 '만석꾼'이라는 말에 혹했고 말이야.
"당장 저 구유 바위를 쪼개 버려라!"
누이는 머슴들에게 소리쳤어. 힘센 머슴들이 달려들어 커다란 정으로 구유 바위를 쩡쩡 내리쳤어.
'쩌어-쩍!'푸르르릉!

구유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더니, 그 속에서 파랑새 한 쌍이 날아올랐어. 파랑새는 마을 한 바퀴를 휭 돌고 나더니 마을 앞에 있는 연꽃방죽 속으로 떨어지듯 들어가 버리는 거야. 화들짝 놀란 머슴들이 방죽으로 달려가 보았지만 파랑새는 보이지 않아. 대신 방죽 물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어.

얼마나 지났을까? 떵떵거리며 잘 살았던 누이동생의 집이 폭삭 망해버렸어. 사람들은 알거지가 된 누이를 두고 손가락질을 해댔지.
"세상에 할 짓이 없어 제 아비 묏자리를 넘봐?"

"욕심이 화를 부른 거지!"
그래, 욕심 많은 누이가 인선이 봐 둔 아버지 묏자리에 몰래 물을 가져다 부은 거였어. 물구덩이처럼 보이게 하여 묏자리를 쓰지 못하도록 한 짓이었지. 나중에 시아버지 묏자리로 써 벼락부자가 됐고 말이야. 이런 못돼먹은 누이동생을 도승만 알아봤던 거지.

지금도 군동면 쌍덕리 평덕 마을에 가면 구유 바위를 볼 수 있대. 그런데 둘로 쪼개진 바위가 아닌, 다시 하나로 합쳐진 바위래. 누군가가 쪼개진 틈에 시멘트를 부어 하나로 이어놓은 거지. 소를 먹이는 구유처럼, 동네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마음에서 비롯됐던 거겠지?

 

◎ 자세히 알아보기

군동면 쌍덕리 평덕마을에는 희한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데 마치 말이나 소를 먹이는 구유를 닮았다 해서 '구시바위'라고 하거나, 장구처럼 생겨서 '장고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바위는 일 미터의 사이를 두고 있는데 높이가 2미터 정도나 된다. 논 한가운데 있는 바위이다 보니 농사 짓는데 여러모로 불편했을 텐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로 봐서 우리가 읽은 신비한 전설 때문에 함부로 없애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굴레 바위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의 작은 산이 소의 머리를 닮았고, 가까이에 있는 냇가가 마치 소의 고삐를 닮았으니 이 굴레바위는 당연히 소의 먹이를 먹이는 구유가 되는 것이다.
구유를 치워버린다는 것은 소를 죽이는 것이 되고 소가 죽는다는 것은 이 마을이 쫄딱 망해버릴 것이라는 염려와 걱정도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생김새나 이치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나 지혜를 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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