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1>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1>
  • 강진신문
  • 승인 2018.08.1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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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_한자·한문 지도사


承 이을 승

'이을 승(承)'자는 승계(承繼)하다, 승낙(承諾)하다, 승인(承認)하다, 승복(承服)하다 등의 단어로 우리 귀에 익숙한 글자다. 용례를 보면 주로 '잇다', '받아들이다', '받들다' 뜻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갑골문 승(承)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받들다'가 본래의 뜻이었고 나머지는 그 후 파생되지 않았나 추측이 가능하다.  갑골문은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디자인에 특별히 신경 쓴 문자다. 모양과 결합, 배치라는 3대 원리를 최대한 활용하여 의도했던 일정한 뜻을 도상(圖像)에 담았다. 뜻은 언제나 그렇듯 드러난 겉뜻과 숨어있는 속뜻이 있기 마련이다. 갑골문에서 속뜻을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지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승(承)으로 돌아가 보자. 한 사람이 다소곳이 꿇어 앉아있다. 흔히 받듦의 주인공이 취할 법한 자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무너뜨린다. 한없이 겸손(謙遜)하다. 겸(謙)은 수 천 년을 흘러 오늘도 말을 한다. 그를 받들고 있는 두 손에 담긴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도 알 것 같다.

 

印 도장 인

도장 인(印)자는 벼슬이나 관직을 뜻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인(印)이 곧 신분을 나타냈다. 직위에 따라 인장(印章)의 크기도 달랐고 재질도 달랐다. 그만큼 인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했다. 인장의 회수는 곧 권력의 회수를 의미했다. 보다시피 현재의 글꼴 인(印)에서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갑골문의 인(印)을 보면 이 글자의 근원이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자세가 승(承)자와 똑같다. 같다는 것은 전달하는 메시지도 같다는 말이다. 이마 쪽 위의 그림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의 손이다. 선거는 민(民)의 도장을 놓고 경쟁하는 자리다. 후보자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인(印)자 처럼 겸손한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겸(謙)의 속뜻은 사람의 자세 그 이상이다. 겸(謙)은 언(言)과 겸(兼)의 합자다. 고대글자를 보면 겸(兼)은 벼 이삭을 들고 있는 손이다. 언(言)이 명분이라면 겸(兼)은 실리다. 언(言)이 도리를 지키는 힘이라면 겸(兼)은 실지를 살피는 힘이다. 민(民)을 위해 이 두 가지를 망각하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선출직에 오른 자들의 진정한 겸(謙)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比 견줄 비

'견줄 비(比)'는 비교(比較), 비유(比喩), 비율(比率), 비중(比重), 대비(對比), 즐비(櫛比)등 그 쓰임새로 따지면 꽤 비중이 높은 글자라고 할 수 있다. 비(比)의 대표적인 뜻 '견주다'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로 대어본다'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과 무엇을 서로 대어본단 말 인가. 서로 대어본 대상이 그 무엇도 아닌 사람이었음을 갑골문은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3300년 전 갑골문 비(比)자에서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의미 있는 메시지를 포착해야 한다. 두 사람의 어깨 높이가 같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비교(比較)를 생각 할 때 '높고 낮음', '많고 적음', '크고 작음', '있고 없음', '나음과 못함'에 쉽게 경도(傾倒)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처음부터 순수할 리가 없다. 이 자리가 바로 무시와 갑질이 준동(蠢動)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비(比)자의 갑골문을 만든 고대인도 처음부터 이 점을 깊이 우려했던 모양이다. 갑골문자는 의식의 산물이다. 두 사람의 어깨높이를 동일하게 배치한 것도 무의식적이거나 우연의 결과로 보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다. 

 

衆 무리 중

'무리 중(衆)'의 본자(本字)는 '눈 목(目)'아래 '사람 인(人)'이 셋 그려진 중(眾)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목(目)이 '피 혈(血)'로 변해 현재의 글꼴이 되었다. 그러나 진짜 중(衆)의 근원자인 갑골문이 발견 되면서 목(目)의 자리가 태양을 상징하는 일(日)이였음이 밝혀졌다. 그래서인지 갑골문 중(衆)은 '태양아래 일하고 있는 노예'를 그렸으며, 처음 뜻은 '많다'이고 '사람의 무리'는 나중에 파생되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주류를 이룬다. 갑골문의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있었고 문자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기에 얼마든지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중(衆)자에 대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갑골그림의 일(日)자 모양을 태양으로 보지 않고 가로 왈(曰)자로 본다. 왈(曰)은 '말하다'이다. 말은 쓰기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대중(大衆)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며 또 연대하게 만든다. 나는 미래학자들이 하나같이 지목하고 있는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역량 '소통을 통한 협업능력'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及 미칠 급

갑골문에서 보듯 '미칠 급(及)'자는 사람의 발을 잡고 있는 손을 그려 만들었다. 초기에 이 글자는 아마도 '뒤에서 쫓아가 따라 잡는다'는 뜻으로 사용했지 않나 싶다. 쫓아갈 때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심정을 나타내는 글자가 바로 '급할 급(急)'이다. '미칠 급(及)'에 '마음 심(心)'을 합쳤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하지만 그건 예나 지금이나 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널리 쓰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은 논어 선진편에 나온다.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사와 상(사와 상도 공자의 제자이다)은 누가 더 낫습니까?",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師也過, 商也不及)." "그러면 사가 더 나을까요?" 반문하자 공자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過猶不及)"고 답했다. 자공은 재력가였고 말솜씨 또한 뛰어났다. 아마도 그는 '과(過)'를 '불급(不及)'보다는 더 상위에 놓을 가능성이 있을 사람이었다고 여겨진다. 스승인 공자도 제자의 이런 점을 경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공자는 항상 제자들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했다.

 

企 꾀할 기

갑골문을 볼 때, 그림의 모양과 결합, 배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언급했다. 갑골문은 단순한 그림 이상이라는 설명도 했다. 고대의 문자천재는 문자의 창조과정에서 그림과 개념간의 긴밀도를 놓고 고민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여기에 더해 그들이 개념을 담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의식했을 과제를 꼽는다면 아마도 문자의 생명력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다. 문자의 생명력은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그 속에 담겨진 개념을 누구든 어렵지 않게 공명(共鳴)할 수 있어야 지속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표현의 공유수단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企業)', '기획(企劃)', '기도(企圖)' 등의 단어를 이루는 '꾀할 기(企)'자의 갑골문을 한번 들여다보자. 사람과 발을 그려 문자화 했다. 사람의 신체 중 발은 출입(出入)이고 도약(跳躍)이며 진퇴(進退)다. 다른 신체기관에 비해 운동성과 관계가 깊다. 아마도 이 글자를 처음 본 고대인들도 정지보다는 동작에 더 무게를 두고 이 '기(企)'자를 음미하고 이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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