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솟은 바위...소를 먹이는 구유에서 유래
두개의 솟은 바위...소를 먹이는 구유에서 유래
  • 강진신문
  • 승인 2019.03.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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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해등 작가와 함께하는 동화로 살아나는 강진의 전설
<군동평덕마을 굴레바위(3)>

두개의 솟은 바위...소를 먹이는 구유에서 유래

옛날에는 소의 모양대로 이름을 붙인 마을들이 많았어.
 
강진 군동면 쌍덕리 평덕 마을도 마찬가지야. 뒷산은 소의 머리라고 불렀고, 마을 앞에 흐르는 냇가는 소의 고삐라고 불렀지. 마침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소를 먹이는 구유바위가 우뚝 솟아있고 말이야.
 
그 마을에 재주 많은 아이가 살았어. 어찌나 총명하던지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고도 남았어. 용모까지 준수해 모두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어.
 
그 아이에게는 예쁜 누이동생이 있었어. 누이는 재주 대신 예쁜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어. 예쁜 얼굴만큼이나 마음씨가 착하면 얼마나 좋겠어? 시샘이 어찌나 많은지 어른들은 골머리를 앓았단다. 특히, 누군가 오빠를 칭찬하면 못 견뎌했단다. 그때마다 뒤뜰 대나무 숲에 들어가 남몰래 외쳐댔어.

"오빠를 호랑이가 물어 가버렸으면 좋겠어!"
"여우야, 오빠 간 좀 빼먹어버려!"
"도깨비는 뭐하나? 오빠 혼이라도 쏙 빼가버리지!"

듣기만 해도 섬뜩했지. 그렇지만 누이는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좀 편했어. 자나 깨나 들려오는 오빠를 칭찬하는 소리가 지긋지긋했거든. 오빠만 없었다면 그 칭찬이 다 자기 차지였을 텐데 말이야.

오빠는 늠름하게 잘 자랐단다. 그러고 보니 이름이 '김인선'이었다고 해. 인선은 멀리 있는 서당에 나가기 시작했어. 글을 깨우치는 재미에 십 리 길도 무척 신이 났지. 언덕을 넘고 내를 건너면서 그날 배운 글을 흥얼흥얼 노래하듯 외며 다녔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언덕을 막 넘었을 때 서럽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흑흑"
 
아리따운 소녀가 버드나무 앞에서 울고 있는 거야. 인선은 걸음을 멈추고 소녀에게 다가갔어.

"무슨 일인데 그리 섧게 우시는 가요?"
"흑……다름이 아니라……."
 
소녀는 옷고름으로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어.

먼 곳에 장사를 나간 아버지가 몇 달째 소식이 없다는 거야. 그러다 엊그제 사람 편으로 편지 한 통을 전해왔는데 읽을 수가 없다고 했어. 혹시나 아버지에게 무슨 큰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됐고.
 
인선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어.
"제가 읽어드려도 될까요?"
"저, 정말이에요? 감사합니다, 도련님."
 
인선은 편지를 펼쳐 그대로 읽어줬어. 장삿길에 도적떼를 만나 고생했지만 무사하니 걱정 말라는 내용이었어. 소녀는 기쁜 나머지 인선을 와락 껴안지 뭐야. 인선의 가슴은 마구 뛰었지.
 
소녀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버드나무 앞에 나와 있었어. 인선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지. 발그스름한 볼이 어찌나 예쁜지 인선은 그때마다 넋을 빼앗길 지경이었어. 그러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사랑에 빠져버렸단다.

그런 뒤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인선이 점점 야위어가는 거야. 퀭한 눈에 걸음걸이까지 휘청거렸어. 총명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고, 금방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지. 횡설수설 헛소리까지 했고.
 
누이는 고소한 눈초리로 인선을 놀려댔어.
"오라버니! 꼴이 그게 뭐예요?"
"내가 뭘, 어쩐다고……."
"흥! 백여우한테 당했네, 당했어!"
"……."
 
인선은 무슨 말인지 몰라 대꾸조차 할 수 없었어. 부모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용하다는 의원을 불러보기도 하고, 몸에 좋다는 약은 다 써봤지.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인선의 몰골은 초췌해져만 가네.
 
어느 날 서당에 다녀오는 길이었어. 인선은 늘 그랬던 것처럼 소녀를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떴어. 금방 죽을 것 같다가도 버드나무 앞에 서있는 소녀만 보면 힘이 났거든.

"잠깐, 나 좀 보자!"


느닷없이 삿갓을 쓴 도승 한 분이 인선을 붙잡았어. 그러더니 다짜고짜 꾸짖는 거야.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니느냐?"
"무슨 말씀이시죠?"
"널 해코지하는 요물도 못 알아보느냐, 이 말이다!"
"……."
 
인선은 영문을 몰라 눈만 멀뚱멀뚱 떴어. 도승은 인선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줬어. 날마다 만나는 소녀가 요물이라는 거야. 그렇지만 인선은 도승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

"스님,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허어!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구나!"
"……."

"믿든 안 믿든 이제 네 목숨은 너 하기에 달렸다.  그 요물이 오늘도 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입맞춤을 할 것이고, 요물의 혀 끝에 있는 구슬이 느껴질 것이다. 넌, 그 구슬을 꽉 물고 신발을 벗어 요물의 뒤통수를 쳐버리도록 해라."
 
도승은 그 말을 끝으로 바람처럼 사라져버렸어. 인선은 믿기지 않아 가던 길을 재촉했어. 바로 매일 소녀가 기다리는 버드나무 앞이었지. 소녀는 오늘따라 더 아리따운 모습으로 인선을 기다리고 있었어.
"왜 이리 늦으셨어요? 소녀, 애가 타는 줄 알았어요."
"아, 그게……."
"기뻐해주셔요. 오늘 밤쯤 아버지가 집에 오신답니다. 모든 게 다 도련님 덕분이에요."
 
소녀는 인선의 품에 와락 안겼어. 그러더니 인선에게 입맞춤을 건네 왔어. 정말로, 도승이 했던 말처럼 소녀 혀 끝에 구슬이 느껴지는 거야. 인선은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어.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러고는 짚신을 벗어 소녀의 뒤통수를 세게 내리쳤어.
"아악……."
소녀의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어.
'캥……캐갱, 깽!'
 
인선은 감았던 눈을 와락 떴어. 아! 그토록 아름다웠던 소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꼬리가 아홉 개나 달린 백여우가 쓰러져 있는 거야.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있는 모습만 봐도 섬뜩했어.
도승이 인선을 다시 찾아와 물었어.

"구슬은 어디 있느냐?"
"깜짝 놀라는 바람에 꿀꺽 삼키고 말았습니다."
"흠……."
 
도승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혀만 끌끌 차고 발길을 돌렸어. 뭔가 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고 말이야.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인선이 구슬을 삼키지 않았다면 나라를 빛낼 재상이 될 수 있었다고 해.<계속>


◎ 자세히 알아보기
 
군동면 쌍덕리 평덕마을에는 희한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마을 앞 논 한가운데에 두 개의 바위가 우뚝 솟아있는데 마치 말이나 소를 먹이는 구유를 닮았다 해서 '구시바위'라고 하거나, 장구처럼 생겨서 '장고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개의 바위는 일 미터의 사이를 두고 있는데 높이가 2미터 정도나 된다. 논 한가운데 있는 바위이다 보니 농사 짓는데 여러모로 불편했을 텐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걸로 봐서 우리가 읽은 신비한 전설 때문에 함부로 없애지 못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 굴레 바위에서 백 미터 떨어진 곳의 작은 산이 소의 머리를 닮았고, 가까이에 있는 냇가가 마치 소의 고삐를 닮았으니 이 굴레바위는 당연히 소의 먹이를 먹이는 구유가 되는 것이다.
 
구유를 치워버린다는 것은 소를 죽이는 것이 되고 소가 죽는다는 것은 이 마을이 쫄딱 망해버릴 것이라는 염려와 걱정도 가능하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자연의 생김새나 이치에 따라서 삶의 방식이나 지혜를 얻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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