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다산초당을 오르며
[기고] 다산초당을 오르며
  • 강진신문
  • 승인 2018.06.25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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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규동 _ 다산기념관 다산교육전문관

다산초당을 오를 때마다 솟구쳐 오르는 다산의 정신과 사상의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선생의 애민정신과 호국정신의 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초당엘 오르노라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다산초당에 올라 다산의 심부름꾼으로 물 뿌리며 청소하고 인사드리며 한 주를 시작한지 1년이 되었다. 그러면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데 쓸 수가 없었다. 다산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선생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의 엄숙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함부로 글을 쓰지 말라는 선생의 말씀이 뇌리에 스치면 더더욱 생각은 움츠러든다.
 
초당에 오를 때마다 뭔가를 쓰고 싶은데 쓸 용기가 나지 않아서 지금껏 망설여 왔다. 하지만 다산초당과 백련사 길을 오간지 1년이 되면서 이제는 조금이나마 선생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냈다. 선생의 그 깊숙한 사상의 골짜기에 들어와 이리 저리 헤매며 때로는 너무나 힘든 길이 아닌가 싶어 후회하기도 했다.
 
18년 유배 생활 중 10년 동안 다산초당에서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감히 지금 본인의 일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선생께서 그렇게 꿈꾸던 나라를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할수록 답답해진다. 왜냐면 선생이 200여년 전 제2의 성균관인 다산초당에서 공평, 공정, 청렴, 개혁, 창의의 다산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나라는 물론 백성들의 복지를 위한 지침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였건만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산정신의 계승발전을 위한 시스템 구축 차원에서 한국다산미래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건만, 소위 힘 있는 부서나 사람 어느 누구 하나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럴 때마다 선생께서 18년 유배생활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준 위대한 정신과 사상을 일깨우지 못함이 너무나 죄스러울 뿐이다. 다산 심부름꾼으로써 선생의 사상과 정신의 깊은 골짜기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지라도 서두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 계승 발전시키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자 하건만 너무나 미약함은 어쩔 수가 없다.
 
다산초당 깊은 골짜기의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는 오랜 세월의 다산정신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매체이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읽어버린 정신세계를 회복하는 일이 절실하다. 다산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역사의 현장에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가 전하는 다산정신을 모두가 함께 공유하여 공적 사회적 가치를 확산해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미래 대한민국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바로 이곳이다. 다산초당에 오르며 다산 심부름꾼을 자임한 본인의 모습을 바라보며 다산선생께서 상론에서 쓴 글을 생각해 본다. 비록 이 길이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훈련과 노력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용모는 습관으로 인하여 변하고, 형세는 용모로 인하여 이루어진다.(중략)
 
대체로 습관이 오래됨으로써 그 성품이 날로 옮겨가게 되니, 그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서, 상이 이로 인하여 변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 상의 변한 것을 보고는 또한 말하기를 '그 상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에 그 습관이 저와 같다' 하나, 그것은 틀린 말이다' (다산시문집, 상론)
 
하루하루 다산의 흔적을 따라 깊은 골짜기에서 맑은 물소리와 새소리 벗 삼아 선생께서 다산초당에서 꾼 꿈을 펼치는 일을 위해 새로운 상을 일구어 가며 오늘도 다산초당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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