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지 않고 꾸었다 해도 바로 잊어버릴 만큼 꿈과 거리가 먼 나에게 현실과 환상을 무수히 넘나드는 이 책은 막연한 신비로움으로 다가왔다. 동화책을 읽고 만화를 보면서 가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것을 바라고 상상했던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처럼 꿈의 세계가 현실을 지배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고, 작가의 상상력의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저자인 고바야시 야스미는 오사카 대학 공학도 출신의 작가이다. 데뷔작인 <완구수리자>로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을, <바다를 보는 사람>으로 SF매거진 독자상을, 『천국과 지옥』으로 세이운 상을 수상하는 등 주로 SF와 호러소설 분야에서 활약했다. 『앨리스 죽이기』는 그간 호러, SF,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약해온 작가의 역량이 집약된 작품이며 추리와 고전소설의 성공적인 조합을 이루는 작품이다. 이공계 작가라는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현실의 공간은 공대 대학원 실험실이며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관계, 실험실의 상황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작품 곳곳에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루이스 캐럴의 판타지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기괴한 상상력과 어지럽게 펼쳐지는 언어유희, 다양한 개성을 장착하고 있는 등장인물,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두 소설의 배경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들어가 보자. "거기 비켜, 메리 앤! 늦을 것 같아! 알잖아."시간에 늦은 흰토끼가 달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빌이 서로 암호를 정하며 옥신각신 하던 중 험프티 덤프티가 여왕의 정원 담벼락에서 추락하며 사망한다. 앨리스는 흰토끼에 의해 그를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고 꿈에서 깨어난다.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인공 구리스가와 아리는 이모리 겐과 이야기하면서 이상한 나라가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현실 세계의 나와 이상한 나라의 어느 인물과도 연결된 관계 즉 아바타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꿈의 세계에서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누명을 벗기 위해 두 세계에서 추리를 거듭하며 진범을 찾는 긴 여정이 시작된다.
 
반복되는 대화 속에 중요한 단서를 심어놓고 독자들이 스스로 힌트를 발견하며 소소한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한 저자의 치밀한 구성에 경의를 표한다. 이미 읽은 부분을 앞으로 되돌려가며 읽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진범은 누군지, 누가 누구의 아바타라 인지, 살인을 저지르는 동기는 무엇인지, 책을 덮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이야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