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병영면 하고리 발천마을〈83〉
마을기행-병영면 하고리 발천마을〈83〉
  • 김철 기자
  • 승인 2002.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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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뜨거운 날씨가 해와 함께 사라지고나면 선선함보다는 쌀쌀하게 느껴지는 가을날씨가 시작되면서 농촌들녁에는 파란들판이 황금색을 조금씩 머금어가고 있다. 작천평야를 지나 금강천을 따라 나타나는 발천(鉢川)마을.

마을입구에 대형 표지석은 지나 나타나는 발천마을은 현재 30가구 7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발천마을은 김해김씨가 조선초기에 마을에 처음 입촌했으며 그후 탐진최씨, 전주이씨등이 마을로 이거해 생활하고 있다.

마을의 형태가 승려의 바리때와 같다고 해서 발내(鉢乃)라고 불리우다가 마을앞에 위치한 금강천을 따라 발천(鉢川)이라 불리우게 됐다. 사면이 평야로 둘러싸인 발천마을은 마을이 크게 나눠 마을회관 인근을 본마을의 중심터라는 의미로 큰터라 부르고 나중에 새로 마을이 형성된 곳은 새터라 불리운다.

다른마을에 비해 산이 적은 발천마을은 지금은 사라진 저수지인 너더릿보, 상고리로 넘어가는 곳에 서당에 있었다고 붙여진 당고개, 여우가 자주 나타났다는 여시고개, 새터의 북쪽에 위치한 귀바우잔등이 마을에 구전되는 지형의 이름이다.

찾아간 발천마을은 너무나도 한가로운 모습이였다. 따사로운 햇볕속에 간간히 들리는 견공들의 짖는 소리로 이곳이 마을아라는 것을 가늠케했다.

마을입구를 들어서자 새로 지어진 듯한 마을회관이 일반건물에 비해 1m이상을 높게 지어진 것을 밝견할 수 있었다. 노인인구가 많은 농촌현실에서 마을회관을 높게 지을 경우 회관을 찾는 주민들이 불편은 불보듯 뻔할 일이였다. 걱정어린 시선으로 회관을 지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만났다.

대문주변에 자리를 펴고 앉아있던 동네아주머니들에게 회관이 높게 지어지게된 배경을 듣게 됐다.

마을주민 정금님(76)씨는“마을 근처에 다섯 개의 방죽이 있어 매년 여름이 되면 상습적인 침수지역이 된다”며“가슴까지 차오르는 비를 대비해 마을회관을 높게 짓게된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재순(79)씨도“경지정리로 인해 비가 내리고 나면 차량통행은 물론 사람도 다니기 힘들 정도가 된다”며 “비피해로 이주가 이뤄져야 하지만 늙은 사람들만 남아 이렇게 살아간다”고 웃었다.

마을주민들의 애환을 들어서인지 이 마을의 들녘과 주민들은 다른 곳과 사뭇 달라보였다. 매년 침수피해를 보면서도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살아가는 주민들과 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자생하는 식물들의 모습은 존경심까지 불러 일으켰다. 주민들을 뒤로하고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낡은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마을의 공동샘이 외관 페인트칠의 빛이 바랜채 마을의 가장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발천마을에는 300여년이 넘게 사용하던 공동마을샘이 있었고 이 샘에 상수시설을 설치해 식수로 사용했으나 침수로 식수사용이 불가능해지자 10여년전에 폐쇄됐다.

마을의 골목을 돌아나오다 낡은 고가(古家)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0여년을 넘긴 고가는 강장수씨집으로 4칸으로 만들어진 한옥이다. 전통양식의 마루와 집 형태를 갖추고 있는 초가집을 함석으로 지붕개량을 해버려 아쉬움을 남겼다.

마을회관앞에는 300여년을 넘긴 전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 그네를 달아 아낙네들이 놀이를 펼치고 음력 6월15일인 유두날에는 마을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을 잔치를 벌이던 곳이였다. 마을의 사장나무였던 전나무는 수령으로 인해 고사돼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을을 돌아나오면서 만난 동네아주머니들은 기자에게 더운날씨에 고생한다며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동네아주머니들의 밝은 미소속에서는 매년 여름에 찾아오는 장마피해가 두려워 밤잠을 설치고 살아가는 삶의 굴곡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자식들이 모두 떠난 고향을 지키며 고된 농사일로 살아가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하루라도 맘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값이 떨어지고 모든 농산물이 흉년이라는 가슴아픈 소식보다는 단 하루라도 모든 시름을 잊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허리가 굽어지고 손마디는 군살과 주름으로 깊게 접힌 어머니의 손에서 진한 고향의 냄새를 다시 맡아보기위해서는 주민들을 다시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마을출신으로는 광주시청에 근무했던 허장씨, 재경 발천향우회장을 지냈던 김종석씨, 병영조합장과 병영면장을 지냈던 김정권씨, 병영부면장을 지냈던 최창권씨, 광주매일 영업국장으로 근무하는 허정씨.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최창석씨, 서울에서 은행에 근무하는 조석일씨, 서울에서 목사로 재직중인 이갑동씨가 이 마을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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