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무기는 탁월한 기억력과 관찰력이다.…기억의 포인트는 눈매다. 나이를 먹어도 살이 찌거나 빠져도 성형수술을 하더라도 눈의 간격이나 크기, 색깔 등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범람하는 광고에 자동 유입되는 우리의 일상인지라 작가는 몰라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들었을 법하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하고 국내 서점가에도 최근 인기 작가 반열에 올라 있다. 이 책 『그대 눈동자에 건배』는 바로 그 히가시노 게이고의 30여년 문학적 실험 경향을 한데 모은 추리소설집이다. 9편의 단편을 각각 본격추리, 서스펜스, SF, 로맨스, 사회파 추리 등의 얼개로 엮어 독자를 끌어들인다. 그럼에도, 책이 흔치 않던 60~70년대 코난 도일이나, 아가사 크리스티는 물론 '표○전과'의 심화풀이조차 놓치지 않고 손에 닿는 대로 읽기를 즐겨했던 호기심이 종종 그리웠다. 왜일까?

추리소설은 크게 본격소설과 사회파 소설로 나눌 수 있다. 경계가 모호한 작품도 있지만 이 둘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살인의 동기와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본격추리소설은 대체로 마니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살인 방식, 수수께끼나 트릭을 푸는 형태를 중시한다. 퍼즐을 맞추듯 작가와 두뇌게임을 즐기는 독자들이 선호하는 장르다. 예전에 접한 것들은 거의 고전 장르인 본격 추리 기법에 속하는 것들이다.

반면, 최근의 사회파는 트릭보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의를 두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에 좋다. 베스트셀러가 많고, 드라마, 영화 소재로 많이 활용되기도 한다. 표제작인 <그대 눈동자에 건배>의 범인이나, 동반자살을 하려고 마지막 신사참배에 나섰다가 우연히 살인사건 목격자가 되고 <새해 첫날의 결심>이 바뀐 다쓰유키 부부의 삶이,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런 맥락이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얼굴을 바꾸고 이름을 속이는 생활이 어떤 것인지 나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몹시 외로웠을 것이다. 사람 사귀는데 별로 소질이 없고 혼자 있는 게 마음 편하다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것밖에는 다른 방도가…"<그대 눈동자에 건배>

"그렇게 무책임한 인간들도 떵떵거리고 위세 부리며 살고 있잖아, 그런 바보들이 군수를 하고 교육장을 하고 경찰서장을 하고…그런데 왜 우리처럼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죽어야 해?…그들 못지않게 대충대충, 속편하게, 뻔뻔스럽게 살아보자."<새해 첫날의 결심>

이와 같이 추리 과정과 범행 동기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공감대가 형성되는 사람에게는 몰입도가 높고 인기도 높은 편이다. 다만, 살인에 일어난 트릭은 본격에 비하면 약하기 때문에 추리를 하는 재미가 떨어진다. 순차적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고, 범행방식이 현실적이라 기상천외한 트릭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러니 사건을 풀어가는 추리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회파 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고전적 추리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필자처럼 싱거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바쁘고 복잡한 세상, 짬짬이 짤막한 반전에 스며있는 일본의 사회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잠시 반추하며 가벼운 서스펜스와 깜짝 반전의 코믹함은 덤으로 맛보시라 권해본다.