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3>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3>
  • 강진신문
  • 승인 2019.02.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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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_ 한자·한문 지도사

                                  돼지 시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이다. 때가 때인지라 이미 소개했던 '돼지 시(豕)'자를 다시 소환했다.
 
음양오행상 기(己)는 토(土)이고 토는 황색을 상징한다. 해(亥)는 12지지 가운데 돼지다.
 
이 두 글자를 조합하니 황금돼지가 되는 것이다. 해시(亥時)는 밤 9시부터 11시까지이다. 돼지가 저녁밥을 먹고 포만감에 젖어 편히 잠들 때이다. 갑골문의 발견으로 '돼지 豕(시)'자는 돼지 한 마리를 형상화했음이 밝혀졌다.
 
돼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양가적이다. 먼저 복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산다. 하지만 욕심 많고 미련한 사람의 별명으로 쓰기도 한다. 30대 후반쯤 돼지를 키우는 농장에서 일해 봐서 안다.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깨끗하고 영리한 동물이다.
 
신기하게도 장소를 가려서 대소변을 싼다. 누울 자리와 배설할 자리를 안다는 말이다. 지능지수도 개나 돌고래와 맞먹는다고 한다.

                                    집 가

'집 가(家)'자도 다시 불러냈다. 고대의 문자천재는 집(家)의 주인공으로 사람이 아니고 돼지를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결론은 하나로 수렴한다.
 
고대 인류에게 더없이 유익한 동물이었다는 것이다. 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가죽은 갑옷으로, 뼈는 생활도구나 무기로, 털은 솔로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었다. 현대의학에서도 인간의 난치병 치료를 위해 중요한 장기(臟器)까지 돼지에게 의존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돼지가 집(家)의 주인공이 될 만한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한자 가운데 자주 쓰는 돼지의 종류는 豕(돼지 시), 猪(돼지 저), 豚(돼지 돈)이다. 시(豕)는 주로 부수자로 쓴다. 멧돼지처럼 앞뒤 가리지 않을 때 저돌적(猪突的)이라고 한다. 돈(豚)자는 화폐의 우리말 '돈'과 발음이 같다. 가(家)로 본다면, 누구의 집에든 황금돼지나 복돼지 한 마리는 다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얼마나 잘 기를 것인가 이것이 문제인 것 같다.

                              며느리, 아내 부

'아내 부(婦)'자는 갑골문에서 보듯 빗자루(    : 빗자루 추)와 여인이다. 빗자루는 청소용 도구다. 그래서 부(婦)가 '청소하는 여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견 당연한 듯 보이지만 과연 그럴까? 갑골문자를 사용했던 상나라(BC 1600~BC 1046)는 1대 왕 태을(太乙, 탕湯)부터 마지막 왕 제신(帝辛, 주紂)까지 30명의 왕이 554년간 통치했던 나라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518년과 비슷하다.
 
상나라 30왕 가운데 가장 업적이 뛰어난 왕은 22대 무정(武丁)이다. 역사가들은 그 시기를 무정부흥으로 부른다. 그의 치세는 두 사람의 능력 있는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 사람은 노예출신 부열(傅說)이라는 재상이었고 또 한 사람은 여자대장군이었다. 그녀는 무정왕의 부인인 왕후이자 1만 3천이 넘는 군사들의 총사령관이었다. 항상 도끼를 손에 들고 군을 지휘했다. 그녀의 이름은 '아내 부(婦)'가 들어간 부호(婦好)였다. 

                                  위엄 위

'위엄 위(威) = 남성적 언어'로 보는 전통적인 프레임과 다르게 위(威)자는 '여자 여(女)'와 '개 술(戌)'의 합자이다. 보다시피 여자(女)가 주인공이다. 술(戌)자는 12지지 가운데 개를 뜻하나 본래는 도끼 월(    )자와 같은 뜻으로 썼다. 풀어보면 위(威)자는 '도끼를 들고 있는 여성'이다.
 
앞서 소개한 무정왕의 부인인 부호(婦好)의 모습과 닮았다. 부호의 묘는 1976년 발견되었는데 도굴되지 않은 그녀의 묘에서 청동도끼가 발굴되었다.
 
부호는 상나라 군대의 반 이상을 지휘한 여자대장군으로서 수많은 적국을 정벌하고 영토를 넓혔다. 일대기가 기록된 갑골문의 발견으로 그녀의 활약상은 전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위(威)자는 '시어머니'의 뜻도 있다. 인류역사는 모계사회가 먼저였고 한 집안의 권력은 모두 시어머니에게 집중되었다. 그래서 위(威)자를 막강했던 시어머니의 위상을 상징하는 글자로 보기도 한다.

                                  북녘 북

세상을 살다보면 잘 지내던 사람과 등을 지는 경우가 있다. 의견 차이가 나면 그것을 좁히려고 하기보다 '아 이제 보니 내편이 아니네'하고 돌아서고 만다. 어제까지 좋았던 관계가 겨울철 북풍처럼 차가워진다. 북(北)이 바로 그런 글자다.
 
북(北)의 갑골문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두 사람이 등을 맞대고 있다. 아마도 처음에는 '등'의 의미로 썼을 것이나 이후 그 효력을 잃고 '북쪽방향'을 뜻하는 글자로 굳어졌다. 신체구조상 '등'은 몸이 남쪽을 향할 때 북쪽에 위치한 부위여서 그랬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북(北)의 변신으로 '등'을 뜻하는 새로운 글자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율배반(二律背反)에 쓰는 '등 배(背)'자는 이런 사연으로 세상에 나왔지 싶다. 北에 육달월(月)을 더했다. 북(北)은 '북쪽'외에 '달아나다','도망치다','(싸움에)지다'의 의미도 있다. 이때에는 '북'아니라 '배'로 읽는다. 패배(敗北)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되다 화

'되다 화(化)'자는 변화(變化)를 상징한다. 멈춤을 허하지 않는 글자다. 소화(消化), 강화(强化), 약화(弱化), 악화(惡化), 심화(深化), 문화(文化), 민주화(民主化), 양극화(兩極化), 정상화(正常化), 구체화(具體化), 활성화(活性化), 고령화(高齡化)등 속도나 시간의 길이에 차이가 있을 뿐 변화가 핵심임을 알 수 있다.
 
고대의 문자천재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이러한 화(化)의 개념을 문자로 구체화하기 위해 어떤 시각적인 소재를 선택했을까. 반대방향으로 누워있는 두 사람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어쩌면 한사람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몸의 자세를 요즘으로 치면 애니메이션 기법을 써서 표현해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갑골문자를 보고 당시의 사회구성원들은 화(化)자가 품고 있는 '변화'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읽어낼 수 없었다면 화(化)자는 문자의 구실을 못하고 이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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