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서원, 현재를 만들었다"
"군자서원, 현재를 만들었다"
  • 김철 기자
  • 승인 2018.05.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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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서원 신두천 전 원장 기공비 제막

군자서원 전 원장인 신두천 원장의 공덕을 기리는 기공비 제막식이 열렸다.

지난 13일 작천면 군자서원에서는 주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비 제막식이 진행됐다.

신 전 원장은 군자서원으로 승격하도록 노력했고 서원으로 승격하자 초대 원장으로 취임해 3대 원장까지 연임했다. 아쉽게 신 전 원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6일 별세했다.

신 전 원장은 재임하는 동안 제규정 정비, 동서재 건립, 서원 담장 보수, 군자서원지 책자 발간, 서원승격 축하한시회를 개최해 시집을 발간했고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유품전시회를 광주박물관 개최, 고문서 학술세미나 개최해 강진 향토문화유산 제56호로 지정 등록 등의 역할에 나섰다.

이에 2015년 가을 군자서원 유회와 양산김씨 대종회는 신 전 원장의 퇴임에 맞춰 공덕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아쉽게 신 전 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날 비석의 제막을 맞게 된 것이다. 석물대금은 양산김씨 대종회에서 부담하고 기타 제막식 경비는 신 전 원장의 자녀들이 부담했다.

군자서원은 1820년 도내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양산김씨의 사우이다. 1994년 도사의로 승격했고 2008년 동재 서재를 복원신축, 2009년 서원으로 승격됐다. 서원과 소장 고문서는 향토문화재, 향나무는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군자서원의 삼현은 김양, 김호광, 김신광을 말한다. 김양은 내자시 직장 벼슬에 올랐고 부모께 효성이 지극하고 자식들에게 정의를 가르쳤다. 김호광은 무과에 급제해 1624년 이괄의 난때 장정을 모아 공을 세우고 24세 나이로 순절했다. 김신광도 무과에 급제해 이괄의 난, 병자호란, 심기원의 역보를 방지한 공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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