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구마꽃의 역습
[기고] 고구마꽃의 역습
  • 강진신문
  • 승인 2018.11.25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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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헌 _ 시조시인·수필가

얼마 전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고구마꽃 사진이었다. 첨엔 무슨 나팔꽃인가 했다. 깔때기 모양의 안쪽은 자주색, 바깥쪽은 하얀색을 띄고 있는 꽃이었다. 그 꽃을 직접 보기 위해 뒷날 지인 부부와 함께 고구마 밭으로 향했고, 월출산 정상과 기암괴석 능선이 바라보이는 곳에 멋진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이의 텃밭에서 고구마꽃을 직접 만났다.

미국에서 살다 6년 전에 귀촌했다는 부부는 미국의 아는 사람들에게도 사진을 찍어 보내 자랑을 할 만큼 고구마꽃을 귀한 꽃으로 여기고 있었다. 거실 통유리 너머의 신록을 마주하고 차를 마시며 고구마꽃에 대한 얘기로 쾌 긴 시간을 보냈다. 
 
고구마꽃은 100년에 한번 필까 말까 할 정도의 특별한 꽃으로 알려져 있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 대륙의 아열대 기후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 꽃이 피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그래서일까. 고구마꽃의 꽃말은 행운이라고 한다. 춘원 이광수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년에 한번 볼 수 있는 꽃이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 귀한 꽃이 최근 들어 더 자주 피고 있다. 그것도 거의 전국에 걸쳐 피고 진다. 그러다 보니 꽃말을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네잎 클로버가 행운이라는 꽃말을 가진 것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성 때문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보기 어려웠는데 연일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면서 꽃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기상학자들은 가뭄이 길어지는 마른장마와도 상관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흙 속 수분이 부족해 뿌리로 가야 할 영양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 종자 번식을 위해 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하지만 우리 집 마당의 소나무에도 몇 년째 솔방울이 지나치게 많이 달려 알아봤더니 나무가 시달리면 종족보존을 위해 그런 현상을 보인다고 했다.
 
이처럼 고구마 꽃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이상 기후의 지표이자, 지구 온난화의 경고이기도 하다. 우리 선조들은 고구마꽃이 기후를 예측한다고 믿었고, 실제로 꽃이 피는 해에는 어김없이 심한 가뭄 등이 찾아왔다고 한다. 가물어서 고구마꽃이 핀 것이다. 과거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고온현상 때문에 꽃이 피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온으로 인한 경고음이 들린 지 오래다. 폭설, 폭염으로 몸살을 앓는가 하면, 때 아닌 홍수에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지역도 속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기도 한다. 사막화 현상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바다에서도 한류성 어종이 감소하고 해파리가 증가하여 어부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가뭄에 홍수, 태풍까지 그야말로 지구촌은 자연재해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귀한 고구마꽃을 볼 수 있어 좋긴 한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섬뜩하다. 고구마꽃이 우리 인간에게 보내는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그 경고음을 소홀히 들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지구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멀리 있지 않다.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공공기관의 냉난방 온도, 냉방은 더 높이고 난방은 조금 더 낮췄으면 좋겠다. 자기 집 아니라고 너무 함부로 쓰고 있다. 전깃불도 필요할 경우에만 켜야 한다. 쓰레기도 줄여야 한다. 커피숍의 빨대도 이제는 없앨 때가 됐다. 특히 자동차 배기가스는 주범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중교통 이용을 생활해 했으면 좋겠다. 작은 실천이 큰 세상을 만든다는 사실, 항상 잊지 않아야 한다.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지금부터, 나부터 주변을 쾌적하게 가꿔간다면 고구마꽃은 꽃말 그대로 우리에게 멋진 행운을 안겨 줄 것이다.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나를 위해서, 우리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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